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손- '임포스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책가방속에 알록달록 예쁜 학습지가 있었다. 이걸 열심히 색칠하고 꾸몄을 아이를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꺼내본 학습지엔 오늘 하루 아이의 감정이 들어 있었다. 수업 시간에 감정과 관련된 다양한 어휘를 배우는 모양이었다. 순간, 학습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적혀진 감정과 아이가 쓴 짧은 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고른 감정 단어는 '부담스러워요'였고 예문은 이랬다. "엄마, 할일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워요." 그 옆에 나도 그려져 있었는데, 내 말풍선에선 이런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루지 말았어야지."
와 소오름. 내가 매일 하는 말과 토씨 하나 안 빼놓고 똑같다니. 그 날 하루종일,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아이의 학습지가 내 마음을 찔렀다. 하루의 감정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하필 '부담스럽다'라니, 게다가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향한 나의 반응은 내가 봐도 좀 별로였다.
마침, 요즘 나는 리사 손 교수가 쓴 '임포스터'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임포스터'는 심리적으로 가면을 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쓴다. 나만해도 부모님 앞에서 쓰는 가면, 출근해서 동료들 앞에서 쓰는 가면, 학생들 앞에 설때 쓰는 가면이 다 다르다. 적당한 가면은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고 관계를 맺고 유지해나가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면을 쓰는 스킬이 늘어나고, 여기에 쓰는 에너지가 줄어듦도 느낀다. 그러나 가면을 과도하게 써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경우, 심지어는 내가 무슨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경우엔 가면이 문제가 된다. 임포스터가 문제가 되는 이유를 저자의 인터뷰에서 발췌해 보았다.
기자: 누구나 조금씩은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같은데, 임포스터가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
리사 손 교수: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며, 모든 가면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가면을 써야 할 때도 있다. 다만 가면을 너무 오래 쓰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위험하다. 내가 그랬다. 가면에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내 의견을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뭐든지 ‘괜찮아’로 일관하기 일쑤였다. 식당에 가도 다른 사람 의견 따라서 메뉴를 고르고 옷을 살 때도 다른 사람이 골라주는 대로 입었다. 심지어 웨딩드레스를 선택할 때도 그랬다.내 생각 없이 사소한 일에도 다른 사람 의견만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버리니 내 안의 열정, 창의성이 없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런 경우에 특히 위험한 것이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큰 문제가 생겨서 내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닥쳤을 때 의사결정을 못하고 나한테 뭐가 맞는 답인지도 모르게 될 수 있다. 아무 행동도 못한 채 두려움에만 빠져 있을 수 있는 것이다.
-2022..01.14 교보문고 인터뷰 https://casting.kyobobook.co.kr/post/detail/28880
이 책을 읽으며 '임포스터'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새로운 용어도 흥미로웠지만 심리학 교수인 저자의 이 책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책의 상당 부분이 저자의 자기 고백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경험담이 임포스터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되기도 했거니와 착한 딸, 친구, 학생이 되기 위해 가면을 써야 했던 많은 날을 먼저 겪은 저자의 고백에서 상당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또 이 책의 부제는 '가면을 쓴 부모가 가면을 쓴 아이를 만든다'인데 글 시작부에 언급한 나와 아이의 사례가 이 제목에 잘 들어맞는다. 나는 아이가 할일을 미루는 행동을 보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또 마치 나는 한 번도 미루지 않은 사람이었던 듯 아이에게 얘기했다. 이렇게 원래부터 잘했던 것처럼 보이는 가면을 쓴 내 앞에서 아이는 다음부터 '부담스럽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얘기할 수 있을까? 이런 대화가 누적되면 아이도 나처럼 가면을 쓰게 될 것이다. 결국 임포스터인 내가 임포스터인 아이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이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도 과도한 가면을 벗어던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부모들은 아이 마음에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아이가 뭔가를 잘했을 때, 마치 그 분야 전체를 마스터한 것처럼 아이를 과도하게 칭찬하면 아이는 은연중에 성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가령 사르트르에 관한 에세이를 잘 써냈다는 이유로 "넌 철학자구나" "전문가 같은데?" 같이 과한 칭찬을 해주면, 아이는 더이상 배움이 필요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런 착각에 빠진 아이는 자신이 모르는 문제를 만났을 때 이 분야를 다 알지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길 수 있다. 성공에 대한 두려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나친 칭찬이 아이에게 독이 된 경우다. 아이가 뭔가를 잘 배우고 익혔다면 "지금까지 참 잘 배웠구나. 앞으로는 어떤 부분을 더 배워보면 좋을까?"라고 격려하는 것이 좋다. (p.64)
아이가 잘 하던 공부를 갑자기 안 하겠다고 거부하거나 성적이 급작스럽게 떨어질 때는 '얘는 공부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이 좋다. (중략) 성적을 잘 받아 온 아이에게는 "이제 됐다! 내 새끼 진짜 똑똑한걸!"같은 말보다는 "잘했어! 그런데 앞으로는 어떤 걸 더 배우고 싶어?"라고 묻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메타인지 학습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나간 시험점수에 목을 매기보다 추후의 학습방향에 대해 모니터링과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할 때, 아이는 학습에 대한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p. 68~69)
어린 시절 나는 글자를 빨리 익혔고 암기를 잘했다고 한다. 그것이 고슴도치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뛰어난 천재처럼 보였나보다. 그런 칭찬이 자라는 내내 내게 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 감췄으며 내가 못하는 것을 만나면 지나치게 움츠러들기도 했다. 또, 어릴 때 미모가 상당하여 그에 관한 칭찬을 늘 듣고 살았던 내 막냇동생은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도 자주 성형이나 시술 고민을 하거나 늘 풀메이크업을 하는 식으로 외모에 과하게 집착하곤 한다. 나와 내 동생의 사례를 보면 우리 가족 어른들은 타고난 것에 대해 과하게 호들갑스러운 칭찬을 하셨나보다. 그보단 아이의 노력이나 과정에 대해 칭찬했더라면 나와 동생이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면을 벗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성공은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고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이의 목표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아이의 노력과 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인정하자.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를 믿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했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균형 잡힌 양쪽의 사고가 가능하다면, 아이가 '나 혼자서는 잘 못한다'고 느낄 때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77)
성공은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고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정말 좋은 말이다. 성공에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이나 운도 물론 작용하지만 아이의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함을 깨닫는다면 가면을 벗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임포스터 아이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들키는 게 무서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따지고 보면 공부는 타고난 것이냐 노력에 의한거냐 라는 흑백논리야말로 되게 의미없는 논쟁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이와 부모 모두 '낙관적 비교'를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한쪽이 우월하면 다른 한쪽이 열등해지는 '비관적 비교'는 포기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낙관적 비교는 상대와 우열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해내면 나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습수준이 떨어진다면 "너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따라갈 수 있어. 엄마는 전혀 걱정 안 해"라고 격려할 수 있다. 또 이렇게도 덧붙일 수 있다. "지금만 보면 누구는 더 잘하는 것 같고 누구는 더 못하는 것 같지? 하지만 배움이란 끝이 없는 거야. 앞으로도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나갈 거야." (p.80~81)
비교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단, '낙관적 비교'를 할 때만이다. 상대가 해내면 나는 열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 또한, '배움이란 끝이 없다'는 말도 참 멋지다. 그것을 새긴다면 지금 당장 상대와 나의 위치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학생들 가운데도 임포스터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들은 똑똑함을 완벽함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숙제를 완성하기 전까지 숙제를 남에게 내보이는 법이 없고 첨삭을 받는 것도 싫어한다. 자신이 '타고난 영재'가 아니란 사실을 들킬까 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완성 못한 숙제는 아예 제출하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다음의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숙제를 작은 목표 단위로 쪼갠다. 예를 들어 논문을 써야 한다면 아웃라인을 작성한 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일단 기술해본다. 적은 내용을 사람들에게 내보여서 얻은 피드백들은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학습결과가 아닌 '학습곡선'에 관심을 가진다면 조금씩 가면 쓰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p.113)
뛰어난 사람은 과정 또한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 학생들이 많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부족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도움을 청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생각을 바꾸어 학습결과가 아닌 학습곡선에 관심을 갖는다면 어떨까? 나도 이 조언을 보고 아이의 학습곡선에 관심을 갖기로 했다. 아이가 매일 집에서 수학 학습을 하는 시간은 25분이다. 이 동안 한 문제를 풀든, 두 문제를 풀든 이제 나는 아이가 자신만의 학습곡선 위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교수로 재직하며 다양한 국적의 대학생들을 만나봤지만, 유독 한국 학생들이 겸손해 보이기 위해 자신이 아는 것을 감춘다고 느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겸손한 태도 때문에 교수로서 그들을 돕는 일이 더 힘들어질 때도 있다. 학생들이 얼마나 아는지,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메타인지 즉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자신이 아는 것을 당당하게 얘기했다고 해서 '저 아이는 겸손하지 않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지금까지 참 잘 배웠구나. 그럼 지금부터는 또 어떤 걸 배워볼까?"같은 질문으로 아이가 메타인지를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무조건 겸손하기보다 자신이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좀 더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해 보인다. 내가 모르는 것에만 너무 초점을 두게 되면 메타인지 능력의 절반은 기르기가 어려워진다. (p.201)
한국 교사인 내가 읽으며 반성했던 부분이다. 나 역시 수업에서 "뭘 알고 있니?"보다 "무엇을 모르니?"에 초점을 맞추며, 아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장려하기보다 겸손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메타인지의 절반만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못하는가?'와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알고 잘 하는가?' 역시 메타인지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런 임포스터이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들키기 연습'이라는 것을 제안한다.
임포스터들도 마찬가지다. 실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제할 때 실은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중략)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내 자아가 몽땅 고갈돼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그러기 전에 나 스스로 들켜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p.250)
나는 내향인에 가깝다. 게다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어버리곤 한다. 그랬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내가 남들 앞에서 실제의 나보다 좋게 보이는 가면을 쓰려고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도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스스로를 판단해버리는 태도야말로 알게 모르게 우리를 임포스터로 만들 수 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지 않으면.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을 신경쓰게 되거나 스스로에 대한 판단적 사고에 사로잡힐 수 있다. '남들 눈에 서브가 느려 보이면 안 된다'라든가 '테니스 공이 늘 완벽하게 라켓에 맞지 않으면 나는 테니스를 칠 자격이 없다'는 식의 판단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테니스를 어느 정도나 배워왔으며, 테니스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뭘 더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과정을 방해한다. 정확한 메타인지 판단을 위해서는 잘 치든 못 치든 무조건 공을 쳐봐야 한다. 학습도 마찬가지다. 난이도가 높든 낮든 일단은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직접 공부를 해봐야 내가 못하는 게 뭔지, 어디에서 실수가 발생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p.261~262)
흔히 메타인지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메타인지는 학습에 대한 학습-즉 내가 무엇을 알고(잘하고) 모르는지(부족한지)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건 일단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으면 알 수조차 없다. 남들 눈에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시도하는 것 자체를 꺼릴 수가 있는데 그러면 모니터링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심리상담 몇 회를 받은 것 처럼 편안함을 주고, 임포스터로 키우지 않기 위해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알려준 책이었다. 읽는 내내 '메타인지'라는 용어가 많이 나와서 저자의 이론에 대해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해 전작인 '메타인지 학습법' 또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은 뒤, 어린 시절의 내가 얼마나 임포스터이즘이 심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좇고 있었을까? 가면을 쓰지 않았더라면 많은 에너지를 몸과 마음의 성장에 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한편 다행스러웠던 점도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어릴때보다 임포스터의 모습에서 훨씬 벗어났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훨씬 편하게 나의 진짜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적당히 가면도 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선 종종 임포스터였던 나로 돌아가곤 했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아이에게 투영하게 마련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아이를 임포스터로 키우고 싶지 않은 나는, 어느 날 밤 자려는 아이 옆에 누워 내 어린시절의 한 장면을 들려줬다.
"엄마는 사실 구몬을 엄청 밀리는 학생이었어. 너무 밀려서 할머니한테 혼난 적이 많아. 선생님 오시기 전날 열장도 넘게 몰아서 하기도 했단다."
"우와! 엄마도 그랬어요? 에이, 근데 엄마는 학원도 안다녔다면서요. 그럼 할일이 진짜 적었는데 그걸 밀렸어요?"
"응. 엄마는 학원이라곤 피아노만 다니고 맨날 나가 놀았는데 학습지 하기가 왜 그렇게 싫었나 몰라. 너만 할일 미루는거 아니야. 엄마도 1학년 때 그랬어."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로 보이는 대신, 용기를 내어 나의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내 고백을 들은 아이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깊은 잠에 들었다. 나는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기도했다.
자신이 아닌, 남들 눈에 좋아보이는 모습이 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앞으로 입시까지 남은 긴긴 날 동안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성장곡선에 집중하기를.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필요할 경우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이 나와 남편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