5월을 맞이하며
하늘이 지글댄다. 하늘을 찢으며 저 멀리서부터 북소리가 난다. 북소리는 비와 함께 그날들을 수채화로 남기기 위해 젖기 시작했다. 오전의 비는 그날의 비들이 대신하여 고개를 떨어뜨린다. 앞이 보이지 않게 내렸던 만큼 그날의 대화들이 비의 틈을 파고들며 바닥에서 찰박 인다. 코를 찡그리면 바닥을 치고 튕겼던 빗방울들이 비냄새를 풍긴다. 라일락 꽃 한 송이 위에 유독 큰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며 맺힌다. 그 아래 풀들이 수근대고, 기어 나온 벌레들이 기지개를 켠다. 다시 하늘이 지글대며 끓는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조르지만, 5월의 잔잔했어야 할 이 비와 노래들의 잔인함은 같은 기억을 꺼낸다. 밝은 태양 사이에 잠깐 내리는 회색빛 비와 연기가 검은 수채화 안에 갇힌다.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 들키지 않을 슬픔을 고개 숙인 턱살에서 볼록볼록 방울처럼 맺혔다. 내 가슴팍에 올려진 당신의 웃는 얼굴을 모신 사진이 떨어지는 비를 보며, 눈 깜박하지 않고 마주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볼에 떨어져 살짝 웃었을지 모를 사진은 내 품에서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졌다.
비가 우렁찬 한 번의 심드렁을 드러낼 때마다, 사람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내 발은 놀라듯 움츠러든다. 운구를 맡은 친구들의 손끝에 우정꽃이 피어나며, 떨어지는 비를 마신다. 내 슬픔을 거머쥔 죽음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들의 허리가 천둥처럼 근사하다. 숙연함과 소리 내지 못함을 비와 천둥이 마음껏 더욱 요란해주었다.
짧고 강했던 소나기와 악수를 마친 태양이 공손히 인사를 하며, 슬프지 않은 빛으로 비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윤슬로 반짝이며, 라일락은 낮잠을 준비하려 하품을 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짙어질 봄의 이야기들이 새어 나온다.
5월의 봄은 생명과 죽음을 차곡차곡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봄은 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따뜻한 볕을 봐서라도 조금은 덜 슬퍼하면 안 되겠냐고, 내게 부탁한다. 5월이 다시 내 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