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몸, 내가 먼저다"

by 소자 마음

"다들 스트레스를 피하면 사는 건데, 그게 나쁜 건가요?"


개인 분석 중에 상담사가 나에게 말했다. 쓰러지기 바로 일주일 전, 전 날 업무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그래, 내가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힘든 일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왜 쉽지 않을까? 못하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몸에서 무리가 될 정도였던 느껴졌던 어깨와 목의 통증들도 작은 신호였다.


맞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바쁜 부모님에게 소소한 나의 욕구와 불편감을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감정보다는 생각을, 행동을 먼저 했었던 아이. 그래서,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마음의 감정들은 대부분 혼자 해결하고나 두 살 터울의 언니와 동생과 놀면서 감정이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였던 나는 잘 울었다. 무서움에 소리를 지르거나 두려움이나 창피함에 울었을 때 언니의 놀림이나 장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식구들 사이에서 각자의 일을 알아서 하는 것.

그 일을 잘 해냈을 때는 관심과 칭찬을 받았다.

심부름을 할 때. 글짓기 상을 받아 왔을 때.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았을 때.

복잡한 감정이나 생각들을 말하는 것보다는 칭찬받을 수 있는 행동. 역할이 더 편했다.


'시작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

'힘들더라도 씩씩하게 자기 몫을 해내는 것'


이런 나의 방어 전략들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도 결국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38세에 큰 아이를 출산하고 40세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일과 육아를 해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니 두 번의 실신이 있었고, 무리하게 일과 육아를 병행했을 때였지만 그냥 지나쳤었던 것이다.


나보다, 아이 먼저였던 시기였다.


눈물이 났다.

마음의 언어보다 몸의 언어가 더 솔직한 걸.

맞아. 미주 신경성 실신이 몸의 언어였다면, 눈물은 나의 그동안의 마음의 눈물이다.


어릴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내 마음이 힘들 때,

울고 있었던 나의 어릴 적 아이가 기억에서 떠올랐고 생각났다.

흐르는 눈물이 내 마음을 적시고 적실 때까지 나는 닦지 못했다.

안쓰럽고 서러웠고 후회가 됐다.

지금의 눈물은 단순한 이기심의 '내가 먼저다'가 아니라,

나를 위해 내 마음과 몸을 살피기 위한 먼저라는 결심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내가 먼저다, 아이도, 일도 아닌, 내가 먼저다.


상담사의 조언대로 한 달 동안 집안일에서 손을 뗐다. 설거지를 하지 않았더니 남편이 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설거지는 남편이 지금까지 하고 있다. 정말 내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 많았다. 직장에서도 나에게 과부하가 될 만한 일은 거절했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해보기로 했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해보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내가 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집안일. 직장일을 조금씩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되는 것"


이제는 '시작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것'의 강인함, ' 힘들더라도 씩씩하게 자기 몫을 해내는 것'의 유능함보다는 내가 만족하면서 할 수 있는 여유 있고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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