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없다
나는 광화문 정원가다. 아무도 광화문에 정원을 열지 않아 이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정원일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정원가가 되었다.
정원일은 정원을 의뢰하는 사람과 계약서를 주고받거나, 서울시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정원박람회에 입상하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나는 정원을 배운 적이 없고 작가가 되었다. 3년이나 정원드림프로젝트에서 학생 멘토를 하고 있는데 첫 해에는 시공도 해본 적 없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나는 식물을 모르는데 정원가가 되었다. 동이 트자 사람들은 나를 작가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는 정원가다.
식물이 어떤 토양에서 살아남는지, 정원가는 예술가인지 경쟁자인지, 건축주는 검증 없이 왜 내게 돈을 쓰는지 세상을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정원가다. 여러분 저 정원가예요. 조경이 뭔지 모르지만 2024년 기준 정원가예요. 그리고 광화문 맞아요. 놀러 가는 거 아니고 현실 사무실 맞아요.
나는 서울대와 하버드 디자인스쿨에서 조경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 최고의 회사들에서 경력을 쌓았다. 시립대,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수도권의 내노라하는 학교들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가리키고 있지만 정원가가 되었다.
직업에 계급이 필요한가? 예술대학을 나와야 뮤지션이 될 수 있나?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인 인과일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3년간 모든 걸 쏟았지만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했다. NBA 선수도 되고 싶었지만 농담일 수밖에 없다는 거 알고 있다. 꿈에 농담이 있나? 재능에 강요가 필요한가? 의식 없는 일상에 순응해야만하나? 그래서 오늘 또 방황한다. 사대문에 두고 온 처량한 나를 버려둘 수 없다. 그래서 광화문에 터를 잡았다. 사람들은 지칠 때까지 물었다. 왜 광화문이야? 왜 강남이 아니야? 왜? 대체 왜?
왜냐면 나는 광화문 정원가니까.
순차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게 현실의 두께니까. 매일에 지치고 상투에 시달리고 반복이 두렵고 당연한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게 고통이니까. 당신의 진심이 내게 상처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무심결에 제어할 수 없이 상대방을 기만하는 게 나를 위한 언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무뎌지면 좋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텐데. 복잡한 즐거움이 정신을 갉아먹고 정체성을 무디게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광화문이다. 아무 주말도 없는 사무실. 조경을 배우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정원일을 하는 정원가.
영원은 없다.
오늘도 그저 하염없이 하늘만 푸른 숲만 내 한숨을 품어주네. 아아,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람. 아아, 영원하지 않은 사람.
기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