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인가, 분노 소비인가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요즘 뉴스엔 ‘논란’이 붙지 않은 기사가 드물다.

특히 청문회 시즌이 되면 더욱 그렇다.

“발언 태도 논란”, “과거 가족사 논란”, “표정 논란” 등…

정책 내용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과연 기사의 목적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 것들이 아닌데”, “이 불편함은 나만 느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점점 피로해진다.

특히, 알고 싶지 않은 사적인 정보가 포털 뉴스를 가득 채울 때 그 피로감은 더욱 커진다.

호기심에 클릭했다가 불편함을 느껴 곧바로 ‘닫기’를 누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알아야 하니까’라며 뉴스 소비를 멈추지 못하고,

때로는 ‘역시 별로였어’라며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싫어해도 되는 근거’를 찾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최근 가까운 친구가 말했다.

“솔직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싫어.”

그 말 뒤에 그가 진짜 느끼는 바는 이렇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만 그런 게 아닐 거야.”


이처럼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불편함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뇌의 즉각적 판단으로 이어지며

쉽게 혐오로 번진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싫어할 이유가 있다고 믿지만,

그 감정이 진짜 자신의 것인지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혹시 반복적으로 소비된 콘텐츠가 주입한 감정이 아닐까?




미디어는 혐오를 잘 팔고, 우리는 그것을 산다



언론은 ‘공익’을 내세우지만,

요즘 ‘공익 보도’는 공공의 분노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된 지 오래다.

정책보다 과거사에, 발언보다 표정에, 논리보다 태도에 집중한다.

정보의 껍데기를 쓴 감정 상품을 ‘정보’라 착각하며 소비한다.

그 감정은 우리 안에 남아 비판 대신 조롱을, 생각 대신 혐오를 키운다.

AI 알고리즘을 표방하는 포털들은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며

선동하는 측면도 있다.

현재 그 감정은 극단으로 점점 치닫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혐오하기 쉽다



혐오란 감정은 강력하다.

그 강렬함 때문에, 우리는 쉽게 ‘옳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가장 나중에 내려야 할 판단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나는 왜 이 기사를 클릭했을까?”

“나는 왜 이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그 감정은 정말 나의 것일까?”(이탤릭체)

질문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혐오에 끌려가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은 늦지만, 멀리 간다



우리는 지금

뉴스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정확히 판단하고,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냥 싫어”라는 말은 너무 흔하고,

“왜 싫은지”를 생각하는 일은 너무 드물다.

분노는 쉽고 빠르지만,

질문은 느리고 고요하다.

그러나 바로 그 질문이

우리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한다.




함께 질문해 봅시다. (댓글이나 매거진 참여)


이 글은 어떤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왜 그렇게 쉽게 미워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일이다.

지금 이 시대는

비판보다 혐오가, 분석보다 감정이 빠르게 퍼지는 시대다.

그러니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더 단호히 물어야 한다.

“알 권리인가, 분노 소비인가.”

그 질문 하나가 우리 삶의 태도를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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