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
한줄기 희망이라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아? 우리 형님이 한나라당 의원이야!! 그 선생 어딨어? 당장 나오라고 해!! 내가 가만두나 봐라. 아주 다시는 이 일 못하게 만들어놓을 거야. 어디 선생 자격도 없는 게 애들 가르친다고……. 어디 있어? 당장 불러와!”
학생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 학원에 와서 한바탕 난동을 피우다 갔다.
나 때문이란다.
출석을 부르는 내내 방해를 하고, 컴퓨터 전원을 꺼대서 강제로 자리를 이동시켰던 학생의 아버지다.
평소 그 학생을 너무 예뻐했던 탓일까?
타일러도 끝끝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실실 웃으며 장난을 치길래, 교실 밖으로 나가라 했더니 울면서 집에 갔단다.
그리고는 그랬다지.
“코니 쌤이 때렸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그냥 집에 왔어.”
이에 화가 난 부모님은 번갈아가며 학원에 전화를 해댔고,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때린 기억은 없는데…….
학원에서 원장님과 cctv를 확인해본 결과, 당연히 때리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은 항의를 멈추지 않는다.
뭐 별로 억울하진 않다.
상대가 웬만해야 억울함도 느껴지나보다.
다만 학원에 피해를 입힌 것 같아 그건 죄송했다.
약간 스트레스가 쌓인다.
누가 먹보 아니랄까봐, 이 와중에도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고싶다.
마침 얼마 전 동생이 추천해준 닭집이 떠오른다.
“안녕하세요? 치킨 한 마리만 주세요.”
한 마리에 겨우 만 원밖에 안 하는데, 교촌 치킨과 제법 비슷한 맛을 내는 닭집이란다.
한겨울, 한 면이 탁 트인 공간에서 닭을 튀기던 사장님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나를 반겼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튀겨져 있던 닭을 능숙한 손길로 꺼내 커다란 기름통에 넣는 사장님의 표정이 신나 보였다.
이 늦은 시각, 나는 머리를 대면 바로 당장이라도 기절할 수 있을 것처럼 에너지라곤 없는데, 사장님은 심지어 콧노래라도 부를 태세다.
빠삭하게 튀겨진 치킨을 꺼내든 사장님은, 주걱으로 양념을 예쁘게 묻혀, 동그란 통에 가지런히 담아 나에게 건넨다.
그 모든 동작이 너무 자연스럽고, 일면 여유가 있어 멋지게 보일 지경이었다.
만 원을 주고 받아든 치킨 통은 뜨끈뜨끈했다.
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와 한입 베어 문 치킨 맛은 정말 교촌 치킨 비스므레했다.
그 순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닭을 튀기던 사장님 모습이 떠올랐고, 나는 결심했다.
‘학원 강사를 때려치우고, 치킨집을 해야겠다!’
학원 강사는 20살 때부터 35살 때까지 해오던 일이었다.
가르치는 과목은 바꿨을지언정, 직업 자체를 바꾼 적은 없었던 내가 느닷없이 치킨집을 한다 하니 주변에서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첫째, 내가 원장을 하지 않는 이상 학원 강사의 생명은 짧디짧다.
그런데 나는 학원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둘째, 학부모나 학생들을 상대하기가 갈수록 어렵고 스트레스다.
셋째, 저출산 시대인만큼, 학생의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강사라는 직업 역시 경쟁력이 말도 못하게 세질 것이다.
넷째, 학원 강사의 월급은 고등부 수업을 하지 않는 이상은 거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는 ‘워라벨’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등부 수업을 하고 싶지 않다.
다섯째, 일단 먹는 장사는 기본만 잘하면, 남는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에게 치킨집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든 이유였다.
하지만 혼자 할 자신은 없었다.
뭣보다 내겐 같이 있는 동안, 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와 함께라면 닭집을 하는 일이 굉장히 신날 것 같았다.
마치 데이트하면서 돈까지 버는 느낌!?
우리의 닭집은 닭집이지만, 기름내 닭내보다는 커피향이 날 것 같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남친 덕분에 그 공간엔 매우 세련된 음악이 흐를테고, 내 가슴도 그에 맞춰 웅웅~뛰겠지.
남친이 닭을 튀기고, 버무리고, 통에 담아주면, 나는 그걸 받아 비닐에 넣은 후, 손님에게 내밀며 계산만 하면 된다.
지금은 주말에만 만나는 우리지만, 닭집을 함께 운영하게 되면 매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남친은 같이 있는 내내 즐거운 사람이니까, 같이 일하면 웃을 일도 더 많을 거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벌써 설레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남친에게 닭집을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
처음엔 시큰둥해하던 그 사람도 닭맛을 보고, 내가 ‘상상으로 내본’ 수익 계산을 듣더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뭣보다 포장 전문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점에 집중했다.
설령 실패를 해도 크게 손해날 것은 없다는 확신이 들자 같이 해보자 했다.
부모님 역시 일단 내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남자친구와 동업으로 하겠다고 하니,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모두가 응원을 해주었다.
비혼주의자인 내가, 이참에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하는 것 아니냐며 은근슬쩍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무엇을 해도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일단 내가 맛을 봤던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에 연락했다.
가맹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교육을 받기로 했다.
적당한 자리에 가게를 얻고, 가맹비도 입금했다.
그리고 교육 날짜를 잡았다.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남자친구와 함께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길처럼 설레기까지 한다.
“오빠! 우리 장사 너무 잘되면 어쩌죠?”
“정선씨, 너무 희망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안 될 경우도 생각해보고 그래야 해요.”
그럴 리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잘 안 될 리 없지.
나는 초를 치는 듯한 그의 말에 살짝 입술을 삐죽였다.
지금부터 나의 목표는 하나다!
지루하디 지루했던 학원 강사 생활은 싸그리 잊고, 세상 행복한 닭집 사장님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