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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1코스_나아에서 감포까지

경주구간 2

by 정순동

해파랑길 11코스는 경주시 양남면과 감포읍을 잇는 코스다. 나아해변 출발점부터 보행 길이 막힌다. 월성원자력발전소 때문이다. 봉길터널로 우회해야 한다. 터널 또한 자동차 전용 도로다. 나아 원전 후문 버스정류소에서 봉길대왕암해변까지 차량으로 이동한다. 두루누비 앱은 "코스를 이탈했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신라 천년의 숨결을 느끼며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안. 관광지 분위기가 난다. 대형, 소형으로 나누어진 넓은 주차장과 기념품점, 건어물점이 늘어섰다. 입구부터 오징어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해변은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 산책하는 사람, 휴일이라 바람 쐬려 나온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붐빈다.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안

문무대왕 수중릉

해변으로부터 200여 미터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있는 댕바위라고 불리는 돌섬. 신라 문무왕이 묻힌 곳, 대왕암이다. 문무왕은 생전에 "죽으면 동해 바다에 묻어달라. "는 유언을 남겼다. 용이 되어 왜군을 막아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무덤, 대왕암은 파도와 갈매기를 이웃 삼아 홀로 동해를 지킨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통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의 아들 신문왕 또한 왕권을 강화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통일 신라의 기틀을 굳건히 했다.

문무대왕릉. 사진출처_경북동해안지질공원 안내판

봉길해변 내내 갯바위에 앉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해변이 끝나는 대종천 하구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모습은 건너편 언덕 위의 이견대와 어우러져 한 점의 산수화를 그린다.


대종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파랑길 코스를 살짝 벗어나서 감은사지를 찾아간다.

대종천 하구의 낚시터

감은사지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부처의 힘을 빌려 왜적의 침략을 막으려고 했다. 동해 바다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에 절을 짓기 시작했다.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였지만 아들 신문왕이 그 뜻을 이어받아 682년에 완성하였다. 신문왕은 부왕의 은혜에 감사하여 절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고 한다.


문무대왕면 용당리. 이곳에는 삼층석탑 두 기와 금당, 강당 등의 건물 터만 남아 있다. 감은사는 금당, 강당, 중문이 한 줄로 배치되어 있다. 감은사의 법당은 동해 용왕이 드나드는 집, 용당이라 했다. 법당인 금당 밑에는 석축이 들려 있다.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배수 시설이다. 금당 앞에 동서로 두 기의 삼층석탑이 있다. 건축 연대가 확실한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이견대
대본항 뒤편, 31번 국도변의 이견대를 들른다. 문무대왕릉이 선명하게 보인다. 부왕의 장례를 치르고 감은사를 완공한 신문왕은 부왕을 기려 수중릉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대를 세웠다. 이곳은 문무왕이 용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본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견대(利見臺). 의 "飛龍在天 利見大人(비룡재천 이견대인)"에서 따와 지은 이름이다.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서 나라에 큰 이익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 의하면 1970년 발굴조사로 이견대 건물 터를 확인하였고, 1979년 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이견정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견대



속살을 드러낸 감포깍지길


대본리 해변은 한 집 건너 횟집이다. 작은 항구도 연이어 나타난다. 대본항에서 점심을 먹는다. 31번 국도와 해변 마을을 오르내리며 가곡항으로 간다.


가곡제당과 할배 할매나무

뱃머리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그마한 제당이 있다. 제당 옆 바위틈을 뚫고 용틀임하듯 하늘을 향한 두 그루의 소나무. 400년 동안 가곡마을을 지키는 당목이다. 마을 사람들은 할배 할매 소나무라 부른다. 음력 6월 1일과 어선이 출어할 때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가곡제당과 할배 할매나무

대본, 나정, 전촌으로 이어지는 감포깍지길 1구간은 군 작전지역이라 철조망 안에 오랫동안 감춰졌던 곳이 많다. 지금은 통제가 완화되어 그 속살을 드러낸다.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의 해병대 경고판은 여전히 서 있다.

"이 지역은 군작전 지역으로 실제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군사시설의 촬영, 묘사, 녹취, 측량 행위', '야간 2시 이후 무단 해안선 출입 및 입수 행위'는 엄격히 통제합니다."

"위 사항을 위반 시 적으로 오인하여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는 섬뜩한 경고로 끝을 맺는다. 경고판 바로 옆에 천막을 치고 야영하는 풍경이 한가롭게 여겨진다.

군사작전지역 철조망에 야영객이 있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의 고향, 나정

양파 특산지인 감포읍 나정(羅亭)리는 만파식적의 고향으로 통한다. 앞바다의 한 섬에서 만파식적이 탄생했다고 믿고 있다. 나정항 방조제에 만파식적 전설과 함께 대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로등도 대나무를 형상화했다.

나정마을에는 만파식적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죽어서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해지는 대나무'를 나정 앞바다 한 섬에 보냈다. 신문왕이 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감은사에 묵었을 때의 일이다. 용이 나타나 대나무에 얽힌 이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한 손으로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오. 이 대나무도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난다오.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오."


신문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군은 물러가고, 병은 낫고, 파도는 평온해졌다고 한다. 삼국통일 후 흩어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는 신라의 고민을 담고 있는 설화다.


신라의 달밤

'신라의 달밤'이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나정고운모래해변 들머리, 31번 국도와 해안 방조제 사이에 생긴 일명 포장마차촌이다. 상호가 이색적이다. 모든 집이 안압지, 이견대, 송대말, 반월성, 포석정 등 경주의 역사유적지를 지명을 사용한 간판이 일렬종대로 서 있다. 메뉴만 보아도 군침이 돈다. 꽃게탕, 해물탕, 산낙지, 참가자미, 강도다리, 문어숙회, 바다가육지라면 . . . . . .

신라의달밤 포차촌

고운모래해변

소나무 숲의 넓은 오토캠핑장과 산뜻한 산책로 앞에 펼쳐진 고운 모래 백사장이 돋보이는 해수욕장이다. 이름도 고운모래해변으로 변경했다. 모래가 고운만큼 물도 맑다. 바다 한쪽에 준설선이 떠있다. 모래가 아니라 몽돌을 준설하고 있다.

고운모래해변 한가운데 세로로 쓴 큼직한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70년대 조미미가 불러 크게 히트한 의 노래비다. 경주시 현곡면 출신 정귀문 씨가 이곳 나정 바닷가에서 노랫말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전촌리로 건너간다. 도보다리 주탑도 만파식적 모양을 땄다.


파도, 바람, 세월이 만든 전촌용굴

입구부터 전촌솔밭해변이 펼쳐진다. 지나온 해안마을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모래나 몽돌해수욕장, 뒤로 산책로, 소나무 방풍림, 수령이 꽤 오래된 해송 방풍림, 오토캠핑장, 31번 국도와 마을, 마을은 전촌항으로 이어진다. 방파제 들머리쯤에서 산으로 오른다.

전촌항

"이곳은 대한민국 해병대 해안초소입니다.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합니다."

전촌용굴은 최근까지 군사작전지역으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던 곳이다. 지금도 경고문이 보인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좋은 세월을 만나 개방되었다. 해파랑길, 감포깍지길이 개통되면서 어렵지 않게 용굴에 접근할 수 있는 탐방로도 조성되었다. 또 다른 경고문이 탐방객의 주의를 당부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풍화작용으로 낙석이나 고사목 전도 위험이 높은 지역이므로 산책 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파도와 바람과 시간이 만든 자연 조각품, 해식동굴 ‘용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휴일을 맞아 탐방객이 많다. 아이와 함께, 노부부가 함께, 젊은 연인이 함께 용굴 앞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한참 기다려 겨우 사진 찍을 기회를 잡는다.

사룡굴

전촌용굴은 사룡굴과 단용굴 두 곳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다.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네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사룡굴이다. 단용굴에는 감포를 지키는 한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일출 명소로도 알려진 곳이다. 동굴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일품이다. 동굴 속에서 일출 장면을 잡으려면 해 뜨는 각도를 잘 맞춰야 한다. 겨울철(12월-1월 중순)이 좋단다.

단용굴을 찾아간다.

나무계단을 다시 오른다. 산기슭에 핀 들꽃을 살핀다는 핑계로 걸음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소녀의 사랑'을 기다리는 노란 기린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고독'으로 남은 하얀 찔레꽃, 바람에 떨고 있는 인동덩굴이 매달린 산기슭을 몇 차례 오르내리며 대밭을 지나 바닷가로 내려간다.

단용굴

단용굴은 접근이 쉽질 않다. 해안가를 따라 남쪽으로 몇 차례 바위를 넘어야 한다. 확인 욕구가 강한 내가 바위를 타고 오르는데. 아내가 제주도에서 발목 다친 일을 상기시킨다. 포기하고 멀리서 줌으로 당긴다. 확대해 보면 동굴 안에 사람이 보인다. 사람은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산길을 벗나니 감포해수욕장이 시작된다. '감포'라는 유명세에 비하면 해수욕장을 볼품이 없다. 전촌 1리, 전동리를 지나면 감포리다. 갈수록 마을은 커진다. 멀리 높은 건물도 보인다. 경로당 앞의 할머니는 손주 대신 고양이를 어른다.

가자미를 말리고 있다. 다가가 뒷모습을 촬영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한다. 앞모습을 찍어도 좋단다. 잘만 찍어달란다. 그러면서 내일부터 감포항에서 가자미축제가 열린다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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