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란 행운이 곁에 있다면, 같이 가고 싶은 장소들이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 따라 세상 멀리 날아가고 싶습니다.
깃털처럼 툭 툭 털어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생생한 지난 기억이 있는 추억의 장소에도 가고 싶습니다.
젊을 때는 돈이 없어 떠나지 못했고, 나이 들어서는 바쁜 일에 메여 즐길 수 시간이 없어 떠나지 못했습니다.
더 나이가 들어, 여유를 생기니 이젠 몸이 아파 떠나지 못합니다.
먼저, 감회가 깊은 지난 추억이 깊던 곳으로도 떠나고 싶습니다.
공지천 샛길을 걷으며 들른 호수가 한가득 보이던 너른 2층 카페에도,
이젠 허물어 새집으로 바뀌었다는 치악산 자락의 볏짚으로 쌓아 만든 후배의 단출한 집에도,
저녁노을 지던 동해바다 옆, 경포호수가 내려 보이던 오래된 낡은 정자에도,
설악의 큰 바위들 사이로 찬 물줄기에 발 담거든 그 거침없이 호기를 맑은 계곡 웅덩이에 다시금 발을
담그고 싶습니다.
새로운 것들이란 아마 이전엔 관심이 덜해 지나쳐 버린 것들입니다.
행운이 당신 곁에 있다면, 같이 손잡고 가고 싶은 장소들입니다.
갤러리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멋진 그림들을 직접 보고,
도심의 낮고 창 없이 돌아 지어진 예쁜 그림 같은 건물들에도,
그리고 멋진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들고서 처음 맞는 다정한 사람들과 눈인사도 나누어 보고,
프랑스 음식점에서 새로운 미식도 경험해 보고,
남해바다의 노을 지는 해변가에서 맞는 자연풍광도 느껴 보고,
이전에 관심 없던 처음 보는 꽃들과 편백나무 숲도 거닐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젠 갈 수 없을지도 모를, 한창 세상을 휘젓고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숱한 출장지에서 만났지만, 스치고 지나친 해외 추억이 깃든 곳에도 타임슬랩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이태리 북부의 코모호수에서 배를 타고 연회를 즐긴 고성에서의 사흘의 기억도,
미국 그림 같았던 산타모니카의 나지막한 흰 건물들 속에서 쇼핑과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만난 흰 베이지색
지중해식 건물들도,
그리고 해안가의 이색적인 크랩식당에서의 새로운 맛과 저녁노을에 비친 바다의 풍광 속 연인들도,
산 위의 고급빌라들이 나란히 들어선 홍콩 해안 모래사장에서 출장 간 직장동료들과의 밤새워 마시던 맥주파티의 기억도,
다시 한번 거센 찬 바람 불어오면,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멀리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이 여름을 넘어서, 가을에 멈춰 선다면,
어느 한 겨울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시절 곁으로 가있고 싶습니다!
그때는 아마, 계절을 떠나보내기 싫은 하늘에는 검푸른 구름으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떠나서 가보지 못한 샛길을 거닐고, 다시 마주치는 지나간 길을 걷다 보면, 아픔을 지나 회복의 계절로 들어가지 않겠는지요!
어떤 시간이든, 어떤 장소이든, 어떤 사람이든 추억이 생겨나면 가슴에 새겨지는 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기억이란 행운을 누릴 수 있다면, 당신도 데리고 가고 싶은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