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김라마는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독특한 음악적 컨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이다. 다양한 주제를 시니컬하게 엮은 [외톨이갱을 기다리며]나, 래퍼 쿤디판다와 함께 한 [송정맨션] 등 기존의 앨범 모두 음악 매니아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22년 싱글 '샷건 (#1)' 이후로 한동안 활동이 없던 그가 3년만에 새 앨범 [보라색 중세 가요집]으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앨범 역시 '중세'라는 키워드 아래에서 다양한 장르, 서사, 작법을 한껏 쏟아내었고, 역시 김라마는 한국 음악씬에서 유일무이한 캐릭터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됐다. 이 인터뷰는 우리가 놀라웠던 그 순간들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글을 통하여 [보라색 중세 가요집]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김라마입니다.
Q. 앨범 [보라색 중세 가요집] 발매 후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 평소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원래 공연이나 싱글 발매 같은 후속 활동을 계획 중이었는데, 9월 중순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천천히 휴식하면서 다음 단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Q. 시간적인 설정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샷건 (#1)’이나 [외톨이갱을 기다리며]와 달리, 이 앨범은 완전히 ‘중세’라는 컨셉으로 구성됐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중세라는 시대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중세풍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컨셉은 각각 다르지만, 꾸준하게 미스터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컨셉추얼한 앨범을 만드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컨셉 앨범을 만드는 게 컨셉이 없는 앨범을 만드는 것보다 쉽습니다. The Beatles의 화이트 앨범처럼 중구난방식으로, 버릴 곡 없이 좋은 곡만 만들어 내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Q. 여행을 길게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실 때 여행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 재작년에 혼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다녀왔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국적인 거리를 걷고 평소에 듣지 않던 음악도 많이 들었죠. 중세 유적도 많이 구경했고요. 정확히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다녀오고 나서 앨범의 윤곽이 더 선명해진 것은 확실합니다.
Q. 블로그에 자세히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앨범 제목 ‘보라색 중세 가요집’에 담긴 의미, 혹은 그렇게 지으신 의도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보라색도 중세도 가요도 과도기의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저는 가끔 출발지도 종착지도 아닌 그 사이에 계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Q. 앨범이 ‘과거’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이와 관련된 독특한 사운드가 귀에 익습니다. ‘도굴꾼의 애인’에서 들리는 특이한 벨 소리, ‘보물지도’에서 나오는 중세적인 현악기 소리 등, 이런 과거의 향이 나는 소스들을 모으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과거의 악기를 사용하는 건 중세 음악이 아닌, ‘중세풍 현대 음악’을 하려고 할 때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현대 실용음악의 작법을 사용하더라도 구시대의 악기, ‘보물지도’에서 사용한 우드(Oud) 같은 악기로 연주한다면, 기타와는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요. 익숙함과 생경함이 적절한 비율로 공존하기를 원했습니다.
Q. 보컬, 탑라인적으로 트로트, 뽕의 향이 짙게 난다고 느끼는데, ‘중세’라는 컨셉의 서양적인 앨범에서 한국적 요소를 차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앞선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이 앨범이 너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중세’라는 시간적/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배경을 현대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끌고오기 위한 견인차 역할로 트로트와 엔카가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Q. 보컬의 활용에 있어서 평상시 톤보다 더 중후하고 두꺼운 톤을 내려고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는 중세의 찬송가와 같은 느낌이 났습니다. 이를 의도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 이전에 냈던 작업물보다 편하게 발성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찬송가 같은 느낌을 내려고 하지는 않았네요.
Q. ‘마녀의 망치’ 중반부에 나오는 ‘보글보글’과 같은 의성어와 후반부의 나레이션, ‘마르가리타’ 후반부의 읊조림 등은 하나의 ‘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극’적인 느낌을 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중세적인 세계관을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을까요?
- 그건 그냥 제가 스포큰 워드를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 음악에서 극이나 영화적인 요소를 발견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Q. 앨범 전체적으로 장르적 트랜지션도 눈에 띄는데요. 그중에서도 ‘마녀의 망치’ 후반부의 메탈 사운드가 겹치는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역시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일까요?
- 마찬가지로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마녀의 음악이니 예전부터 악마숭배의 누명을 쓰거나, 때론 자초하기도 했던 메탈 음악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집어넣었습니다.
Q. 수록곡 중에서도 ‘보물지도’와 ‘보라색 중세’를 타이틀곡으로 고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그 두 곡이 멜로디적으로 가장 직관적인 것 같아 골랐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Q. ‘보라색 중세’와 ‘마르가리타’는 트랙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스토리적인 부분에서도 연관성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그건 듣는 사람이 느끼기 나름입니다. 제가 정해드리고 싶진 않네요.
Q. 이번 앨범의 수록곡은 가사가 소재도 독특하고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구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가사를 쓰실 때 어디서 주로 영감을 받으시는지 궁금합니다.
-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는 편입니다. 앞서 말했던 여행이나 그 외 영화, 책, 게임, 개인적인 일상이나 뉴스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합니다.
Q. 앨범 제목과 걸맞게 컬트적이며 우화적인 가사가 눈에 띄는데요. 우화는 각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앨범을 통해 주고 싶었던 중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창작자가 정한 메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Q. 이번 앨범을 작업하실 때 음악적으로 또, 디자인적으로 각각 어떤 레퍼런스를 참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음악적으로는 70년대 한국과 일본의 성인가요에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디자인적으로는 한지연 작가님이 담당해주셨는데, 아무래도 중세의 여러 종교 회화나 민화를 재해석하여 작업해주셨습니다.
Q. 현재 김라마 님이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 무지향성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 앞으로도 조용히 작업해서 간간이 새 음악을 들고 오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팬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제 음악 들어주시고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재밌는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