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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이 좋아지는 나이가 되다니!

당신은 이미 소중한 사람으로 변해 있죠!

by 이림

여름 장미가 화사한 요즘이죠.

구부러진 공원 높은 담벼락 따라, 길 끝에서도 내다보이는 발높이보다 눈이 닿아 이어진 장미꽃이 얽힌 담벼락 이어져 있네요.

지나는 사람마다 머뭇거리게 만드는 장미꽃 무리들이 시선을 잡아 두네요.

발길을 그리로 이끌죠.


공원 산책길에 처음 들어선 이들은 장미꽃 덩굴 앞에는 어김없이 한두 사람이 서 있고 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이죠.

“이제 꽃 사진을 찍어도 민망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어”라는 멋진 카디건을 걸친 여성의 작은 목소리에 놀래죠. 그래요! 저도 그런지 꽤 되었는데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산책길에 익숙한 이들은 수상하다는 듯 힐끔거리며 쳐다보지만 걸음이 바삐 공원 깊숙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죠.


돌아오는 길, 공원 담벼락을 따라 쭉 수놓고 있는 장미 덩굴을 발견하곤 다가가 어린 시절 기억을 따라 꽃잎 속을 헤쳐 보네요.

이젠 그 시절 청초하고 상큼한 당신의 이름은 보이지 않네요.

장미꽃이 아름다워 꺾어서까지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 그런 생경스런 나이가 되었죠.

단지 꽃이름은 기억하고 이름으로 불러줄 수 있을 뿐이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네요.

깊이 덩굴 속까지 들여다보며 꽃잎 따라, 잎에 얹힌 모양 따라 한참이나 서성이며 사진을 여러 장 남기죠.

오던 길을 돌아서 다시 되돌아가 한 장 더 찍어보네요.

혹이나 내년 이맘때에는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드네요.


어릴 적 내게 장미란 겹겹 꽃잎 속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숨겨놓은 곳이었죠.

가까이 가면 가시에 찔려 줄기서 자라난 가시를 뜯기도 했다.

어른들은 사랑은 장미꽃 같아, 아름답지만 다친다고 조심하라고 했죠.

가시에 찔리고 나면 줄기서 자라난 가시를 심술궂게 한참이나 뜯어내기도 했죠.

찔린 면에 침을 발라 친우 들이랑 철없이 쫓고 쫓기며 한참을 놀았던 기억이 떠오르죠.

이제 와 보니 예쁘다 못해 신비한 진한 검 빨강 색깔이 진짜 아름답죠.

그런 건 모르고 괜한 가시들만 괴롭히기만 했죠.

마지막을 치닫는 한계에 사는 내게는 더욱 그렇죠.


이십 대에 장미는 누가 뭐래도 사랑을 표시하는 꽃다발을 가뜩이나 없는 용돈을 털어 장미꽃을 샀던 적이 많이 있죠. 유난히 장미를 좋아하는 당신이었죠.

기억을 떠올리니, 생각보다 너무 커다란 묶음이어서 낭만이고 뭐고 끙끙거리며 들고 걷기 바빴던 기억에 얼굴이 절로 빨개지네요.

삼십 대의 기억엔 장미꽃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네요.

일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내달렸던 것 같죠.

마침내 사십 대가 한참 지나서야 장미에 시선을 주고 살피게 된 듯하네요.

‘서너 겹 꽃잎 사이 속을 헤치면 깊은 곳, 더 이상 갈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모든 꽃잎마다 지상으로 심연을 이끌고 온 검고 붉은 색깔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검은색꽃 부분은 나’’이고요, 붉은 부분은 ‘당신’이길 바라는 마음도 곁들이게 되었다는 것도.
그렇군요! 장미마다 이름이 제 각각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지는 해가 보이는 시절이 되니,

해마다 기념일이면 꽃, 그리고 한 보따리의 장미꽃 선물을 들고 오곤 하죠.

사정으로 한두 번 건너뛴 적도 있지만, 본인이 의식처럼 챙긴 걸 당신이 기억해주지 못해 서운했을 것 같다.

익숙해진 사이에 어느새 그걸 선물이라 여기지 않았던 걸까?

중요하고 소중한 것 일지라도 반복되어 익숙해지면, 당연해지면 잊히기 쉽죠.
이제 당신은 가까이 다가가서 벗겨낸 아름다운 심연이 된 사람으로 변해버렸죠.

머리 위 숲길 장미 덩굴 사이로 밤길 별이 보이면 길이 된다는 의미이죠.


그날 밤은 당신이란 별이 내 삶을 삶을 이끄는 등대가 되었죠.
누군가는 밤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아침으로 기억해도 좋을 시절이 되니,

당신은 소중한 사람으로 이미 변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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