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단잠이 여름날, 아름다운 풍광으로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골 도시에서 맞는 끝여름날의 풍광이 있다.
선 단잠에 깃든, 낮잠이 있는 여름날의 모습들이다.
오랜만에 외부 강의를 떠난 곳에서 잠시 점심식사 차 들린 장소에서 만난 시골 도시의 풍광 속은 여유로운 사람들의 일상들이다.
시골도시 여름 풍경에는 한낮의 식사 뒤, 식곤증과 피로에 지쳐 졸음에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가로운 오후의 도시 시장 풍광들이다.
꾸벅꾸벅 졸거나 선 낮잠 자는 사람들이다.
마을 입구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담화를 나누는 노인과 한쪽 곁에 단잠을 즐기는 노인,
미용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은 미용실 아주머니,
파리채를 손에 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구멍가게 슈퍼 사장님,
배달 오토바이 사이로 휘장이 걷힌 선풍기 뒤로 보이는 중국집 주인장,
시골 번화가(?)를 빠져나오면, 고추나 가지를 말리는 평상 위에서 멍멍이와 나란히 평상에 누운 할머니.
무더위가 잠시 주춤해진 한 여름의 오후, 시골 동네 곳곳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름날이나 가을에 접어들 즈음이면, 어린 시절에는 빠뜨리지 않고 낮잠을 잤다.
학교가 파하고 점심을 먹고 몸이 나른해지는 오후 시간이면,
엄마는 거실 마룻바닥에 얇은 이불을 깔았고 깃털처럼 얇고 몸에 닿으면 기분 좋게 까슬까슬했던 그 이불 위에 누우면 이마 위로 바람이 불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한 줌의 시원한 바람에,
오래된 선풍기의 끼익 끼익 하는 회전 하며 내는 소리에,
바람의 방향을 내 쪽으로 돌려주던 엄마의 부채질에,
곁에 먹다 남은 단 수박을 쫓은 파리들에,
“여름 낮잠은 보약이라던 엄마의 말이 아직도 귀가에 선하게 들린다”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있었다면, 그 시절 여름날의 낮잠이 아닐까.
“삶의 긴 여정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아마! 그때가 따지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넘치던 기억”이었다고.
그건 그 시절의 엄마 곁의 여름날 짧은 단잠이 아닐까!
끝 여름날의 강의실 풍경도 찬 커피 한잔을 마시고 지나쳐 온 길에서 본 시골도시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점심식사 후, 40여 명의 수강생의 반쯤의 졸거나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시선만은 앞으로 한다.
그래도 모른척하며, 오전 강의내용을 질문으로 대신한다.
선 단잠이라는 잠시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단잠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모두 쉽게 잠 못 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낮에도 밤에도 멈추지 않는 메시지 알람소리,
쉼 없이 깨어 있어야 제대로 응답하는 삶,
지나친 연결과 개방이 주는 심리적 고립과 단절 사이에서 모두 잠시도 눈을 붙일 틈조차 잃고 사는 건 아닐까.
서로의 낮잠이라는 휴식을 지켜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잠깐의 여유를 갖게 되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완전히 닫히지도 활짝 열리지도 않은 공간, 그런 곳이라면 잠깐 단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단잠이라니…
쉼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경쟁이 있는 삶 속에서 잠시 눈을 감는 낮잠은 여름날의 선물이 아닐는지!
오늘도 엄마의 부채질의 기억을 찾는 낮잠을 허락하는 장소들을 찾는다.
뜨거운 햇빛이 슬쩍 가려지고, 바깥 소음은 들어올 수 없으나 바람은 드나들 수 있는 틈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단꿈마저 꿀 준비가 되어 있다.
너와 나의 단잠이 이 여름날, 아름다운 풍광으로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