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 간의 사랑이 가득한 신파극을 보고 있노라면 알면서도 여지없이 눈물 수도꼭지가 고장 나 버리는 게 싫다. 언젠가부터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이 전처럼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슬퍼서 울어본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억지웃음이 종종 심장을 콕콕, 숨 쉬는 게 힘들었다. 그냥 더 어른이 돼서 그런 줄 알았다. 지친 일상에 울 기운도 없었겠지.
일상을 보냈다.
책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켜두기만 한 유튜브에 귀는 이어폰으로 막았다. 무슨 소리가 흘러나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 집중이 되지 않는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탓에 이렇게라도 집중을 해야 했다.
며칠이 흘렀다.
한 달이 흘렀다.
오랜 시간 책을 멀리했더니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가까스로 친해지는 데에는 쉰 시간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번아웃이 왔나 보다 했다.
허무함이 나를 가득 채워 그저 지친 줄로만 알았다.
쉬면 괜찮겠지, 그래 괜찮아지겠지.
아무리 기다려도 괜찮아지지 않는 마음에게 미안했다. 그렇다 할 방도를 찾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었다.
맨 정신으로 지내는 게 힘겨웠다.
술보단 약이 낫다고 하셨는데, 이번엔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냥 내가 얇아졌고, 지금의 내가 나약할 뿐이라고 여겼다. 음주 빈도가 잦아졌다. 속이 아파 며칠을 거르고 좀 나아졌다 싶으면 취해있길 바랐다.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나를 위로한다.
고독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탓에 일상은 들뜬 사람처럼 가면을 쓰고 버텼다.
그러면 그만이다.
왜 이런지 몰랐다. 슬픔을 들키기 전까진.
얼마나 삼키고 살았는지 모를 시간이 술김에 범람했다.
‘아 쪽팔려. 왜 그랬지.’
기억을 더듬어 조각난 퍼즐을 맞췄다. 슬픔이 켜켜이 쌓여 외로움이 되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며칠을 고민했다.
그래, 나 슬프다. 그리고 외로웠나 보다.
나의 슬픔을 알아챈 사람이 생겼다.
부끄러웠다.
그는 이런 내 상태를 나보다 더 빨리 알아챘다.
.
.
.
그리고 그도 나와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