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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6코스_덕하에서 태화강전망대까지

울산 구간 2

by 정순동


덕하 장날​


지난주 해파랑길 5코스를 마치면서 시간이 늦어 들리지 못했던 덕하장을 찾는다. 덕하역 버스정류장에 덕하시장 알림판이 서 있다. 5월 2일. 마침 오늘이 2일/7일에 서는 덕하 장날이다.


손님을 부른다.


"수박이 왔습니다. 달고 시원한 함안 수박이 왔습니다."

함안 수박, 대저 짭짤이 토마토, 성주 참외, 부산 어묵, 도넛, 찰쌀 호떡, 옷, 신발, 미꾸라지, 코다리, 모종 등 농산물, 수산물, 건어물, 각종 생활용품이 울긋불긋한 천막 아래 펼쳐졌다.


1930년대 개설된 전통 재래시장, 덕하장. 북적이던 옛 덕하5일장의 분위기는 아니다. 오전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활기를 잃은 것은 분명하다. 동해선 덕하역을 가까이 옮기면서 덕하5일장도 함께 새 단장을 하였다. 공용주차장을 마련하고 간판을 깔끔하게 정비하고. 하지만 상거래 변화의 큰 흐름에 밀려 힘이 부친다.

이 일대를 덕하라 한다. 실제는 덕하리가 아니고 상남리다. 이곳 사람들은 상남리와 덕하리를 딱히 구분하지 않고 그냥 덕하라고 부른다. 이런 관습의 유래는 덕하역이 생기면서부터다. 1935년까지 청량면사무소는 청량천 서쪽의 덕하리에 있었다. 1935년 청량천 동쪽인 상남리 관내에 역을 개통하고 면사무소 소재지가 있던 '덕하'를 역명으로 정했다. 덕하역이 생기자 역 주변이 발전한다. 덕하시장과 청량면 사무소(현 청량읍 행정복지센터)까지 옮겨온다. 이 일대는 신덕하가 된다. 주민들은 청량 읍내 중심지를 관습적으로 덕하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르게 살자​

두왕교를 건너 울산 남구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동해선 철로가 지나가고 온산로와의 사이에 짙은 숲이 있다. 덕하역 뒷길로 이어지는 오솔길 입구에 <바르게 살자>는 구호를 새긴 커다란 빗돌이 차도를 향해 서 있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중늙은이 세 명이 나누는 나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법학자가 그러는데 (이재명이) 재상고하면 (상고 이유서 쓰는 기간을 주지 않고) 바로 유죄 확정 판결을 할 수도 있다네. 불법이라도 구제할 방법이 없어 한덕수가 대통령 된다네."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대법원이. 그것도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야당은 후보도 못 내고 한덕수가 부전승할 수 있단 말 아이가."


"좀 바르게 살자. 좀.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 안카나."


조희대에게 말하는지 이재명에게 말하는지 국민의힘에게 말하는지 '바르게 살자'는 빗돌의 구호에 빗대어 알쏭달쏭 한 소리를 한다.



함월산과 선암호수​


두왕사거리를 지나 공원으로 들어선다. 넓은 깔때기 모양의 분홍색 꽃을 활짝 피운 영산홍이 산책길과 나란히 간다. 이팝나무에 흰 꽃이 소복이 달려있다. 시멘트 산책길이 끝나고 오솔길이 시작된다. 함월산을 오르는 길이다. 어제 내린 빗물을 적당히 머금은 흙길은 걷기에 쾌적하다.

조개나물이 자주색 꽃을 잎겨드랑이에 모여 달고 '우정과 강한 결속력'을 뽐낸다. 대나무 숲을 만난다. 이정표는 '비교적 산길이 많아 다른 코스보다 조금 힘'든다고 알린다. 함월산은 천천히 고도를 높여간다. 이팝나무 흰 꽃잎이 떨어져 오솔길을 하얗게 덮는다.


솔향이 풍기던 호젓한 산길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선다. 초지에서 올라오는 쑥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 정상 가까이에는 제법 경사가 심한 계단이 있지만 길지는 않다. 어려움 없이 산을 오른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돌탑 여러 기가 형태를 이루어가고 있다. 멀리 공단의 굴뚝과 송전탑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다. 소나무에 걸린 흔들의자에 앉아 쉬어간다.

길섶에는 두껍고 윤기가 나는 타원형 잎을 넓게 벌린 청미래덩굴이 '불굴의 정신'으로 영역을 넓힌다. 군데군데 설치된 고래 이정표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한다. 선암호수공원이 1킬로미터 남았음을 긴수염고래가 알린다.


상수리나무에 다람쥐 먹이를 보관하는 도토리 저금통이 달렸다. 상수리나무 사이로 호수공원이 자태를 드러낸다. 여기부터 하산길을 제법 가파른 계단이다. 조심조심 내려간다.

울산과 온산의 공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 선암호수. 수질보전과 안전을 이유로 출입을 금지했던 곳을 2000년대 중반에 개방하였다. 호수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가족 단위로 산책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울산 시민의 사랑을 받는 공원이다.


수면을 빼곡히 덮은 연꽃은 꽃이 몇 송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꽃 필 때가 멀었다. 대신 물가의 자주색 붓꽃이 '희소식'을 전한다. 흰산철쭉은 '사랑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는다. 비단잉어가 물속을 헤엄친다. 거북은 물속에서 나와 일광욕을 한다.



솔마루길의 반란​


보현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선암호수와 헤어진다. 공중화장실 옆에 신선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이곳을 지나면 6코스 끝자락인 신정중학교 후문까지 가야 화장실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신선산 코스는 입구부터 경사가 가파르다. 정상부는 바위산이다. 정상에 세워진 신선정은 야음동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뷰 포인터다. 소똥비일길(소를 매어 두던 비탈길)을 내려간다. 사사조릿대 군락을 지나 신선산을 벗어난다. 잠시 울산해양경찰서 앞의 신선로를 따라 걷는다.

두왕로를 만난다. 구름다리를 건너 다시 숲 속으로 들어선다. 울산대공원을 관통하여 삼호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울산이 자랑하는 명품 산책로 솔마루하늘길이다. 나무 계단과 야자매트를 따라가는 오솔길. 솔잎을 밟고 걷는다.


산기슭에 진한 노란색의 앙증맞은 꽃이 피어 있다. 시인 안도현이 나이 서른다섯 될 때까지 모르고 살았다는 애기똥풀이다.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 라며 자조하던 애기똥풀은 젖 풀, 씨아똥으로도 부른다. 줄기를 자르면 누렇고 끈끈한 즙이 나오는데 꼭 애기똥을 닮았다.

울산대공원 권역을 지나면 삼호산으로 건너가는 꽤 높은 대형 구름다리를 만난다. 이 다리가 없었다면 까마득하게 보이는 이예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삼호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괜히 한 걱정이 아니다.


산은 낮지만 만만한 길이 아니다. 코스가 끝날 때까지 오르막 내리막을 수없이 반복한다. 솔마루정에서 끝나는가 했는데 다시 오르내린다. 울산공원묘원을 감아도는 삼호산은 능선에서 공원묘원이 보이지 않는다. 산이 깊고 숲이 우거졌다.

고래전망대에 올라 무거동을 조망한다. 이것도 끝이 아니다.

정말 '뒤끝 작렬'한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내란은 계속된다. 범 새끼들이 서식했다고 일컫는 범무골로 내려왔다가 신정중학교 후문, 남산유아숲체험원을 다시 오른다.


희망 고문을 한다.

'태화강전망대 250미터'라는 이정표를 보고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솔마루길의 반란은 계속된다. 태화강 옆의 4층 건물, 태화강전망대가 아니다. 종착지 태화강전망대를 조망하는 천연 전망대다. 이정표를 이렇게 만들었지 모르겠다.

아직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험난한 길이 또다시 나타날까 마음 졸이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태화강에 닿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두루누비 앱이 총 거리 15.7킬로미터의 그렇게 길지 않은 길을 '소요시간 6시간 30분, 난이도 어려움'이라고 소개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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