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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Aug 04. 2024

감정을 비춰주는 거울

추상적인 생각을 눈으로 확인하기

비오는 날이었어요.

비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던 걸까요?

소빈이는 친구 영우와 크게 다퉜습니다.

작은 오해에서 시작했는데, 둘 사이는 어느덧 내리는 비보다 더 차가워졌습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소빈이는 마음에 물을 먹은 것 같았어요.

머리 속은 내리는 빗방울보다 더 시끄럽고 복잡했지요.  





“소빈아,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어?”

소빈이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보고, 엄마가 묻습니다.



하지만  소빈이는 뭐라 답하기가 어려웠어요.

“친구랑 좀 싸웠어요.” 소빈이가 중얼거렸습니다.



엄마는 소빈이가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는 것을 알기에 걱정스러웠습니다.

“어쩌다가?”

“모르겠어요. 영우가 갑자기 화를 내더라고요.”

“아이고~. 영우가 나빴네. 우리 소빈이한테 화를 내고말야. 나중에 네 마음이 풀리면, 그때 물어보도록 하자. 왜 대뜸 화부터 냈는지...”



엄마는 소빈이의 편을 들어줬지만, 소빈이는 이상하게도 엄마의 말이 불편했어요.

자기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영우만 나한테 잘못한 걸까? 나는 잘못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이니, 잠도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쓰려니, 어쩐지 멋쩍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종이에 이름을 붙여주었죠. 

‘대빈’



소빈이는 종이에 쓰여진 ‘대빈’이라는 이름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웃고나니 뭔가 마음이 열리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대빈’이에게 오늘 자신이 느낀 감정과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적기 시작했습니다.

 “대빈아. 안녕? 나는 소빈이라고 해. 대빈이라는 이름처럼 큰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난 오늘 친한 친구 영우와 싸워서 너무 속상해. 아침부터 비도 오고, 기분이 너무 안좋은 하루였어.........”로 시작한 글은 어느덧 대빈이의 온 몸에 적힐 정도로 빼곡해졌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말들이, 손끝을 타고 끝도 없이 흘러나왔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소빈이는 문득 기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대빈이에게 적힌 글자들 중, 몇몇 글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거든요.

마치 소빈이의 감정을 맑은 거울로 비춰주는 것 같았어요.



자신이 쓴 글을 보다가, 소빈이는 자신도 모르는 새 영우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영우가 자신에게 화를 냈을 때, 왜 기분이 나빴는지도요.



다음 날, 소빈이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어제 글을 써봤는데, 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어제는 엄마한테 영우가 갑자기 화를 냈다고 말했는데, 실은 제 잘못도 있었어요.”



엄마는 소빈이가 기특했습니다. 그래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래. 네 마음이 뭔지 이해하게 됐구나. 멋있다. 소빈아.”라고 말씀하셨어요.




학교에 도착한 소빈이는 영우를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영우야. 내가 어제 내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너에게 말을 너무 못되게 한 거 같아. 미안해. 어제 집에 가서 글을 쓰면서야 깨달았어. 나도 모르게 널 오해했던 것 같아.”



영우는 놀란 눈으로 소빈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평소 소빈이는 자신이 잘못을 했든 안 했든 영우가 사과를 먼저 해야지만 마음을 풀어주는 친구였거든요.



“나도 미안해 소빈아. 좋은 말로 할 수도 있었는데, 어제는 버럭 화를 내버렸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네가 사과를 안 받아주면 어쩌지? 걱정했었어.”

“그럴리가! 우리가 그런 사이냐? 그나저나 너 어떤 글을 쓴 거야? 네 글이 궁금해.”



소빈이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자신의 글을 영우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뭐야? 종이 이름이 ‘대빈’이야? 하여튼 이소빈 엉뚱하고 귀엽다니까!”

영우는 처음엔 종이에 붙여진 이름 때문에 웃었지만, 점점 진지하게 글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와! 신기해. 이렇게 쓰다보면, 정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어떤 감정인지 잘 알 수 있겠는데?”

이후로 영우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소빈이처럼 글을 쓰게 되었고, 둘은 각자의 글을 가끔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참 희한해. 글을 쓰다보면, 내가 상대방이랑 왜 갈등했는지 알 거 같아.”

“그렇지? 게다가 상대방이 나한테 왜 그랬는지도 이해가 된다니까.”

“와!! 나만 경험한 거 아니구나? 진짜 신기하다.”



소빈이는 영우와의 대화를 통해서 글쓰기의 놀라운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학교 신문에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칼럼을 썼어요.



이 칼럼을 인상 깊게 읽은 학생들은 소빈이와 영우처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읽어보게 되었죠.

변화는 학교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 역시 소빈이의 변화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엄마는 자신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그리고 지금의 감정들을 글로 쓰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소빈아. 네 덕분에 엄마도 글을 써봤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게 됐어. 앞으로 뭘 하고싶은지도 말야.”

“엄마, 진짜 멋져요!”



소빈이의 작은 변화 덕분에, 소빈이 주변 사람들은 서로 더 깊고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답니다.  

오늘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는 글쓰기를 하는 건 어떨까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저 종이에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에게 말하듯 글을 쓰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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