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의 문은 ‘먼저 움직이는 자’에게만 열린다
2021년 4월, 효성FMS의 '정기 결제 자동화 시스템 (CMS)'을 판매하는 대리점 사장님들을 대상으로 한 B2B 디지털 마케팅 교육장에서 50대 후반의 한 대리점 사장님께서 담배 한모금을 깊이 빨아들이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들어 매출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직원도 많고 고정비 비율도 높은데 큰일입니다. 빨리 변화해야 하는데 변하기가 쉽지 않아요. 가장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B2B 디지털 마케팅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그런데 바로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30대 초반의 여성 사장님이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조용히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대표님, 이번 교육에서 너무 상세하게 B2B 디지털 마케팅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저희 같은 작은 조직이 변화가 힘든 큰 조직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거든요. 시장과 매출, 점유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습니다. 살짝만 언급 부탁드립니다." 이 장면에서 최근 5년사이 B2B 시장의 흐름이 잘 보입니다. 변화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기존 강자와, 기회를 포착해 빠르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도전자 간의 극명한 대비 말입니다.
한때 국내 자전거 시장을 호령했던 삼천리 자전거는 2010년경부터 저렴한 중국 외주 생산에 의존하고, 오랜 기간 연구개발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를 읽지 못한 채 제품 혁신은 더뎠고, 영업은 여전히 국내 대리점 중심에 머물렀죠. 기존 유통구조는 여전히 전통적이고, 대리점주들은 고령화되어 디지털 마케팅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더 민첩하고 디지털에 능숙한 경쟁사들에게 시장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겠죠. 이런 케이스는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변화에 저항하다가 결국 시장에서 밀려나는 기업들의 이야기는 너무 많아서 세기도 힘듭니다.
5년 전 저의 부친이 모기관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조언드렸습니다. "아버지, 선거의 성패는 DB 확보와 디지털화입니다. 오프라인, 온라인, 콜센터를 통해 적절한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 우호적인 조합원 수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해요." 하지만 아버지의 답변은 확신에 찼습니다. "디지털 마케팅, 전략... 그런 거 필요없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놓은 인맥이 있어. 상대방이 아무리 전략, 전술을 만들어도 결론은 정해져 있다. 내가 이긴다. 걱정하지 마라!" 결과는 어땠을까요? 십몇 년 어린 경쟁자가 규정의 헛점을 공략한 조합원 확보, 체계적인 DB를 활용한 오프라인·온라인 홍보 전략, 각각의 니즈를 공략하는 맞춤형 가치 제안으로 아버지를 완패시켰습니다. 경험과 인맥이라는 전통적 자산이 체계적이고 디지털화된 전략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며칠 전 테헤란로에 위치한 한국 엡손(Epson)에서 대형 프린터 유통을 담당하는 채널 대리점 대표님들을 대상으로 B2B 디지털 마케팅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강의실은 로마 쇠퇴기의 전투 직전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루해하는 피곤한 표정의 노병 같았고, 누군가는 방패 뒤로 적을 살피는 경계병 같았고, 또 다른 이는 돌격을 준비하는 서슬 퍼런 눈빛의 기병 같았으며, 누군가는 돌진의 타이밍을 재는 병사 같았습니다. 연배가 상대적으로 높고, 디지털화가 덜 되어 있는 이 영역에서도 몇명은 눈빛이 달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종 판세가 바뀌곤 하죠. 대부분이 안주할 때 소수가 치고 나가면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특강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들! 지금이 기회입니다. 뒤에서 곰이 달려오고 있어요. 더 가벼운 운동화의 신발끈을 동여매고 남들보다 먼저 치고 나가야 합니다. 지금 즉시 출발하지 않으면... 아시죠?"
B2B 시장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지금까지의 성공 경험으로 인해 변화 동기가 낮으며, 디지털화가 되어 있지 않은 영역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합니다. 이런 영역이야말로 패스트 팔로워에게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조금만 변화해도 디지털 마케팅과 체계적인 세일즈 방식으로 판도를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죠.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먼저 시작하는 것'입니다. '완벽'은 나중에 찾으세요. 맨땅에 헤딩하며 노하우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경쟁자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에 안주하고 있을 때, 기본적인 디지털 마케팅 툴만 활용해도 압도적인 차별화가 가능합니다. 고객 데이터베이스 구축부터 시작해서, 온라인 콘텐츠 마케팅, 소셜미디어 활용, 고객 관계 관리 시스템(CRM) 도입까지. 하나씩 단계적으로 도입해도 기존 경쟁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시장을 쉽게 빼앗을 수 있다는 겁니다.
디지털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의 문제죠. 뒤에서 달려오는 ‘곰’은 90년대 후반에는 IMF사태였고, 2000년대 후반에는 '금융위기'였고, 2010년대 후반엔 '코로나 사태' 였으며, 그리고 2020년대 중반부턴 'AI' 입니다. 효성FMS 30대 여성 대리점 사장님의 전략적 속삭임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기회를 포착하고 먼저 움직이고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존 강자들의 빈틈을 노리며, 더 나은 고객 경험 (CX)과 효율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당신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무거운 몸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실패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회를 포착해 빠르게 변화하는 가벼운 몸집의 승자가 될 것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달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