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듯 없는 듯
청정 김병효
다시 봄입니다
고요한 듯 분주하게
새로운 몸짓을 시작하는 겨울 끝자락
몇 겹의 허영과 교만을 버리려 참나무 숲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점점이 꽃잎처럼 여려지는
햇살
아직 조금은 겨울이 지나지 않은 아름다운 미황사를 찾았습니다
들릴 듯 말 듯
스치듯 말 듯
작은 바람 한 점이 산기슭을 오르고
세심당 꽃살문 넘어
문틈 빼 꼼이
침묵하듯 고요히 번지는 향내
문득, 어느 시인의
소담하고 맑은 시 한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80년대의 억센 격정의 시간을 보내고
짧은 생을 마감했던 마흔여덟 구월 가을
나는 땅끝 달마고도 숲길
애기 동백나무 아래서 물푸레나무를 생각했을까요
애일 듯 낮달이 조력자처럼 스쳐 갑니다
가만히 오래된 대웅전 주춧돌에 앉아
청매화처럼 말갛게 사라진 그 향기 담을 듯합니다
잘 지내시나요
지금도 이곳에서 다 쓰지 못한 문장 되살아날까요
올려다본 파란 하늘
*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시집 저자 김태정 시인을 그리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