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s2Hearts, &TEAM, After, Miguel
화인애플 : 극도로 정제되었고 완성도 높은 타이틀 ‘FOCUS’ 뒤에는 디스코, 시티팝 등 비교적 편안한 무드로 묶어낸 수록곡이 자리한다. 한 바퀴 감상을 마치면, 첫 EP임에도 익숙하다. 이유는 고전을 계승하기 때문일 것이다. 섬세한 베이스 무빙을 잇다 댄스 브레이크 구간조차 튀지 않고 그사이에 섬세하게 변주를 노린 하우스 장르는 '하우스 맛집' SM이 못해내기가 어려운 장르다. 또한 레드벨벳의 ‘봐(Look)’를 떠올리게 하는 디스코 ‘Apple Pie’와 레드벨벳의 특장점과도 같았던 풍성한 단체 코러스를 담아낸 ‘Flutter’가 수록곡으로 담겼다. 리드 멜로디와 브레이크 랩 파트를 통해 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공개 곡 ‘Pretty Please’도 'SM의 고전'을 현세대로 다시 불러오려는 Hearts2Hearts(이하 하츠투하츠)의 시도가 돋보이는 앨범이다. '핑크블러드'에게는 '아는 맛'이 가득했고, 추억을 불러일으킬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었기에 반가움이 컸다. 이처럼 음악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계승이 그저 계승으로만 남지 않을 포인트가 필요했다. 익숙함이 하츠투하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되는 지점은 어디였을까.
그 부분은 데뷔 싱글 ‘The Chase’의 결을 따르는 컨셉과, 음악과 함께 녹여낸 퍼포먼스 요소로 설명된다. 하츠투하츠는 ‘The Chase’로 몽환적이고 신비롭다는 평을 얻었다. ‘FOCUS’도 그 결을 잇는 흐름이다. 데뷔 이래로 일관된 흐름을 따르며 신비로움이라는 키워드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 하우스 장르만으로 그런 감각을 느끼기보다는, 코러스의 챈트 구성과 벌스에서 반복되는 'Amazing', 'Phrasing' 등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퍼포먼스 면으로는, 짝수로 나눌 수 있는 8인조라는 점을 이용한 대칭 구조가 멤버 개개인보다 '팀'이라는 존재에 집중하게 했다. ‘FOCUS’의 시작과 끝의 대형이 일치하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침묵의 007빵도 각각이 개인으로 게임에 참여하지만 8인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주며 그들의 신비로움을 배로 더했다. 이처럼 [FOCUS]는 전과 현을 이으려는 시도를 몽환적이고도 정제된 그들만의 분위기로 이어나가고 있다. 익숙함이 반가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주는 매력이 있었다. 이제는 SM의 앞선 향수를 재해석하는 팀에 그치지 않고, 수록곡까지도 그들만의 신비로움을 담아낸다면 하츠투하츠 또한 '새로운 고전'이 되기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샐리 : 미국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KATSEYE,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NCT WISH 등 주요 기획사들의 현지화 그룹 런칭이 최근 2-3년 사이에 잇따라 진행되었다. 그중 일본 현지화 그룹인 &TEAM은 3년간 일본 활동에 주력하며 입지를 다져오다가, 이번 한국 오리지널 앨범 [Back to Life]로 역진출을 시도했다. 타이틀 ‘Back to Life’로 록 힙합 장르를 기반으로 강렬한 드럼 사운드로 다크한 분위기를 내세웠다. 만듦새 자체는 익숙한 전개에 잘 정돈된 사운드로 안정감을 주지만, 퍼포먼스에서 오는 에너지까지 고려한 듯 청각적 재미는 다소 평면적으로 처리한 느낌이다. 그리고 K-POP 문법을 적용시킨 그룹답게, 다른 트랙들에서도 예상 가능한 프로덕션이 펼쳐진다. ‘Lunatic’처럼 힙합 비트를 기반으로 한 댄스곡들로 타이틀의 에너지를 적당히 이어가며 흐름을 유지하고,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곡 ‘Who am I’를 후반부에 배치시켜 전형적인 완급 조절로 무난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본 작은 음악을 넘어 산업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제 K-POP은 제작 시스템 자체가 하나가 글로벌 모델로 기능하며, 현지화 그룹이 다시 한국으로 향하는 '역진출'의 흐름도 이어진다. 그렇기에 시장의 확대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본고장인 ‘한국’의 존재감을 선명히 하는 일의 중요성도 커졌다. 이번 &TEAM의 한국 앨범 발매는 산업의 원점에서 정체성을 되짚고 그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문제는 케이팝의 프로덕션이 제공하는 안전함에만 머물렀다는 점이다. 힙합, R&B, 댄스 등 장르적 다양성과 깔끔하게 정돈된 사운드가 높은 완성도를 넘어 &TEAM의 색깔까지 보여주지는 못했다. 현지화 그룹이라는 포지션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존재는 K-POP 프로덕션 적용을 넘어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의미가 있다. 검증된 시스템은 출발지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그 위에서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 시도와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어내느냐가, &TEAM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지 않을까.
화인애플 : 앨범 커버는 물론, 뮤직비디오까지 '컨셉'에 미쳐있다. 뮤직비디오는 필자의 유년기를 함께한 만화 'Why? 정보통신' 속 유비쿼터스 세상을 연상시킨다. 흰 배경 위에 곡선을 배치하고 콜라주 기법을 더한 앨범 커버는, 지금 보니 다소 촌스러워 보일 정도다. 음악은 어떨까. '프루티거 에어로' 디자인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낸 [After EP 2]는, 전작에 이어 다시 한번 청명한 초원을 건너 2000년대의 공기로 향한다. 초원의 광활함, 자연, 물방울의 질감 등을 음악으로 구현해 냈다. 첫 트랙 ‘Deep Diving’은 힙합 드럼에 메인 루프가 되는 신스 건반으로 전자적 질감을 녹였다. 또한 ‘The Field’에서 뚝뚝 끊기는 듯한 신스 음과 스크래치도 이펙트도 당시의 '디지털'적인 질감을 살린 사운드 메이킹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지녔던 질감과 그 미학을 동시에 재현해 낸다는 인상을 준다. ‘The Field’와 ‘Where we are now’가 첫 트랙을 따르는 흐름이라면, ‘Outbound’와 ‘Close your eyes’는 영화 [Easy A]의 엔딩 장면에 삽입될 것만 같은, 2000년대 하이틴 영화의 엔딩 사운드처럼 녹아드는 곡이다. '차분한' 에이브릴 라빈을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결국, 그 시절의 유행과 감성을 충실히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 '프루티거 에어로'라는 디자인 아래 음악을 중심으로 모든 콘텐츠가 일관성을 드러낸다. 굳건한 뿌리에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처럼, 감상할수록 그 중심을 발견하게 되는 앨범이었다.
시리즈 앨범이라는 면에서는, 전작이 컨셉을 차용했다는 정도였다면 2탄인 본 앨범에서는 전작보다 훨씬 낙관적인 멜로디를 여러 트랙에 등장시키며 컨셉 그 자체로 분했다. [After EP]의 ‘Ever’는 '프루티거 에어로' 컨셉을 따른 트립합 장르지만, 스트링 멜로디나 보컬 톤을 통해서는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면 본 앨범의 ‘The Field’의 코러스 스트링이 주는 멜로디는 하강하는 멜로디 자체만으로 당시의 메이저한 느낌을 전달받는 듯하다. 이처럼 [After EP 2]는 속편은 흔히 전편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며 빛나는 두 번째 장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 컨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운드적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앞길이 창창하지만은 않다. 본 앨범 또한 ‘Baroque’ 이외에는 -‘Baroque’는 코러스 파트에 락 요소를 녹여내 분위기 전환을 이뤄냈다.- 다섯 곡 모두 비슷한 무드의 트립합(Trip-Hop)과 인디트로니카(Indietronika) 장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로 첫 트랙 ‘Deep Diving’에 익숙해지면 ‘Where we are now’까지는 따로 '와우' 포인트 없이 무난히 흘러간다. 사용하는 음악적 소스의 질감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앞으로는 '프루티거 에어로' 자체에 그치기보다는 컨셉을 확장하거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세대가 이미 점령해 버린 Y2K를 지나 2000년대 중후반의 감성을 끌어오는 '틈새시장'으로 새로움을 주었으니, 그 이후의 컨셉을 차용해 보는 선택도 충분히 흥미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샐리 : 혼혈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이혼 등 복잡한 개인사에서 비롯된 혼돈과 변화를 'CAOS' (스페인어로 '혼란'을 의미)로 묶어낸 앨범이다. R&B 사운드를 중심으로 사이키델릭한 질감을 선보였던 [Kaleidoscope Dream]이나, 록과 펑크 요소가 두드러졌던 [Wildheart]와 비교했을 때도, 전반적인 분위기와 구성 측면에서 어둡고 실험적인 면모가 훨씬 강화되었다. 첫 번째 트랙인 ‘CAOS’부터 스산한 느낌의 백보컬을 배치한 레게톤 비트로 서늘한 톤을 사운드 전면에 드러낸다. ‘RIP’에서는 Miguel의 소울풀한 보컬을 보여주는 구성과 빠르고 거친 질감의 드럼으로 댄스곡 같은 구성을 공존시키며 한 트랙 안에서도 극단의 변화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처럼 불안정한 내면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듯한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정돈되지 않은 사운드로, '혼돈' 그 자체를 청각화하며 테마를 명확히 표현해 낸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프로덕션은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특히 전작 [War & Leisure]에서 일렉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사운드와 크게 대비되고, 본작에서 보여준 갑작스러운 트랜지션이나 보컬 연출은 테마에 충실한 요소로만 남아버리기도 했다. 전자음으로 시작한 ‘Angel's Song’에서는 선명도 높은 보컬 뒤로 밴드 사운드와 어쿠스틱 기타를 교차하고, 의도적인 보컬 끊김과 여러 효과음을 배치시킨다. 그러나 각 요소들이 조화되기보다는 어지럽게 펼쳐진 인상을 준다. 그 과정에서 가창도 멜로디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고, 나른하게 유영하는 스타일로 연출되다 보니 혼란만 가중시킨다. '혼란'을 의도한 야심찬 실험작이지만, 그 '무질서함'은 아티스트의 의도를 넘어 매력적인 감상 포인트로 이어지지 않았다.
※ '샐리', '화인애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