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청정김병효
꼭짓점과 꼭짓점 사이
아직 여물지 못한 달은 팽창을 멈추지 않은 채 달아오르고
허기진 억센 세월은 눈자위 진물 되어 진하게 배어난다
먹빛 하늘이 시리도록 지나는 여름날
질척한 흑갈색 밭에 발자국이 선명하다
쇠락한 꽃잎은 불에 탄 오징어처럼 오그라져
붉었던 지난 시절 그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유폐로 옹이처럼 박혀 긴 세월을 지나고 있다
달무리 진 타향살이 섧기도 해서
내 기록의 하류는 어느 난간 경계에 아슬하게 걸려 꽃을 떨군다
구구구
비둘기 울음 저리도 슬퍼
모진 세월 잔상으로 퇴적되는
누천 번 그림자만 몸 안 가득 스미듯 들어와
잔물결처럼 나는 다시 부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