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이야기.
나는 초등학교 때, 소풍날 아침의 냄새를 아직 기억한다.
뭔가 차가운 듯 습한 기운이 들어 후다닥 깨던 아침.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던 그날, 그 아침 희미한 주방 불빛 아래 분주하던 엄마의 뒷모습.
밥이 되어가는 밥솥 소리, 집안에 퍼지던 새 밥 냄새, 고소한 참기름 냄새.
어렸을 때 김밥은 뭔가 설레던 음식이었다.
어른이 되고, 회사에 입사해서 5년쯤 되었을까.
다들 바빠서 고생이라는 말로 때우며 본인들 배를 채우러 나가는 윗 분들이나 나가고
서류 더미가 놓여 있는 내 책상 위로 또 어김없이 김밥이 놓이는 순간
먹지도 않고 체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 음식이 나를 공격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엄청난 배신감은 한동안 참 나를 슬프게 했다.
어느덧 연차가 쌓여 13년째가 되다 보니 직원들을 위해 그 김밥 한 줄도 사내 운영비나 개인 사비로 사주지 못하면서
“김밥 먹어 가며 일하는 고생하는 우리 직원들”이라는 소리를 해대는 윗 분을 위해서도 절대 점심으로 김밥은 먹지 말자 다짐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성과는 김밥을 먹어 가며 일했던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1년을 제외하고 12년 동안 단 한번 목표 이익을 달성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잔칫날이 다가오면 김밥을 먹어 가며 일했던 우리는 늘 교묘하게 제외되었다.
열심히 해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상, 굳이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졌다.
제때 밥을 먹고, 시답지 않은 농담이라도 하며 커피 한잔 사서 근처 공원 한 바퀴 하자 다짐했다.
이제 우리 밥 먹자. 김밥 말고.
김밥은 여전히 우리에게 설레는 음식이길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