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른 계절이 곧 찾아오면 당신을 기다리네요!
아, 역시 여름인가!
지루한 장마 비가 왔다가 가면 진정한 여름이 온다고 하더니!
본격적인 폭염 여름은 시작이자 한창이네요.
거실 밖 정원엔 매미가 새벽녘부터 아침나절까지 맴! 맴! 울부짖네요.
더위에 취약한 너에겐 참으로 힘든 계절이기도 하네요.
나 역시 포함되죠.
그렇다 해도, 슬픈 매미의 울음과 함께 이 여름이 지나면 곧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리라!
여름이 한창일 즈음이면,
쉬이 지치기에 가능한 집안에 있을 때는 거실 커튼을 쳐두고 뒹굴죠.
외출할 때에는 챙이 긴 모자나 구석에 놓아둔 양산을 꺼내 들고선 그늘 속으로 걸음을 옮기죠.
여름날의 햇빛은 무자비하고 때로는 탈진시키거나 잔인해질 수도 있기에 피하는 것이 관건이죠.
오늘도 오후엔 홀로 걷는 산책 길에 만난 이 여름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되네요.
낮에는 불볕더위, 밤에는 열대야의 기세에 시달리다 보면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다.
한낮에 목덜미로 후끈하게 불어오는 끈끈한 바람.
등허리를 축축하게 적시는 땀방울.
밤이 깊어가도 어둠이 내려앉아도 낮에 달구어진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네.
서너 걸음만 걸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고 보송보송하던 살결은 어느새 갓 지은 인절미가 되기도 하네.
야속한 하늘은 이제 시작이라는 기세로 불볕을 퍼붓는데,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모자를 눌러쓴 정수리도 타들어 갈 듯하다.
그럴 때이면, 눈앞에 실개천이라도 흐른다면 바짓단을 걷고 양손에 신발을 쥔 채 첨벙첨벙 들어가도 좋겠다.
그래도 걷다 보니,
인생에서 축제라고 부를 만한 시기에만 이런 여름과 함께 찾아오는지 않았던가!
“누구에게나 청춘의 한구석에는 여름은 이런 빛깔이지 않았을까!”라고 돼 물어보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눈에 띄지 않던 이름 없던 것들에게도 계절을 맞이하는 기쁨 있었다고”.
그게 청춘의 사랑이자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었던가?
그 시절, 여름 바닷가 모래사장을 함께 건너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청춘의 한구석에는 이런 빛깔이 아니었던가!.
내 남은 빛나던 여름은 짧았고, 그 기억마저 너에게 잊히고 말겠지만,
하긴 “넘어지지 않는 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라고 해도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지요.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우리 마음 안에 그곳이 새겨지는 법이라고!
공원 입구를 지나 숲길에 들자, 거짓말처럼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오랜만에 숨이 트이네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드는 청량감에도 여전히 머릿속은 안개 낀 듯 멍하네요.
밤이 깊어 어둠이 내려앉아도 낮에 달구어진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네요.
그럼에도 도시의 길가 플라타너스 나뭇잎에 놓인 밤길은 여전히 푸르게 빛나네요.
이 시각엔 공연히 낙관적인 기분이 깃들어 방황하기도 하고 세상이 낯설어지는 이상한 찰나도 경험하죠.
이제 곧 맞이할 끝 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과 겹쳐 다가오는 스산한 가을바람을 정말 좋아하죠.
아! 결국 목적 없이 걷다 보니,
이 지루한 여름도 지나 선뜻 가을로 가지 않겠는가!
가을도 멈춰 서면 한 겨울에 들어서고 진한 아픈 추억 곁으로 가 있겠지요!
이제 다른 계절이 곧 찾아오면 당신을 기다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