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샀지만 읽은 건 단 두 줄
두줄.
책을 샀는데 단 두 줄을 읽고 잠들었다.
생각도 감정도 올라오기 전에 피로한 몸이 정신의 전원을 꺼버렸다.
쉬는 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내 몸은 이미 출근해 있었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지붕 위였다.
지붕 위의 감정과 생각이 없는 시간은 여전히 삭제된 듯 흘러갔다.
퇴근 시간까지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내 하루는 ‘무’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오늘은 떨어질 뻔했나?’
‘오늘은 무슨 욕을 먹었지?’
‘근데.. 나는 오늘 뭘 했더라..?’
내 몸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 내 머리는 이상하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가린 무표정인 나는 애써 밝게 호주인 사장 스티브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즐거운 저녁 보내고 내일 아침에 보자!”
그날도 평소처럼 평범하게 퇴근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차 시동을 걸었다.
차를 예열한다는 핑계로 그 잠깐의 순간에도 유튜브 쇼츠 마취제를 머리에 꽂았다.
몸과 마음의 통증을 잊기 위해 아무 생각과 감정 없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5분 정도 차에 앉아 멍하니 보고 있었을까.
그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약속했던 장소로 오라고 어제 내가 먼저 연락했던 책을 파는 사람이 보낸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중고책을 사기로 했던 것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제의 내가 무언가를 원해서 한 행동이었을 텐데 기억이 전혀 나질 않았다.
지붕 위에서 지워졌던 시간이 이젠 일상의 기억까지 삼켜버리고 있는 걸까.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을까 서둘러 주소를 찍고 차를 몰았다.
매일같이 가던 집으로 가는 퇴근길이 아니라 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중고책을 사러 가는 백지상태인 나 자신이 이상하게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그 사람은 책을 종이가방에 담아 내게 건넸고 피로와 먼지가 가득 묻은 작업복 차림인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무 말도 없던 짧은 교환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무언가를 얻었다는 느낌보다는 ‘이 책 한 줄 한 줄이 정말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의문만이 남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기도 전에 화장실 앞에 누워 그중 아무 책이나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눈앞에 책 글자들이 겹쳐져 보였고 뜻을 이해하려는 찰나, 고개가 툭 떨어졌다.
두 줄 뿐이었다.
책을 샀지만 읽은 건 단 두 줄..
그마저도 문장 자체를 이해하기 전 정신이 꺼지듯 그대로 잠들었다.
왜 아무 생각도 안 나는지 모르겠다.
백지인 머리가 조금만 긴장하면 눈이 감겼다.
머리는 생각이란걸 하려 하면 그대로 잠들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서 산 책인데 결국 나를 깨운 건 활자가 아니라 다시 찾아온 유튜브 쇼츠였다.
그날도 나는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 없는 인간이 되어갔다.
나 자신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 끝에서 나는 책 두 줄을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