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낭여행기3
이탈리아에 온지 4일째가 되는 날, 이 날은 회심의 여행지인 마테라로 가는 날이다.
이탈리아 남동부지역에 위치한 고대 동굴도시 마테라는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통해 알려진 도시이다. 이번에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사실 지명을 알게 된 도시인데, 영상을 보는 순간 ‘여기다!’ 싶어 로마 다음 여행지로 정했다.
마테라에 가려면 로마 떼르미니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근처 대도시로 가서 거기서 다시 사철인 레지오날레나 버스로 갈아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6시간이 넘는 대장정의 길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이탈리아가 생각보다 큰 나라라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대도시간 고속철로 이동해도 5-6시간씩 이동하는게 보통이었다. 마테라로 가려면 보통은 풀리아주 주도인 바리로 가서 거기에서 사철로 갈아타고 마테라역으로 가면 된다. 미리 예매해둔 로마 떼르미니역 출발 바리 도착 이딸로 기차를 타고 약 4시간여를 달려 바리역에 도착했다. 이딸로는 우리나라 KTX나 SRT 보다 넓고 쾌적했다. 미리 저렴하게 나온 프리마칸을 예매한 덕에 정말 쾌적하게 올수 있었다. 프리마칸에 타면 음료와 과자도 준다.
바리중앙역에서 마테라로 가는 사철을 탈수 있는 민간 기차 플랫폼 건물은 역 출입문을 나와 왼쪽 코너를 돌면 바로 나온다. 역내 발권기에서 표를 사서 우리나라 무궁화열차와 지하철을 합해놓은 듯한 레지오날레에 올라 마테라역으로 향했다. 한시간 반정도를 달려 마테라의 작은 시골역에 도착했다. 예약해둔 숙소를 앱으로 검색해보니 맵 상으로는 18분이라고 나오는데 도로를 언뜻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소 오르막길의 돌바닥을 이 뜨거운 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이미 나는 아침 일찍부터 6시간 넘게 달려 이곳에 온 이후라 변변히 점심도 못먹은 채였다.
그래서 택시를 타기로 맘 먹고 옆 앞 택시 승강장으로 보이는 곳에 섰는데 사람도 아무도 없고 택시가 도통 눈에 띄지 않았다. 작은 시골 마을이라 택시가 활성화되지 않은 듯했다. 우버를 검색해도 서비스지역이 아니라고 나오고 그늘 없는 거리에서 20분을 기다렸건만 택시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나는 예약했던 에어비엔비 숙소로 전화를 했다. 택시를 잡을 수 없다고 도움을 요청하니 30분 후에 픽업해주겠다고 했다. 택시가 혹여나 올까봐 역안으로 다시 들어가지도 못한채 뜨거운 태양아래 30분을 기다리려니 막막했다. 택시가 오면 타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정말로 30분 동안 택시는 오지 않았고 지쳐가는 와중에 숙소 호스트가 모닝같은 작은 차를 타고 와주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정말로 캐리어를 끌고 마테라역에서 마테라 동굴도시의 중심부로 가는 것은 나같은 중년여성에겐 좀 무리로 보였다. 사전에 검색했을 때는 이런 자세한 사정을 알수 없어 20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를 걸어갈수 있겠다 싶어 예약한건데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야 하는 실제는 그 시간으로 계산하면 안되는 거였다. 한낮에 태양을 받으며 오르막길의 돌로 된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간다는 것은 힘 남아도는 젊은이라면 몰라도 나같은 중년 여성에게는 고행이 될 뻔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숙소는 그 고생을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동굴마을 한 복판에 있는 전망이 좋은 숙소를 정한 덕분에 룸 안에서도 창문으로 마테라의 장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테라는 고대로부터 동굴에 굴을 파서 집으로 만들어 생활한 사람들이 모여산, 아주 가난한 마을이었는데 지자체의 대대적인 관광자원화 정책과 함께 이곳 동굴집에 살던 주민들이 근처 아파트나 주택으로 이주를 하고 대신 살던 동굴집을 개조해 이색 동굴호텔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임대를 해주는 식이었다. 동굴호텔이라서 이색적이면서도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조해 전혀 불편도 없었고 깨끗했다. 숙소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테라의 풍경은 그저 감동 그 자체였다. 이런 전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서칭을 한건데 정말 보람이 있었다.
동네를 언뜻 둘러보니 식료품 가게도 보이지 않고 돌과 계단으로 된 거리에는 관광객 무리가 있었지만 대도시에 비해 무척 한적하고 조용했다. 숙소 주인들은 이곳에서 떨어진 곳에 거주하다 보니 주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관광객들만 오가는 것으로 보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러 아껴뒀던 컵라면에 주인이 냉장고에 친절하게 서비스로 넣어둔 맥주와 와인을 마시던 그 날 밤 마테라 야경을 보며 ‘이게 실화냐?’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느라 고생했지만 그 고생을 보상받고도 남을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탈리아 자유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낭만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별이 반짝이는 마테라의 동굴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마테라 동네를 산책했다. 동네 역시 아기자기 예뻤다. 관광객도 많지 않아 고즈넉하게 걸어다니기 좋았다.
12시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원래 2박을 하려고 예약했었는데 하필 내일이 일요일이라 탈출해야 했던 것이다. 알고보니 이탈리아의 소도시를 오가는 사철이나 버스는 일요일에 운행을 안하는 경우가 많았다. 할수 없이 1박으로 줄이고 토요일인 오늘 근처 대도시인 바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바리는 도착하자마자 잘못 예약한 호텔 덕분에 첫날부터 공포로 다가왔다. 워낙 여러 도시의 호텔을 검색해 예약하다 보니 일부 실수가 생긴 건데, 그만 1인실 2성급 호텔을 잡은 것이다. 바리는 마테라에 가기 위해 어쩔수 없이 가는 여행지였기에 별 생각없이 역에서 가까운 호텔 중 저렴한 가격대의 호텔을 잡은건데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확 들었다. 이건 호텔이라기 보다는 오래된 가게안에 싱글침대 하나만 놓은게 아닌가 싶은 낡은 비즈니스용 건물 1층의 프론트 데스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고 더욱이 욕실은 인도의 변두리 욕실 같은 느낌의 정말 낡은 화장실이었다. 들어가자마나 공포감이 확 몰려왔다. 이곳에서 이틀밤을 보내야 한다니...! 콩닥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뭔가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공포를 이기며 이틀밤을 잘 것이냐, 아니면 호텔비를 날리더라도 다른 호텔로 옮길 것이냐의 기로에서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부킹앱을 켜고 오늘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근처 호텔이 있는지를 검색해봤다.
다행히 4성급 호텔 두 개가 근처에서 검색됐다. 그 중 하나를 골라 얼른 예약한 후 캐리어를 끌고 그 호텔로 걸어갔다. 울퉁불퉁 돌바닥으로 된 바리시내 거리를 캐리어를 덜컹 거리며 한참을 걸어가 새 호텔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콩닥이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바리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서 4성급이어도 로마 3성급 호텔보다 쌌다. 90유로를 날리고 급하게 잡은 호텔에서 비로소 평화를 찾고 요기를 히러 호텔을 나왔다.
그뒤 이탈리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1인실이 싼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부킹앱 예약 시스템은 원래 2인실이 디폴트로 설정돼 있어 처음엔 2인실로 호텔 검색을 해서 예약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한달 동안의 호텔비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고민하던 중 우연히 1인실 옵션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1인실로 검색하니 20-30%정도 싼 옵션들이 눈에 들어와 몇개 호텔을 1인실로 바꾸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아니었다. 너무 비좁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 호텔의 1인실은 입구 프로트 데스크 옆에 있는 한두개의 작은 공간을 호텔방으로 개조해 쓰는 거라 프론트 데스크를 오가는 직원과 사람들 발자국으로 소음과 불안감을 주었다. 이렇게 불안해하며 비좁은 곳에서 지내느니 차라리 돈을 더 쓰고 편안하게 있는게 낫다.
나는 이탈리아에 온지 며칠 안돼 바리에서 이런 낭패 경험을 한후 서둘러 부킹앱 예약 내역을 다시 검토해 무료 취소 가능한 1인실 호텔을 취소하고 2인실로 현지에서 재예약했다. 다행히 이틀 전까지는 무료 취소가능한 호텔들로 주로 예약을 한 덕분에 취소 수수료 지불 없이 취소를 할수 있었는데, 다만 닥쳐서 새롭게 예약해야 하는 호텔들은 가성비 호텔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한계는 존재했다. 어쨋거나 다소 비용이 더 지불되더라도 최소한의 쾌적함이 담보된 호텔방은 남은 여행에 있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에 비용을 더 지출하기로 맘먹은 건데,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팔청춘도 아닌 나이에 비좁은 누추한 호텔방에 홀로 있노라면 여행의 환희는 커녕 불안하고 청승맞은 기분이 들어 여행의 기분을 망쳤을 것이다.
찬찬히 보니 바리도 꽤나 이쁜 도시였다. 바리역 앞으로 넓은 로데오거리 같은 화려한 거리들이 이어졌고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구시가지가 나오는데 역시 이탈리아 구시가지답게 고풍스럽고 이뻤다. 구시가지 끝에는 해변도 나오고, 여러모로 관광하기에 괜찮은 도시였다. 바리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리역 정면 맞은 편에 있는 호텔 중에서 고르라고 추천하고 싶다. 로데오거리같은 화려한 길거리도 이쁘고 안전해 보이기도 했다. 바리역 뒷편은 다소 공장지대같은 느낌이어서 주의해야 한다. 구글 어스를 켜고 출입문 앞쪽 대로변 쪽인지만 보고 고르면 된다.
바리에서의 이튿날엔 폴리냐노 아마레라는 이색적인 해안 도시로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폴리냐노 아마레는 바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 예매를 미리 하지 않아도 역에 있는 티켓발권기에서 발권해서 바로 타면 된다. 소도시를 왕래하는 비둘기호 같은 레지오날레는 지정석이 없기에 예매가 굳이 필요 없다.
폴리냐노 아마레는 작은 해안 도시였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던대로 특이하고 이뻤지만 작은 해안가 도시라 전부 둘러보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대표적인 관광 스팟인 해안가 절벽이 보이는 다리 근처에 아기자기한 상가와 음식점들이 즐비해있고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여러개 있다. 해안가 절벽 아래로 내려가 강가에 걸터 앉았다.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오래 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싶었으나 생각외로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었다. 아기자기한 해안가마을을 걸으며 구경하다 근처 해산물 튀김으로 유명한 가게에 가서 점심을 사먹고 다시 기차를 타고 바리로 돌아왔다. 바리역 앞에 있는 로데오거리를 따라 가며 길거리음식도 사먹으며 구시가지도 둘러본 후 그렇게 바리에서의 2박3일이 무탈하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