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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가드너의 가을을 담은 소품들

by 해피가드너


가을은 유난히 짧다. 느리게 다가오는 듯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서 있다. 정원의 가을꽃들은 저마다 깊은 색을 보이고, 집 앞 단풍나무도 서서히 붉은색으로 바뀌고 있다. 잠시 머물다가는 계절을 붙잡고 싶어 작업실에서도 분주하게 가을의 흔적을 남기는 중이다.




#1 호박에 가을이 스며있다

미국의 가을은 호박으로 시작해 호박으로 마무리된다. 마트와 가든 센터에는 크고 작은 호박들이 가득 쌓인다. 주황빛, 아이보리빛, 초록빛이 뒤섞여 그 자체로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핼러윈이나 추수감사절 장식으로 많이 쓰이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호박들을 좋아한다. 정원에서 말린 꽃들을 살짝 올리면, 단숨에 ‘가을 소품’으로 변신해서다. 수국, 헬리크리섬, 천일홍을 모아 호박 데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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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용 호박 데코



#2 쑥꽃 리스, 이 세상의 모든 꽃은 소중해

이맘때쯤이면 아무도 눈길 주지 않지만, 길가에 쑥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평안, 여유, 행복"이라고 하는 꽃말처럼 한약재 같은 은은한 향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작년부터, 이 쑥꽃으로 하트, 타원형 등 다양한 리스를 만들어왔다. 시간이 가도 색이 거의 변하지 않고, 빈티지한 멋이 있다. 수국과 여러 열매를 더하니 가을빛이 한층 따뜻해졌다. 이 쑥꽃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꽃은 없다는 것을. 작은 들꽃 하나에도 존재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아봐 주는 마음 또한 하나의 사랑이라는 것을.



쑥꽃으로 만든 리스



#3 모자에도 가을을 담았다

5년 전쯤, 딸이 "엄마에게 잘 어울린다"면서 선물해 준 모자를 오랫동안 쓰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천이 바래고, 챙의 곡선에도 시간이 보였다. 그대로 두기에는 조금 쓸쓸해서 모자에 가을을 담아보기로 했다.


작업실 한편에서 말린 꽃들과 작은 열매들을 꺼내어 하나씩 올려보았다. 바랜 모자 위에 놓자, 마치 세월을 덮는 듯 잘 어울렸다. 이 꽃 모자를 과연 쓸까 싶어 거울 앞에 서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좀 더 가을이 깊어지면 이 꽃 모자를 쓰고 용감하게 센트럴파크라도 가봐야겠다.


드라이플라워 모자 장식



#4 액자에 머문 가을

앞마당 더그우드 나무의 초록 잎이 어느덧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빨간 립스틱을 살짝 바른 듯 수줍은 빛이 돈다. 그중 몇 잎을 조심스레 따서 압화를 했다. 오래된 토트백을 꺼내 액자 크기로 자르고, 잎 하나를 붙잡아 마음의 액자에 담아봤다. 목공용 글루로 붙여주었더니 가을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압화로 만든 액자



#5 청초한 가을빛 속에서

요즈음 가을 들꽃이 참 예쁘다. 신기하게도 동네 공원마다 분위기가 좀 달라, 자주 가지 않은 곳을 가봤다. 공원에 들어서는 길가에 보라 들꽃들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보자마자 얼마나 반갑던지 함께 간 남편이 놀랄 정도로 탄성을 질렀다. 개미취, 개여뀌, 미국 담쟁이, 자라공을 엮어 여리여리한 리스를 만들었다. 청초하고 자연스러운 가을빛이 햇살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듯하다.


들꽃으로 만든 리스



#6 액자 속에 사계절이 보여

뉴욕이 인디언 썸머로 갑자기 한 여름처럼 더워졌다. 공기마저 텁텁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후였는데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기분이 바뀌었다. 매의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 흩어져 있는 소재들을 모아 마음 가는 대로 만들었다. 재밌게도 완성된 액자 속에는 봄의 설렘, 여름의 시원함, 가을의 풍성함, 눈 오는 겨울의 풍경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무더운 하루를 산뜻하게 바꿔준 소품이었다.



각종 꽃과 열매로 만든 액자



#7 가을엔 그대에게 꽃편지를 드리리

바람 불고 쌀쌀한 가을 감성이 가득한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보내고 싶은 날씨여서 종이백을 활용해 종이 화병을 만들었다. 뒷마당에 나가 작고 드라이플라워가 되는 꽃들을 꽂아주었더니 설렘 가득한 꽃편지가 되었다.


종이봉투로 만든 꽃 편지




소품을 만들다 보니 그 안에는 사계절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호박의 따뜻한 빛, 쑥꽃의 잔향, 모자에 담긴 시간, 그리고 꽃편지까지. 손끝으로 엮은 모든 순간이 내 마음속 작은 정원이 되어, 이 계절을 함께 보내고 있다. 가을은 말없이 곧 사라지겠지만, 이렇게 남긴 흔적들은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 것이다.


모든 독자님, 작가님들의 마음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닿기를 바라며, 아름다운 가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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