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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세인 Mar 31. 2023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가자

우당탕탕 유럽여행일기 in 헝가리 부다페스트

2022년 11월 27일 오전 10시 49분

빈 여행을 끝내고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안


빈에 있는 동안 유난히 날씨가 좋았어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파아란 하늘로 배웅을 해주는 빈을 뒤로하고 떠나는 게 내심 아쉬웠다. 부다페스트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 반, 빈을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반을 가지고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오후 2시, 빈에서 부다페스트는 가까워서 그런지 얼마 안 가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빈과 기차로 3시간 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곳인데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바르샤바와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동유럽 특유의 약간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친구와 밥을 먹고 천천히 부다페스트 시내를 돌아봤다. 크리스마스 기간이라 그런지 여기도 곳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했다. 겨울에 유럽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 같은데 정말 유럽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다. 누가 누가 크리스마스에 더 진심인가 대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딜 가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빈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고 와서일까 부다페스트 크리스마스 마켓은 그냥 평범하게 느껴졌는데 성 이슈튜반 대성당에서 한 크리스마스 맞이 행사만큼은 특별했다.

특히, 10분 정도 이어진 플래시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퍼포먼스와 함께 흘러나온 'Amazing Grace'와 성 이슈튜반 대성당이 잘 어울려서 멋졌다.

이건 부다페스트가 승!


부다페스트에 와서 빠지게 된 음식이 있는데 바로 헝가리안 피자 '랑고스'이다. 동그랗게 튀긴 밀가루 반죽 위에 치즈나 햄을 올려 먹는 건데 속 빈 호떡 위에 피자 토핑을 올린 것 같은 맛이 난다.

랑고스와 함께 사랑에 빠진 게 된 '토카이 와인'

헝가리 동북쪽에 위치한 토커이 지방에서 만드는 유서 깊은 귀부 와인이다. 디저트 와인으로서 스위트와인의 결정체라 불리는데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딱 맞았다. 우연히 들어간 와인 바에서 토카이 와인에 눈 뜨게 된 친구와 난 토카이 와인 한 병을 사들고 그 유명한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러 갔다.

오후 10시 12분, 국회의사당 야경이 잘 보인다는 스폿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상상한 야경은 다 어디로 가고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했다. 알고 보니 국회의사당 소등시간이 오후 10시였던 것이다. 우린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다가 불 꺼진 국회의사당을 보면서 토카이 와인을 나눠 마셨다.

생각해 보면 불 꺼진 국회의사당을 보는 관광객이 몇 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 그 나름 매력이 있어서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계획했던 일에 차질이 생기면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 원래였으면 난리를 쳤을 상황인데 오히려 계획에 없던 이 일이 재밌게 느껴졌다. 여행을 다니면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거기에 익숙해져서 성격이 조금 변했나 보다. 인생에 뜻하지 않은 즐거움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좋다.


부다페스트 마지막 날이 아닌 거에 감사하며 우린 터덜터덜 숙소로 향했다.


2022년 11월 28일 오전 9시 30분

전날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조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바로 이곳, '세체니 온천'을 가기 위해서였다. 1913년에 지어진 온천으로 온천이 아니라 궁전 같은 화려한 외관을 가졌다.

따듯한 물이 내뿜는 연기들 때문에 마치 신들이 모여서 목욕하는 장소같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교환학생 오고 가장 그리웠던 게 따듯한 온천에서 사우나 즐기는 거였는데 그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온천 덕분에 한결 몸이 가벼워진 우리는 서둘러 '부다 성'으로 향했다. 부다 성으로 올라가면 부다와 페스트, 다뉴브 강이 한눈에 보이는데 날씨가 흐려서 뷰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괜찮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속에 항상 되뇌는 말이 있다.


날씨와 같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말자! 오히려 특별하고 좋다 :)

부다 성 근처의 소소한 크리스마스 마켓과 어부의 요새, 마티에스 교회를 보고 우린 어제 못 봤던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기 위해 (오늘은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 딱 해가 질 때쯤 하늘이 맑아졌다.

부다페스트에 오고 내내 날씨가 흐렸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본 맑은 노을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밤, 드디어 우리는 그 유명한 국회의사당 야경을 봤다. 

부다페스트 여행을 찾아보면서 사진으로 정말 많이 본 곳이지만 실제로 보니 기분이 또 달랐다. 사진이 담지 못 하는 우아함과 반짝임이 있었다.

노랗게 빛나는 국회의사당 덕분에 황금색으로 변한 다뉴브강이 참 낭만적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항상 가족들이 생각난다. 같이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걸 본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가끔 코가 찡할 때도 있다.


황금빛 부다페스트를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이모부의 오랜 상태메시지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가자'였던 게 기억이 나 사진을 잔뜩 찍어 이모부에게 보냈다. 

이모부의 꿈과 같은 도시에 나 혼자 있는 게 죄송했지만 이렇게라도 부다페스트를 전해드리고 싶었다. 한국에도 이 아름다운 황금빛이 닿기를 바라며 마지막 사진의 전송 버튼을 꾸욱 눌렀다.


2022년 11월 29일 오전 10시 30분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 여긴 꼭 보고 가야겠다 싶어서 찾아간 곳이 있다.

바로 이 강가의 신발들을 보러 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강에서 파시스트에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는 신발 모양 조각품으로 다뉴브강 강가에 놓여있다.

누군가가 두고 간 꽃들이 놓여있는 신발들을 보며 부다페스트와 오랫동안 작별인사를 나눴다.


부다페스트에서 바르샤바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이모부에게 답장이 왔다. 너무 멋진 풍경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다음에 꼭 같이 가자는 말을 하셨다.


내게 부다페스트와의 다음이 있다면 꼭 가족들과 함께 하리라 다짐하며 이모부의 상태 메시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가자'를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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