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나온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관장은 오여사보다 2살이 더 많았다. 공단에서 18년 동안 일했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었다.
그의 주된 임무는 수영장 운영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필요에 부합하는 강좌를 신설하고 알맞은 강사를 영입하여 지역주민들의 문화생활과 건강증진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직원들과도 머리를 맞대어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관장은 수영장까지 더해져서 규모가 더 커진 센터에 발령을 받을 때부터 분통을 터트렸다. 정년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누구나 꺼리는 곳이요, 고생할 게 뻔한 센터에 온 것을 주류가 한직으로 밀려난 것처럼 억울해했다.
그는 전임자가 얼기설기 꾸려 놓고 간 프로그램과 운영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수영장 프로그램은 누가 봐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특히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싫어했다. 민원인이라면 18년을 시달렸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말을 섞기는커녕 꼴도 보기 싫다고 진저리를 쳤다.
누군가 "회원님이 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말만 해도 인상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그럴 때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똥주름이 얼굴 가득 잡혀 여지없는 똥상이 되었다. 똥상을 한 그는 회원의 뒤통수가 시야에서 사라지기가 무섭게 담당자가 처리하면 될 문제를 자기한테 오게 했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강좌를 맡은 외부강사들에게도 갑질의 대명사였다.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어떤 강사는 강좌를 그만두고 가는 날 그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내 살다 살다 당신처럼 갑질하는 사람 처음 봤어. 야, 네가 그렇게 잘났냐? 에라 못난 놈." 하면서 혀를 찼다. 관장은 상대의 기세에 얼어붙어 있다가 그가 가고 나자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냐며 직원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의미심장한 일화를 예로 들라고 하면 애써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담쌓기라고 할 것이다. 오여사가 출근을 해서 사무실 출입문 옆 벽에 붙어 있는 지문 인식기에 지문을 찍으려고 할 때였다. 시설팀 직원들이 복도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여러 개의 합판을 톱으로 자르고 있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어디 중요한 공사라도 하시나 봐요?" 시설팀 기사는 "공사는 공사지요." 짤막하게 대답했다. 오여사는 퇴근할 때 낮에 말했던 공사의 정체를 확인하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기관장의 책상 주위가 높다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대판 '자기만 알던 거인의 성'이었다.
관장의 자리는 사무실의 맨 안쪽 벽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방문자가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을 때 정면으로 보였다. 오여사는 관장이 쌓은 담이 기관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 같아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거인의 담벼락은 해야 할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주었다. '허걱'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기관장의 담벼락은 볼썽사나움을 넘어 괴이했다.
관장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자기 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여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장의 결제를 받으려면 먼저 합판으로 만든 담장을 노크해야 했다. 최대한 작은 소리가 나게 손가락 마디로 조심스럽게 '똑똑똑' 하고 신호를 보내면 관장은 '이제 막 곤히 잠들었는데 누가 귀찮게 구는 거야?'라는 말을 줄여서 "뭐야?" 했다. 오여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결제입니다." 하면 "회의 테이블에" 했다.
오후 두 시가 되면 담벼락 안에서 '드렁드렁'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코 고는 소리가 그치면 이어서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낮잠을 자고 나서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온 관장은 뜬금없이 "다 갔어?" 했다. 그리고 맥락 없이 "여기만 맨날 시끄러워, 다른 센터에 가 봐, 절간이야 절간, 너무 조용해서 음악을 틀고 살았다니까" 하며 투덜거렸다.
관장은 업무 단톡방에서 만큼은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드러냈다. 아침마다 꼭 챙기는 일과도 있었다. 꼰대 수칙 조항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 이것은 바로 '행복한 아침 엽서'를 띄우는 것이었다. 그가 아침마다 올려주는 요란한 꽃 사진 위에 담긴 행복, 사랑, 가족에 대한 글귀는 내용에 상관없이 짜증을 유발했다. 톡 공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관장은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 구슬땀을 흘리며 농사일을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올렸다.
시골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주말까지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보면'주말에도 열일하시네' 하는 비아냥이 자동 발사되었다. 관장의 업무 단톡방 나들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모처럼의 연휴에도 관장은 강원도 바닷가에서 손을 흔들었고 해외의 명소 앞에서도 하트를 날렸다.
단톡방에 사적으로 얼굴을 내미는 상사의 모습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관장의 톡이 올라올 때마다 열띤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다름 아닌 수영강사들이었다. 그들은 온갖 느끼한 톡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댓글이나 이모티콘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