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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9월 4주)

Hippie Kunda, 다영, 수호, Cardi B, Maruja 외

by 고멘트

"Drain K 없는 항해, 싱겁게 끝난 여정"


1. Hippie Kunda (히피쿤다) - [TUN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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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글 : 'SHOW ME THE MONEY'의 여러 논란 이후 같은 힙합 서바이벌 포맷이지만, 얼굴을 가리고 참가하는 방식으로 화제를 모았던 프로그램 'RAP:PUBLIC'에서 Hippie Kunda(이하 히피쿤다)를 향한 반응은 첨예하게 갈렸다. 논쟁의 핵심은 함께 99' Nasty Kidz로 활동하는 Drain K였다. "한 명이 떨어지면 같이 떨어지겠다"는 일종의 '자발적 논개' 발상 자체도 화제였지만, 동시에 Drain K의 존재가 히피쿤다를 더욱 빛내는 동력인지, 아니면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인가에 대한 의문도 따라붙었다. 아쉽게도 이번 앨범은 후자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예시로 사용될 것만 같다.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힙합에서 여성은 언제나 소수자이자 약자였다. 이제는 그 '소수성' 자체가 클리셰이자 셀링포인트로 기능하는 시대고, 히피쿤다 역시 이를 파악한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 래퍼로 살아가는 현실을 차갑고 황량한 설산, 곧 '툰드라'에 비유해 앨범을 구성했다. 척박하고 얼어붙은 땅 위를 홀로 걸어가는 고난을, 정석적인 길을 따르지 않는 자신에게 겹쳐 놓은 셈이다. 그러나 서사를 강조하는데 너무 집중한 탓일까, 정작 음악은 밋밋해졌다. 대표적으로 ‘Pluto’는 부족한 힘을 채워주던 빡센 비트, Drain K와의 호흡이 만들어내던 강한 댐핑이 빠져 래핑이 치고 올라가는 대신 축축 늘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Hunger’ 또한 설산의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한 시도는 느껴지나, 지속적으로 단조롭게 이어지며 서사만 남은 채 루즈하게 끝난다. 그렇다 보니 강약 조절이 빠진 트랙들은 쫀득한 펀치라인을 잃었고, 명확한 뱅어 트랙의 부재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기존의 러프한 톤은 완전히 버릴 수도 없으니, 아예 스토리를 강조하는 서정적인 멜로딕한 바이브로 방향을 틀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강렬한 바이브는 옅어지고, 툰드라라는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불명확한 항해처럼 다가온다. 그룹에서 솔로로 선다는 건 단순히 감초 역할을 넘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약점은 가리고, 강점은 드러내야 한다. 여러모로 취사선택이 매끄럽지 못한 이번 앨범은 마치 밋밋한 저염식을 먹었을 때처럼 싱거운 여운이 귀 안에 남아버렸다.





"사랑받고 싶었다는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솔직한 매력이네"


2. 다영 (DAYOUNG) - ‘gonna love me,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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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 홀로서기에 나선 다영은 첫 싱글을 통해 "어떠한 컨셉도 연기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다. 본연의 자신감 넘치고 시원한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팝 댄스 장르의 타이틀곡 ‘Body’는 R&B스러운 분위기의 벌스를 지나 터지는 리드미컬한 후렴구가 매력적이다. 특히 신스 사운드와 멜로디의 코드 진행은 특유의 벅찬 느낌을 선사하는데, 그 시절 씨스타가 떠올라 아련하고 반갑다는 평도 이해가 가는 바이다. 차분한 락 장르 곡의 ‘number one rockstar’, 나른하면서도 브라스 포인트가 있는 ‘marry me’까지 수록곡도 타이틀곡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부드러운 흐름을 완성한다. 여기에, 공간감이 느껴지는 보컬 디렉팅과 리버브 효과가 늦여름만의 후덥지근하면서도 선선한 감각을 완성하는 것까지가 포인트일 테다.


곡의 리듬감이 살아나는 역동적인 코레오와 함께 숏폼에서 바이럴된 점까지. 음악은 물론 브랜딩의 측면까지 상당한 퀄리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인 것도 맞지만, 첫 솔로 데뷔를 호실적으로 이끈 결정적 요소는 사실, 점차 진정성에 회의적 시선을 갖는 분위기 속 더욱 돋보인 그녀의 간절함에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듣고 있으면 다영의 에너지가 전해져, 따라 행복해진다.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수호는 누구인가"


3. 수호 (SUHO) – [Who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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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이번에도 팝 록 기반의 구성이 중심을 이루는 앨범이다. 전작들보다 한층 러프해진 창법과, 첫 트랙부터 경쾌한 일렉 기타와 단순한 멜로디의 ‘Who Are You’, 강렬한 드럼과 화려한 일렉 기타 라인에 은근한 샤우팅을 얹은 ‘Light The Fire’의 연속적인 배치가 눈에 띈다. 하지만 그러한 차별점은 여전히 애매한 색깔에 미처 두드러지지 못했다. 보여주고자 하는 사운드의 직관적인 표출 또한, 그 이상을 상상하게 하는 장치의 부족에 유기적인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특유의 모범생 이미지처럼 정직한 보컬 역시 밋밋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Medicine’ 같은 트랙은 그러한 단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는데, 코러스의 뻣뻣한 플로우나 전개 내내 일정한 톤과 볼륨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Grey Suit]부터 [점선면 (1 to 3)], 이번 앨범까지 세 번 연속 같은 장르를 시도했음에도 반복되는 허전함은,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흐린 정체성에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도영은 [청춘의 포말 (YOUTH)]과 [Soar] 두 앨범 모두 희망찬 밴드 음악을 담아냈지만, 청량하고 감성적인 보컬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청춘’이라는 키워드의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KEY의 경우, [Gasoline]의 초월자나 [Pleasure Shop]의 사이보그처럼 과감한 비주얼과 확실한 콘셉트를 통해 샤이니 음악보다는 좁아진 톤과 기교를 자연스레 감추어 냈다. 이처럼 지금 수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옅은 영역에서의 장르 반복이 아닌, 잘할 수 있는 영역이나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요소의 근본적 탐색과 구체적인 브랜딩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 아닐까.





"다자주연 드라마, 그럼에도 웰메이드"


4. Cardi B – [AM I THE 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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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7년 만에 선보인 정규 2집은 다양해진 사운드의 도전이 돋보인다. 카디 비의 기존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통통 튀는 귀여운 멜로디의 ‘Pick It Up (feat. Selena Gomez)’부터, 현란한 라틴 사운드의 ‘Bodega Baddie’, 자넷 잭슨의 ‘The Pleasure Principle’을 샘플링하여 화사함을 살린 ‘Principal’처럼 한층 넓어진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극적인 구성의 ‘Dead (feat. Summer Walker)’와 웅장한 트랩 비트 속 반복되는"Hello, it's me" 같은 가사가 인상적인 ‘Hello’를 앞세운 야심 찬 도입부와는 달리, 이어지는 전개는 안전한 선택의 연속이다. Kehlani, Lizzo, Tyla와 같은 화려한 라인업의 팝 피처링으로 완성도와 안정성을 노렸지만, 높은 의존도에 정작 카디 비의 존재감은 가려지고 말았다. 단독으로 채운 랩 트랙을 사이사이 끼워 넣어 이를 되찾으려 했으나, 옅은 농도와 24곡 중 5번이나 반복되는 패턴에 임팩트는 결국 미비함에 그친다.


그럼에도 앨범은 전체적으로 납득되는 흐름을 유지한다. 여유롭고 단순한 훅 위주의 곡과 ‘Magnet’, ‘Pretty & Petty’ 같은 없진 않은 뱅어 트랙으로 앞뒤 간 균형을 유지했고, ‘Salute’나 ‘Trophies’에서 특히 돋보이는 위트 있는 라인 끝처리를 통해 특유의 카리스마 있고 유쾌한 캐릭터를 비춰냈다. 또한 빈번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장르의 비트도 강약과 배치를 은근하게 조절하여, 다양한 느낌의 연출과 함께 전반적인 무드를 깔끔하게 정돈했다.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1집의 화제성과 강렬함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즐길만한 요소는 분명 있는 앨범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더 잘 알 것 같아"


5. Maruja - [Pain to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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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 지금까지의 흐름을 집대성하는 첫 정규작. Maruja는 이번 앨범에서 더 긴 러닝타임 속 색소폰 속주를 보다 전면에 내세웠다. 음울하고 격앙된 분위기에서의 외침이 묘한 위로를 준다는 매력도 여전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희망, 연대, 사랑, 힘의 흐름까지 다루며 섬세하게 감정을 울린다는 점이 이번 앨범의 특징이다.


이는 두 번째 트랙 ‘Look Down On Us’의 색소폰→어쿠스틱 기타→바이올린 배치에서 특히 뚜렷한데, 드럼 비트를 중심으로 불안정, 상실, 무기력만을 다루던 이전 EP의 수록곡 ‘The Invisible Man’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그 차이가 드러난다. 앨범 전체적으로도 트랙마다 템포와 질감에 변화를 주었다. 조용한 템포와 다소 절제된 사운드의 ‘Saoirse’ → 스피디한 드럼과 디스토션 사운드의 ‘Born to Die’, ‘Break the Tension’의 트랙 배치는 예상치 못한 전개로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공감의 문제와도 결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음악적 정신과 사운드적 재료는 유지하되, 곡 내외적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연결하는 데에 전보다 힘을 줌으로써 그들의 음악에 더욱 공감하게 하고, 그들의 메세지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라이브 홀에서 분노에 차 색소폰을 불며 랩을 뱉는 Maruja에 환호하는 팬들을, 한층 더 깊이 포용하고 다독일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 락을 밟고, 영화의 주인공이 된 두 사람"


6. The Favors - [The Dream]

광글 : 나에게 둘은 주인공보다는 그림자에 가까운 존재였다. Ashe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한국계 미국인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시리즈의 OST인 ‘Moral of the Story’가 생각난다. FINNEAS 또한 아직은 Billie Eilish의 오빠이자 프로듀서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는다. 앞서 말한 곡을 계기로 둘은 처음 인연을 맺었고, 같은 앨범의 오프닝 트랙인 ‘Till Forever Falls Apart’를 통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췄다. 단순한 협업을 넘어 그룹으로 낸 첫 앨범 [The Dream]은 무언가에 가려져 있던 그들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드디어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듯하다.


Billie Eilish 특유의 둥둥 떠다니는 몽환적인 인디 팝 감성과, 하이틴 드라마 엔딩에 어울릴 달콤한 Ashe의 바이브가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Carole King을 떠올리게 하는 이전 협업보다 훨씬 더 클래식한 70년대 소프트 락이 합쳐진 느낌이다. 대표적으로 잔잔한 물소리로 시작하는 ‘The Hudson’은 소프트 록 특유의 부드러운 코드 진행과 투박한 일렉 기타 사운드 편곡이 앨범 내 가장 진한 레트로 향취를 풍기면서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삼합은 앨범 전체에 따뜻한 통일감을 부여하며 뉴욕과 LA를 배경으로 한 연인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영화 콘셉트를 더욱 잘 살려준다. 각 트랙이 유별나게 튀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영화의 몰입을 끌어올리는 맛있는 BGM 같달까.


요즘 팝에서 레트로는 하나의 관문처럼 여겨진다. 최전선에 있는 Sabrina Carpenter부터, Bruno Mars와 Lady Gaga처럼 이미 정상에 오른 스타들조차 거쳐 가는 흐름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레트로의 표피만을 빌리지 않았다. 마치 Sam Fender가 [People Watching]을 통해 Bruce Springsteen을 연상하게 하는 하트랜드 록의 전통적 질감과 더불어 요즘 시대의 혼란과 불안을 담은 스토리텔링을 함께 해 장르를 동시대적으로 되살린 것이 생각난다. 마찬가지로 The Favors는 소프트 록의 따뜻한 코드와 멜로디를 가져오되, FINNEAS의 몽환적 텍스처와 Ashe의 맑은 보컬을 얹어 새로운 인디 감성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추억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프로덕션의 좋은 예시가 아닐까.





※ '광글', '제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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