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장마와 함께 올 가을이 소문 없이 가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어요
여보란 듯이 더 높은 하늘과 바람을 불러오고 단풍을 터뜨렸어요
준비운동도 없이 본 게임으로 넘어온 것처럼 살짝 당황했지만
벌써 괜찮아졌습니다
운동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어요
산에 갈 수 있다면 어떤 날도 다 좋습니다
가을 산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단풍을 건너뛴 이파리가
초록을 품은 채 떨어집니다
가지에 붙은 잎들은 엉성해지고
깃털이 뜯긴 커다란 새가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산은 아름답습니다
산은 지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요
여름의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나 여기 있소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같이 우람한 나무 둥치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파리가 없으니까 눈에 들어왔어요
가을뿐 아니라 겨울까지 보는 이를 황홀하게 할 예정입니다
완전히 다른 모양인 것도 있지만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다른 모양도 있습니다
정말 많이 찍었지만 다른 것도 골고루 올리려고 하니
더 욕심을 낼 수가 없습니다.
색깔도 달라요
자세히 안 봐도 알 수 있지요
나무가 빚어낸 색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사람도 저마다의 색상으로
아름다운 것을요
골국진 나무의 생애가 보여주는
아름다움도 여름엔 볼 수 없었지요
햇볕을 향한 열망을 결코 포기 하지 않았을
나무를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숙연해진답니다
곁을 내어 줍니다.
상대를 기꺼이 용납합니다.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함께 자라고 함께 늙어가며
아름답게 빛납니다.
나무의 친구들을 보세요
직박구리와
다람쥐가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사진이 구리게 나와서 미안하네요
정말 보기 좋았는데 말입니다.
유치원 친구들이 놀러 와서
다람쥐와 새와 친구를 먹었습니다
상차림을 좀 보세요
누구를 위한 한 상차림인지 금방 눈치챘지요
상을 차려놓고 친구들을
부르러 간 모양입니다
올해 새로 난 싹을 좀 보세요
어린 티를 벗었습니다.
기세가 남다릅니다. 혹시 사춘기일까요?
사춘기인데 똑바로 서 있습니다.
우리 아이 사춘기와 사뭇 다른 모습에 안심입니다
왼쪽 가에 나무는 줄기가 잘렸어도 꿋꿋하게 새 순을 틔우고
위로위로 키웠습니다
짝짝짝!
그 엄마에 그 아들을 칭찬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바야흐로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