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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을 밟으며

by 분홍소금

나뭇잎 :엄마, 저 이제 가도 될까요?

나무 :날아갈 준비됐니?

나뭇잎 :네, 저의 꽃단장을 좀 보세요

나무 :오 정말 멋지구나, 이제 가을 내내 준비한 여행을 떠나렴


낙엽이 바람을 타고 내려온다.

경쾌한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엄마와 작별한 나뭇잎이 땅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낙엽이 지천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눈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푹신한 낙엽 위에 털썩 누워보고 싶다

낙엽 아래 몸을 감춘 뱀이 꿈틀 하고 놀라서 달려들면 큰일이니까

야외용 메트라도 깔아야겠다


낙엽이 아름답다

낙엽이 하는 일, 당하는 일은 더 아름답다

바싹 마른 몸은 불쏘시게로 태워져 주위에 온기를 선사한다.

그 옛날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아낙네의 얼얼해진 손을 녹이고

마음까지 녹였던 불기운은

저기 건설현장 드럼통 안에 모닥불로 다시 태어났다.

인부들은 최신식 연장을 놓고 와서 그 옛날 모닥불 앞에서 언 발과 언 손을 녹인다.

어떤 분이 낙엽을 태우면 커피 원두 볶는 향기가 난다고 했다

후각을 즐겁게 하는 구수한 향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


낙엽이 발에 밟힌다.

바스락바스락바스락

날개가 부서지는 소리!

높이 날던 날개를 부수며 남아 있던 단 하나의 자랑거리와 작별을 고한다

안녕 안녕 안녕


죽어지고 썩어지는 낙엽은 고귀한 품성의 원형이라

자기 자리에서 죽어지고 썩어져서 새로운 생명에게 영양분이 된다.

겨울 동안 빼빼 마른나무가 봄이 되어 생명을 틔울 수 있도록

죽어서 썩는다.

한 톨의 흙도 보이지 않게 겹겹이 덮고 있는 낙엽을 보라

낙엽아래 보금자리를 꾸민 벌레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너, 눈보라와 폭설이 심술을 부리겠지

하지만 너희 뜻대로 안 될 거야

흠집은 낼 수 있을지 몰라도 망가뜨리지는 못할 거거든

입김을 불다가 불다가 지쳐서

물러가는 눈보라의 뒷모습이 선한걸

(우수에 젖은 나무)

이파리를 떠나보낸 엄마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수에 젖은 엄마에게

친구가 찾아왔어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몰려와

엄마 주위를 빙 둘러쌌어.

쓰담쓰담, 친구들이 위로를 건넸어

빈 둥지 증후군이 오다가 도망갔어


엄마나무는 친구들이 있어 든든해

이제 긴 겨울의 기다림도 문제없다고

눈앞에 닥친 겨울보다 그 너머의 인생 2 모작에 벌써 가슴이 설레었어.

(딱다구리, 까마귀, 다람쥐, 까마귀, 딱다구리)

까마귀와 딱따구리와 다람쥐가 신이 났어

이파리가 떠난 나무에서 거침없이 점프를 했어

사냥도 하고 숨겨놓은 음식도 물고 왔지.

가을의 한 낮을 느긋하게 보내는 동물 친구들을 보며

엄마나무는 흐뭇했어


엄마나무는

날마다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이파리의 얘기를

들려줄 거야

가을의 마지막을 불태우던 황금빛 유혹과

이파리의 썩음과 봄날의 생명에 대해 얘기해 줄 거야.

겨울이 끝날 때까지

(가을 나무의 황금빛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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