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10개월
호기롭게 평생직장을 꿈꾸었던 곳을 그만두었다.
드라마틱한 이별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조금쯤은 어색한 얼굴을 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나오게 될 줄 알았던 공간을 또 하루의 퇴근처럼 가만히 나오는 걸음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며칠이 지나고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몸과 마음 중 먼저 무너진 건 어느 쪽이었을까?
10년은 조금 덜 된 이야기. 마음이 무너져내리다 못 해 몸마저 흔들리기 시작하자마자 내쫓기듯 그만두었던 직장이 있었다. 타지에 홀로 나가 있던 상황에 신분 문제 될까 급박했던 상황 속에서 감사하게도 많은 배려로 나를 안아주는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던 때가 있었다. 얼마 안 가 결국 신분이 발목을 잡아 정리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고되고 힘들었던 시간이지만 돌이켜보자면 한 번 숨을 고르는 계기가 되었던 그때를 닮아 있었다.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위태롭게 버텨오던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이 마음도 무너졌다. 어쩌면 마음이 뜨면서 몸으로 신호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건강의 회복을 위해 휴직과 퇴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중 때마침 받은 제의에 결국 나는 인사팀을 만났다.
막상 퇴사를 선언하니 하루라도 빨리 뛰쳐나오고 싶었던 극에 달한 감정들이 거짓말같이 사그라졌다. 곧 있을 주요 이벤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가기 위해 달리고,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부수적인 업무들을 처리하고, 그 간의 인연들을 잊지 않고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낡고 지쳤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자조적인 웃음 속에서 여기저기 해어져가던 나의 마음은 그런 나를 아쉬워해주고 또 격려해 주는 다정한 말들로 다시 기웠다.
어려서부터 믿어 온 사회 환원의 가치를 내 개인의 노력은 조금 덜 들이고도 CSR이라는 이름에 얹어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의 응원을 받으며 즐거이 지낸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믿었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던 타지 생활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떨쳐내게 해 준 곳이었다.
고작 며칠 만에 추억보정이라도 했는지 좋은 것들만 마음 깊은 곳에 꼭꼭 눌러 담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기대나 걱정보다는 의연함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건 조금은 굴러 본 경력직이 되었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