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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제 Oct 21. 2024

넘늘이와 함께 한 'Il Mondo' 01

-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

'넘늘이'는 내 친구의 닉네임이다.

'Il Mondo'는 세상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이다.

그래서 정확한 제목은 '넘늘이와 함께 한 1년의 여행기록'이다.  


차 안에서  jimmy fontana(지미폰타나) ‘일 몬도(Il Mondo)'음악이 흘러나온다.


우리 나이쯤 되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는 저 아이들은 세상에 계속 활기차게 잘 살아가겠지... 나의 현실은 힘들어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갑자기 큰 병이 닥치면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Ho aperto gli occhi per guardare intorno a me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어요     

E intorno a me girava il mondo come sempre

제 주변에 세상이 변함없이 돌고 있어요     

Gira, il mondo gira nello spazio senza fine

끝없는 우주에서 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어요     

Con gli amori appena nati

막 피어난 사랑들과     

Con gli amori già finiti

막 져버린 사랑들과     


살다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 부모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 인 것 같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시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자연의 섭리이어서 시간이 지나가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의 사형선고 같은 진단선언을 받았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 어느 날 충격적인 안타까운 소식을 듣다. >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2021년 7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내 친구 넘늘이가 백신접종을 하고 난 뒤 뇌경색증상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왼쪽 뇌를 심하게 손상당해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못 움직이며 언어기능도 잃어버려 대화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넘늘이는 학교에 병휴직을 내고 입원하여 3개월 동안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조금씩 회복하여 7개월쯤 지난 시점에는 대화도 가능하여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는 7개월의 시간이 얼마나 악몽 같았을까 생각하면 무척 마음 아픈 사연이다.      

이후 병원에서 열심히 재활훈련을 한 넘늘이는 6개월쯤 시간이 더 지나자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 부자연스럽게 걸을 수도 있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돌아왔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대신하여 밥도 먹고, 글도 쓰고, 휴대폰 문자도 보내고 하는 정도가 되었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큰 불행 속에 다행으로 불편하지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침 나도 퇴직을 한 상태이어서 같이 답사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오른쪽 다리를 절고 오른팔을 제대로 흔들지 못하는 한 남자와 그 친구인 올제가 여행객이 적은 평일에 다니니 사람들의 시선에 확 띄기 마련이었다.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넘늘이도 불편한 걸음에도 늘 불평 없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잘 다녔다. 남자 2명이 무미건조하게 다니는 것보다 좀 더 재미나게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움직이는 거리는 적게 하고 대신 다양한 활동으로 여행의 묘미를 살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시낭송과 상황극이다. 그리고 웃음치료, 영상편지 등이었다.      



< 진양호 전망대에서 웃음치료를... >


올제와 넘늘이 둘이서 진양호 전망대를 갔었다. 아침 시간이었다.

아무런 의미 없이 넓은 호수를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쓸쓸함을 더 키우는 일이다. 신나게 한바탕 웃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이런 활동을 웃음치료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2 사람이라  동영상 찍어줄 사람이 없다.

잠시 기다리니 아침 운동하러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든다.    

 

“약간 민망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웃음치료하는 과정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가 약 30초간 신나게 웃음터이니 동영상을 좀 찍어주십시오.”      


다소 당황하던 남자분은 고개를 기웃기웃하더니  내가 부탁한 데로 동영상을 찍어주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다.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내 친구 넘늘이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한 사람이지만, 웃는 그 순간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보인다.     

< 언제 다시 보아도 따라서 웃게 만드는 영상이다. >


< 하동 삼성궁에서 시낭송을... >


하동 삼성궁 공원에서는 시(詩) 낭송도 해보았다.


시(詩)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즈넉한 장소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낭송을 해보는 것이다. 시를 읽는 것과 낭송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여행의 목적과 즐거움을 배가 하기 위해서 시를 낭송을 해보기로 했다. 제대로 시낭송을 배운 적이 없는, 세상의 가장 큰 아픔을 겪은 넘늘이는 시를 제대로 표현해 낸다. 시를 낭송해 보면 마음을 열게 해 주었고 지금까지 알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 시(詩) 속에는 세상의 모든 감정을  잘 녹여 놓은 것 같다.  깊은 내면의 마음이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


 우리는 시(詩) 낭송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마음이 안정되고 아름다운 시어와 구절을 자주 음미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풍부한 감성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우울증 해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코로나로 돌아가신 어르신 이야기를 듣다....>      


올제와 넘늘이는 의령 부림면에 있는 소천정을 찾아갔다.

소천정의 집안은 인동 장 씨 가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천정과 집안의 얽힌 역사와 사연을 모두 풀어내신다.

이곳이 원래 샘물이 맑고 차서 주변에서 한국의 명수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의령에 농공단지가 들어서고 지하수를 많이 사용하니 이곳에 물이 말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의령군 문화재로 등록을 해야겠다고 한다. 가슴 아픈 사연이다.   


넘늘이가 몸을 불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물어보신다.    

  

“몸이 불편하신가 봐요”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짧은 정적이 흐르고 할머님께서 눈시울을 붉힌다. 


우리 바깥양반도 83세였지만 건강했는데 코로나 백신 예방주사를 받고 올해 3월에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인명은 재천(在天)이라 했는데 사람의 운명은 하늘의 뜻인가 보다.

       

< 의령 일붕사, 개인정원인 소천정을 방문하였다. >


< 소석원 어르신과 젠가게임을...  >


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온 후 40여 년간 돌로 집과 성을 만들고 아픈 몸을 치유코자 혈혈단신 산속으로 들어온 후 돌로 집과 성을 만든 어르신, 진주 소석원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 갔다.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우리 두 사람은 소석원을 구경하고 난 뒤 젠가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참이 지나자 주인아저씨가 등장한다.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 밖에 안 나와 보려고 했는데  너무 시끄러워 나와보았다고 한다.  


어르신과 젠가 게임에 대한 안내를 하고 율무차를 걸고 젠가 게임을 하였다.     

"이기시면 율무차를 드리고 가고 지시면 율무차는 우리가 가져가겠다"라고 하면서 어르신의 승부욕을 일깨웠다.      

< 진주의 소석원은 숨은 보석, 가보고 싶은 개인정원이다. 한번 가보시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돌탑을 40년 쌓은 내공이 있으신지라 손의 감각이 대단히 좋으셨다.

86세의 할아버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청각, 지각, 시각, 손놀림 등 신체능력은 70대 초반이었다.  

1937년생이라고 하니 돌아가신 아버지뻘이다.      

젠가를 너무 재미있어하셔서 가지고 갔던 젠가도구는 드리고 왔다.         

 

꽃 화

 모양양

해 년

빛날 화      


꽃다운 모양의 년대의 빛나는 나날

주로 20세 전후의 꽃처럼 아름다운 청춘시절을 말하며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했던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나고 보니

친구와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이 나에게는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이다.  

지금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20대 아름다운 청춘이 아니라 나의 남은 인생이 모두 화양연화(花樣年華)이다.  


다음에 만나면 내 친구 넘늘이와 같이 꼭 듣고 싶은 노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rFsC1ldJ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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