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아 있게 하는 호흡.
출산 전까지는 꽤 오랫동안 요가를 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당시 비는 수업 시간을 채우려 타 과 전공 선택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그게 요가 수업이었다.
당시엔 웰빙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고 덕분에 요가라는 게 낯설지 않게 느껴져 덜컥 수강 신청을 했었다.
그때 처음 매료되어 지금껏 그나마 꾸준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출산을 하고 나니 손목이 회복되지 않아 요가는 어려워 필라테스를 잠시 했다가 그 마저도 복직을 하면서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다시 매트에 섰다.
2년이 넘도록 방치된 몸은 심각한 목 통증을 유발했고 삶의 질이 처절하게 떨어지고 나서야 문득 내 시간에 대한 간절함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 등 하원을 도맡아 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회사 자격증 공부도 눈칫밥을 먹어가며 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고마우면서도 원망스러운 이상한 모양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던 부부 사이는 아이가 생기면서 무너지고 그것을 다시 재건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부모라는 사람들이 네가 먼저 배려 하라며 지금 내가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 침을 튀기며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오전 6시에 정확하게 출발해야 출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지금 한창 유행 중인 미라클 모닝은 새벽 4시나 되어야 가능한데 현재 2개월 넘게 도전 중이지만 딱 한번 일어났다. 남들은 의지가 없다고 비웃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아침잠이 엄청 많은 나로선 현재 13년째 출근을 위해 5시에 기상 중인 것 자체가 미라클 모닝이라고 항변하고 싶긴 하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보거나 필요한 강의를 듣는 식으로 내 시간 찾기를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던 자투리 시간들을 찾게 되었는데 휴일 이른 아침에 아이가 남편과 잘 놀고 있는 틈을 타거나 모두 잠들고 나만 깨어 있는 시간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매트에 앉았다.
내가 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남편도 자연스럽게 문을 닫아주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냥 내 시간을 잘 이용하면 되는 거였다.
생각보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sns만 하지 않아도 소소한 일상의 목표는 충분히 이룰 수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오늘 무엇 무엇을 했는지 손에 꼽아 보며 티 나지 않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지금처럼 오늘 요가 수업 끝에 요가 선생님이 했던 말 한마디라도 떠올려 보며 몇 글자라도 끄적여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은 너무나 쓰고 싶은데 사는 게 너무 지쳐서 쓸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이렇게나 무색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 한 줄이라고 해도 이렇게 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호흡, 오늘 내가 가능한 만큼 사는 삶’
낮은 조명 아래 편안하게 누워 있는 몸, 충분히 이완되어 있는 몸속으로 퍼지는 따뜻한 언어.
오래 요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있다.
남이 아닌 나에게 집중할수록 좋은 호흡이 가능하고, 건강한 호흡은 큰 감정의 동요를 막아준다.
나를 잘 돌볼수록 평안한 하루가 또 생기는 것이다.
꼭 요가가 아니어도 좋으니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꼭 만들어 봤으면 한다.
나를 알아가는 그 시간이 가져다 줄 가치야말로 미라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