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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았어요" 히피쿤다 인터뷰

251014 카페 모래 (MORAE)

by 고멘트

Hippie Kunda (이하 히피쿤다)는 혼성 듀오 99' Nasty Kidz로도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랩퍼이다. 지난 24년에는 MNET의 'RAP:PUBLIC'에 99' Nasty Kidz의 멤버 Drain K와 함께 참여해 인지도를 올렸으며, 25년에는 팀의 정규 앨범 [DOUBLE NINE DISTRICT]를 6월에, 솔로 정규 1집 [TUNDRA]를 8월에 발매하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TUNDRA]는 '황무지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설정과 함께 그에 맞는 사운드, 자전적인 스토리텔링, 뛰어난 랩 등이 잘 어우러져 각종 평론지와 힙합 커뮤니티에서 호평을 받았다.




Q.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99’ Nasty Kidz로도 활동하는 래퍼 히피쿤다 (Hippie Kunda)입니다.

Q. 벌써 앨범 [TUNDRA]가 발매된 지 한 달이 넘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 피지컬 앨범을 낼 예정이어서, 판매사이트를 꾸미고 앨범 해설집 팜플렛도 만들었어요. 원래는 노래를 어렵게 쓰는 편이지만 이번엔 최대한 쉽게 풀려고 노력해서, 공감이 딱 되거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유가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지 상세하게 풀어낸 글을 드릴 생각이에요. 30부 정도만 만들어서 선착순으로 먼저 구매하시는 분들께 드리려고요. 그걸 준비하느라 좀 바빴네요.

또 일본에 공연도 있어서 일본에 다녀왔고요, 10월 말에도 또 가야 해요. 그리고 휴식 차 캐나다도 다녀왔는데, 로키산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질려서 지금 인대가 반 정도 끊어졌어요. 그래도 걷는 데에는 문제없어요. 역마살 낀 것처럼 돌아다녔는데,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처럼 결국엔 집이 최고인 것 같아요. (웃음)


20750995.jpg [TUNDRA]


Q. 6월에 99’ Nasty Kidz로 첫 정규 앨범을 내시고 나서 바로 솔로 앨범을 내신 건데, 준비 기간이 서로 겹쳤을 것 같아요.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 정말 힘들었어요. 13트랙짜리 개인 앨범이랑 9트랙짜리 팀 앨범을 동시에 하니까 진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그래도 팀 앨범은 정해놓은 날에만 작업하고, 그 외의 날에는 개인 앨범 작업하는 식으로 스케줄을 나눴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Q. 작업 기간이 겹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 제 작업 스타일은 꽂히면 그냥 빨리 진행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이번에 같이 앨범 작업을 했던 프로듀서 ODDFLIP도 그런 스타일이어서, 그냥 작업실에 있다가 “앨범 작업하자” 했더니 “그래” 라고 하길래 그때부터 바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마침 팀에서도 앨범 내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했죠. 그래서 두 앨범이 비슷한 시기에 완성됐는데, 아무래도 팀 앨범이 좀 더 빨리 발매됐고, 개인 앨범은 다른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 빨리 내자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시기가 팀 앨범을 낸 직후가 가장 적당하더라고요.

Q. 솔로로 정규 앨범을 준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 팀으로 활동하며 팀 앨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들만 추려서 말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속에 쌓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한 번에 확 나온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정규 앨범이라고 하면 아티스트 개인의 경험이나 전달하려는 가치, 메시지가 몰입감 있게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컨셔스해졌는데, 한편으로는 이 앨범을 듣는 사람들이 ‘‘히피쿤다라는 래퍼는 컨셔스한 사람이다”라고만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요.


Q. 팀 활동과 솔로 활동의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분리하신 건 아니었군요.

- 네,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요.




Q. 전체적으로 앨범의 분위기가 신남과 진지함을 오가는 W자 구성으로 되어 있다고 느껴졌는데, 이건 의도한 부분이었을까요?

- 맞아요. 계속 컨셔스하면 재미없고, 계속 재미만 있으면 할 말을 제대로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듣는 사람에 대한 고려를 진짜 많이 했어요. 사실 컨셔스한 가사들이 가득 담겨 있는 노래들은 초반에 먼저 나왔어요. 그것들만 쭉 들어보니까, “이전 솔로 EP처럼 만들어 놓고 듣기 싫은 앨범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가볍게 풀 수 있는 노래들이랑 ‘Alaska Running’같이 달릴 수 있는 노래 같은 것도 추가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죠.

Q. 안 그래도 저번 EP [Sleep Onset Latency]가 하드코어한 사운드여서, 이번 앨범은 많이 다르다고 느껴졌거든요. 의도적으로 대조를 하셨던 거네요.

- 원래 저는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듣는 사람이 그걸 그대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앨범을 만들거든요. 지난 EP에서는 “세상에는 너희가 보지 않는 이면이 있고, 그곳에는 아픔과 고통이 가득하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듣는 사람도 고통스럽게 만든 거죠. “나 아프니까 너희도 아파 봐”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저도 그 작업을 하면서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때 실제로 노래에도 제가 들어도 PTSD가 올 것 같은 그런 음악들이나 앰비언스, 음성 파일 같은 것들을 사용했었는데, 일종의 음악적 자해였던 셈이죠. 그래서 프로듀서도 작업하면서 되게 힘들어했고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런 게 아티스트를 되게 갉아먹는 표현 방식인 것 같은 거예요. 이렇게 가면 일회용이 되겠다 싶어서 방향을 틀었죠.

[Sleep Onset Latency] 수록곡 'LADY'

Q. 이제 앨범의 내용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앨범 제목을 ‘TUNDRA’로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앨범에 어떤 인상이나 이미지를 부여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처음에는 도서관 컨셉을 생각했었어요. ‘히피쿤다’라는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뽑아서 읽으면 이런 내용이겠다 싶은 곡들로 채워야지 했는데, 요새 사람들 책 많이 안 읽잖아요. 저도 잘 안 읽기도 하고, 내 책을 누가 읽고 싶어 할까 싶은 거예요. 또 지루한 앨범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다른 걸 생각해보다가 ‘툰드라’라는 단어가 생각났던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야성이 담겨 있는 음악들을 되게 좋아해요. 와일드한 것들,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것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점에서 툰드라는 엄청 험난한 지역이고, 식생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힘든 환경이잖아요. 내 인생에서 힘들었던 것들이 어쩌면 당신의 삶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내용을 표현하는 데에 툰드라라는 주제가 적합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Q. ‘AGATHA’, ‘WESTERN BOOTS’,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 3곡이 타이틀 곡인데요. 타이틀 곡을 3개로 정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각 곡을 타이틀로 선정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곡을 만들 때 프로듀서 ODDFLIP이 전곡을 타이틀처럼 만들자는 포부를 내비치긴 했어요. 그런데 진짜로 다 타이틀로 쓰고 싶게 나온 거예요. 하지만 일단은 서정적인 트랙, 생각해볼 만한 트랙, 어두운 느낌의 트랙,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서 각각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랙을 타이틀곡으로 삼았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타이틀곡을 선정하신 기준이 전체적인 맥락과 서사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 좀 더 가까웠다고 보는 게 나을까요?

- 그렇죠. 앨범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곡을 타이틀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앨범 전체적으로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분노를 단순히 표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로 분노를 소화해내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 대해서 히피쿤다 님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 한국인들이 비꼬는 화법이나 집단적 사고에 되게 익숙한 것 같아요. 진지한 것들을 오그라든다고 표현하는 것처럼요. 그런 게 낭만이나 정의를 죽이는 것 같아요. 정의로우면 멍청한 사람이고 낭만이 있으면 철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고요.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는 그 가치를 수호하는 바보가 돼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어딘가를 지키는 파수꾼을 떠올리게 돼서, ‘파수꾼’이 나왔어요. 제가 만화를 좋아하는데, ‘나루토’에 “이런 게 현명한 거라면 난 평생 바보로 살겠어”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히피쿤다 - 파수꾼

Q. 이번 앨범을 제작하면서 꼭 표현하고자 했던 말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이건 팜플렛에도 적었던 건데, “살아가자. 생각하자. 돌아보자.” 입니다. ‘살아가자’는 허상에 현혹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집중하면서 살아가자는 뜻이고요. ‘생각하자’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지 말자는 얘기고요. ‘돌아보자’는, 아픈 기억이나 좋은 기억이나 다 돌아보면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앨범에도 담겨 있긴 하지만, 안 좋았던 기억이나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제가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Q. 방금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노래로 써야겠다고 느낀 계기가 있을까요?

- 꾸준히 마음속에 그런 걸 갖고 살았던 것 같은데, 어딘가에 얘기하지는 않았었거든요. 얘기해 봤자 그냥 “뭐라는 거야” 이럴 텐데, 제가 얘기해서 뭐 해요. 그리고 이전까지는 저도 관객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데, 불특정 다수한테 평가될 수 있는 쇼에 모습을 비춘 뒤에는 이제는 저도 그런 것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잇는 상태가 된 것같았어요. 그때 확신이 선 거죠. “말해야겠다” 하고. 그러니까 원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을 안 했던 거라면, 이제는 할 용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Q. 앨범의 프로듀싱은 ODDFLIP이라는 분이 맡으셨는데, 어떤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 일단 ODDFLIP은 본래 쓰던 활동 명이 있어요. ‘늘보 (Neulbo)’ 라고, 예전에 디핀칼즈 레코즈에서 활동하던 프로듀서에요. 저희가 [Nasty Cinema] 앨범을 내기 직전에 ‘P2P’라는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했었거든요. 그 시즌에 늘보도 같이 나왔었어요. 그 이후로 작업도 서로 많이 도와주다 보니까 음악 듣는 취향이 서로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그때부터 인연이 길어지게 되었죠.

Q. 이번 앨범에서는 드럼앤베이스, 인더스트리얼, 붐뱁,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가 들려요. 앨범을 제작하면서 사운드적으로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보통 가사를 쓰고 그에 비트로 디벨롭 하려고 하지, 비트를 만들어놓고 가사를 붙이지는 않아요. 그래서 장르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프로세스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얼터너티브하게,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Q. 타이틀 곡 중에 하나인 ‘AGATHA’는 추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인상적인 트랙이었어요.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쓰게 되었나요?

- 앨범에 책을 메타포로 삼은 곡이 엄청 많지만, 유일하게 작가를 데려온 곡이 ‘AGATHA’예요.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여생 자체가 소설만큼 미스터리하기로 유명한데, 그걸 보며 “사람은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또, 어느 날 어떤 행위 예술이 포함된 현대미술 작품을 봤는데, 댓글을 보니까 되게 신랄한 거예요. “이게 뭐냐”, “내가 예술 하면 저거보다 더 잘 하겠다” 같은 내용의 댓글을 보면서 “사람이 창작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창작자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겠다. 창작물과 창작자는 같은 거니까.”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AGATHA’라는 곡의 가사가 나오게 되었고요. 책도 재미있게 봤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가사에도 쓰였어요.

Q. ‘채식주의’는 제목과 내용에서 가장 독특했던 곡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곡을 제일 좋아해서 여러 번 듣기도 했고요. 이 곡을 쓰게 된 구체적인 비화가 궁금합니다.

- 감사합니다. 가장 큰 계기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이고요. 알아들으라고 그런 제목을 쓴 거예요. 한번은 “무슨 독후감을 써놨냐”라는 이 곡의 평가를 본 적이 있는데, 곡에 사실 소설의 내용이 없었거든요. 의도가 정확히 현상으로 나타났구나 싶었어요. 소설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사실 다 현실에 있는 이야기고 그걸 그대로 써놓은 곡인데.

책에서는 채식을 하는 주인공이 결국 나무가 되잖아요. 그 극한의 환상까지 치닫는 것이 결국 도피해버린 사람의 말로 같았고, “나는 그러지 않아야겠다, 나는 나무가 되지 않고 살아남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난 살아남기 위해 / 절대 안 해 채식주의”라는 가사가 후렴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제 인생사에서 채소와 관련된 굵직한 기억들이 다 아픈 기억이더라고요. 그 내용의 가사를 중의적으로 썼죠. 그 기억들에 대한 위로를 담은 노래예요.

‘아삭아삭’이 상쾌하게 부서지는 소리잖아요. 훅이라도 상쾌하게 하자는 생각이랑, 그 기억의 편린들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만큼 단단한데 상쾌하게 금방 이빨로 물면 부서질 것 같은 기억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아삭아삭해’를 훅으로 쓰게 됐어요.


Q. ‘Tindrum’에는 뉴질랜드 의회에서 한 의원이 하카를 했던 영상의 소리를 샘플링 했고, 후렴에서도 하카를 할 때 외치는 구호를 차용하셨어요.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일단 폴리네시아의 원주민이 전투 전에 부르는 노래라는 것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앞에 나서서 싸우고, 전의를 다질 때 외치는 구호로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하카를 가져왔어요. 그리고 그 의원의 영상도 인상 깊게 봤었고요. 그 의원이 불렀던 하카의 가사가 ‘ka mate ka mate / Ka ora ka ora’의 반복인데, ‘나는 죽었다, 나는 살았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나는 생사의 기로에서도 시끄럽게 양철북을 칠 것이다”라는 주제로 가사를 써 내려가게 되었죠. 투지가 폭발했던 호전적인 곡이에요.

Q. 이 곡도 가사를 먼저 쓰고 어울리는 샘플링을 찾아서 넣은 건가요, 아니면 샘플링부터 생각하고 곡을 만드셨나요?

- 이 곡은 먼저 샘플링부터 하고 싶었어요. 구호를 외칠 수 있는 빡센 곡을 만들고 싶은데, 샘플링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싶어 많이 찾아봤거든요. 장송곡을 비롯해 이것 저것 찾다가 이 영상이 생각난 거죠. 최근에 바이럴 되기도 해서, 이만한 건 없겠다 싶어서 바로 샘플링 했어요. 비트가 그러니까 가사도 잘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Q. 피쳐링 라인업 중에선 밴드 ‘서울부인’의 김경호 님이 눈에 띕니다. 어떤 인연으로 참여하게 됐을까요?

- 저랑 ODDFLIP이랑 락, 메탈을 좋아해서, 한번은 클럽 FF로 공연을 한번 보러 갔었어요. 그날 밴드 라인업이 TIECH (티치), 서울부인, HarryBigButton (해리빅버튼), 두억시니 (DUOXINI) 등이었는데, 다른 밴드들은 전체적으로 하드하고 서울부인은 비교적 가볍고 소프트해 보이잖아요. 근데 밀리지 않고 좌중을 휘어잡으시더라고요. 그리고 아저씨들 4명이서 모여 계시는데, 가운데 두목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 그런 분위기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곡 ‘WESTERN BOOTS’에서 컨트리 사운드가 나오다 보니, 여기에 피쳐링을 쓴다면 누굴 넣어야 될까 고민하다 “보컬을 넣어보자”라는 결론이 났고 그렇게 서울부인이 생각이 났죠.

Q. ‘WESTERN BOOTS’ 곡은 하필 ‘웨스턴’이 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했거든요. 툰드라라는 제목이랑 이질감이 들어서요.

- 설원하고 반대되는 기후를 찾다가 쓰게 됐어요. 정글을 하기에는 느낌이 너무 촉촉한 거예요. “같은 건지(乾地)면서 황량해 보이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서부(Western)더라고요.

히피쿤다 - WESTERN BOOTS

Q. 설원과 반대되는 걸 찾은 이유가 뭔지 좀 궁금합니다.

- 미국 서부에서 신는 신발을 신고 눈밭을 달리고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WESTERN BOOTS’의 훅이 ‘Western boots footprints in the snow’, 그러니까 ‘눈밭에 찍힌 웨스턴 부츠 발자국’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맞아, 너희들이 볼 때 이상하겠지. 근데 나는 상관없고 그냥 달린다.”하는, 시대와 계절을 좀 가로지르는 의미였죠.

Q. 앨범적으로도 이 트랙이 튄다고 느꼈는데, 일부로 튀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봐도 될까요?

- 그렇죠. 중간에 좀 트이게 하는 역할도 있었고, 메시지적으로는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아요. “알아서 해라. 난 달려야겠다.”

Q.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는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과 다르게 평화롭다고 느꼈어요. 히피쿤다 님에게 창동이란 어떤 의미고, 또 [TUNDRA]를 통해 던진 문제의식 속에서 창동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창동은 완전 애증이에요. 평화롭다고 하셨지만 2절을 보면 그렇게 평화롭지도 않아요. 창동에서 오래 살았는데, 늘 지루하고 낡은 동네에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었어요. 친구들은 다 마포구에 있고, 작업실은 파주에 있고, 어딜 가도 1시간이에요. 창동이 너무 먼 거예요.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꿈꾸려면 밖으로 나가야지” 하면서 계속 창동 밖으로 나돌았는데,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오더라고요. 결국 “어쨌거나 나는 창동으로 돌아오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친구들과 술 먹다가 나 창동 가야 된다고 하고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때 뇌리를 스치며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라는 제목이 나왔어요.

히피쿤다 -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 + AGATHA

Q. 창동이 이 앨범에서는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도 궁금했습니다. 정말 의미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라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나온 걸까요?

- 제가 아까 전하고 싶었다고 했던 메시지. ‘돌아보자’와 연관되는 것 같아요. 창동에서는 혼자 고립되어 있으니까 나를 보기가 가장 좋아요. 과거를 좀 돌아보기도 좋고, 그곳에 있으면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할 수 있는 장소들이 주변에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가장 제 얘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그리고 동네를 샤라웃 해보고 싶었어요. 홈타운이니까. 창동 좋은 동네입니다. (웃음)


Q. ‘파수꾼’이 [TUNDRA] 라는 앨범의 타이틀과 가장 부합하는 트랙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트랙이 중간이나 마지막이 아닌 가장 처음에 위치한 것이 흥미로워서, 이 곡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 두괄식 작법이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번 앨범은 해석하기 쉽게 만들자”에 굉장히 초점을 많이 뒀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런 얘기 할 거야” 라고 알려주는 곡이에요. 해설집에 있었던 내용을 조금 풀어보면, 곡 안에서 파수꾼이 지키는 것은 ‘아무도 찾지 않는 들판’이고, 그 들판은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가치’에요. 사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개인에게 소중한 것들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파수꾼은 그런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의 뭔가 내적인 외침을 표출하는 인물이고요.



Q. 99’ Nasty Kidz는 어떻게 결성하게 됐는지도 궁금합니다.

- 20살 때 홍대 윗잔다리에서 만났습니다. 프리스타일 하면 홍대 놀이터나 윗잔다리였잖아요. 홍대 놀이터에서 윗잔다리로 씬이 옮겨지고 그 윗잔다리에서 하던 세대가 끝날 때쯤에, 저는 그때 처음 나가 봤어요. 그때 Drain K랑 알게 됐는데, 저에게 “크루 들어올래?” 라고 제안하더라고요. 한 번 튕겼다가 좋다 했죠. 나중에 그때 첫인상을 물어봤더니 “프리스타일을 더럽게 못하는데 발성이 좋아가지고 이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Drain K가 만든 크루에 들어갔는데 반쯤 와해돼 버렸어요. 그렇게 나갈 각을 재고 있는 와중에 Drain K가 먼저 “크루가 해체됐는데, 너는 어떻게 할거냐” 묻더니 “음악 계속 할 거면 작업실 같이 쓰자”라고 제안해서 둘이 같이 들어가게 됐어요. 언더 래퍼들은 피쳐링 해주고 더블링 해줄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 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같이 하다 “이럴 거면 듀오 할까?”라는 말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99’ Nasty Kidz가 결성됐습니다.


80745696_1750829565814_1_600x600.jpg 99' Nasty Kidz

Q. 그룹 활동을 할 때와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을 할 때 느껴지는 차이점이 좀 있으실까요?

- 99’ Nasty Kidz의 작업 자체는 빠른 편이에요. 하지만 두 명이 모여서 하다 보니까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요. 게다가 프로듀서 Baybrick의 작업실은 파주에 있어요. 창동에서 가면 1시간이 넘는 거리라 가기가 너무 어려워 실제 속도에 비해 제작하는 속도가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개인 작업은 ODDFLIP이 마포구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 방문할 수 있으니 작업 속도가 훨씬 빨라졌어요. 그리고 팀원과 상의할 필요가 없죠. 멋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면 돼서. 그게 제일 다른 것 같아요.

Q.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시는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좀 궁금합니다.

- 영향을 많이 받고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래퍼가 아니에요. Nine Inch Nails를 제일 좋아합니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사람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앨범에서도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쓰는 것 같네요.

힙합에서는, 처음엔 Young MA를 따라 하고 싶어 했어요. 근데 피지컬이 애초에 차이가 너무 컸죠. 여성 래퍼지만 눈 감고 들으면 남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톤이 너무 다르다 보니 “따라하지 못하겠다.” 싶어서 그냥 팬으로만 남았고, 그 외에는 락, 메탈을 좋아하는 영향 때문에 Ghostemane이나 Scarlxrd, Lil Darkie같은 아티스트들도 되게 좋아했고, 근래에는 ODDFLIP의 영향을 받아서 Tyler, the creator를 많이 듣고 JPEGMAFIA도 되게 좋아해요.


Young MA - BIG

Q. 락, 메탈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셨나요?

- 어렸을 때는 그냥 밴드 노래구나 했었어요. 락 매니아는 아니었어요

Q. 보통 락 메탈을 좋아하면 밴드를 하기 마련인데, 래퍼가 된 계기가 궁금했어요.

- 서사가 조금 복잡한데, 원래는 미대 입시를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서 못했거든요. 어쩔 수 없이 공부해서 갈 수 있는 대학을 가야만 하는 거에요. 그렇게 방황을 많이 했는데 그때 힙합이 너무 위로가 됐었어요. 그러다가 락에 힙합이 섞인 뉴메탈로 넘어 갔지만… 그래도 처음 음악 자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힙합이 맞기 때문에, 래퍼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Q. 여성 래퍼라는 틀에 가두는 게 좀 썩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국 힙합 씬에서 여성 래퍼로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좀 소외가 좀 궁금하긴 해요.

- 사실 별 감흥 안 갖게 된 지는 오래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고. 근데 그건 있어요. 남자 동료들이 많다 보니까, 속 얘기를 나누고 동성 친구나 동갑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Q. 정말 현실적인 얘기네요.

- 네, 그래서 저는 여성 래퍼 만나면 많이 치대거든요. 뭔가 좀 친해지고 싶고 ‘제발 나랑 친구해줘’ 이런 느낌으로 (웃음) Drain K가 주변에 형들이 많은데, Drain K는 형 동생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걸 보면서 좀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나도 언니 동생 하는 언니 갖고 싶다 이런 느낌. 물론 그 형들도 똑같이 좋은 말을 해주지만요.

Q. 현재 주목 받는 여성 래퍼라고 하면 히피쿤다 님이랑 루시갱 (Luci Gang) 님이 떠오르는데, 작년 싱글 ‘KILL THEM ALL’부터 해서 이번 ‘Tindrum’까지 함께 하셨어요. 두 분이 어떤 관계인지 좀 궁금합니다.

- 랩:퍼블릭 때 만났어요. 언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촬영 전에도 저는 알고는 있었어요. Drain K가 저한테 “야 죽이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들어봤는데 랩을 너무 잘하더라고요. 만나서 얘기를 한 건 랩:퍼블릭이 처음이었는데 되게 나이스했고, 좋은 조언 많이 해주셔서, 도움도 많이 받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Q. 랩:퍼블릭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혹시 촬영하는 동안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으셨을까요?

- 첫 번째는 4R 1차 블록 매치에서 8블록이랑 할 때, 그때 저 한 번에 지고 나서 Drain K가 나와서 뒤에 한 3명을 썰었던 순간이 있는데요, 이제 같은 팀원들하고 다 같이 막 ‘으아!!’ 하면서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때 되게 즐거웠었어요. 두 번째로 4블럭 넘어가서 처음으로 99’ Nasty Kidz가 원래 하던 음악을 제대로 보여준 무대가 있었는데, 마지막 라인에서 서로 눈 마주치고 결연하게 랩을 뱉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때도 감정이 치솟았어요. 촬영장이 폐쇄돼 있으니까 몰입이 되게 심해지더라고요. 과몰입 하게 되고. 그리고 제 손으로 두 명 떨어뜨려야 했던 그때는 너무 슬펐어요. 그때 진짜 뭐 세상 떠나가라 울었는데, 지금 나와서 생각해 보면 진짜 뭘 그렇게까지… 게임이었는데.


Q. 참가자 중에서 가장 리스팩을 주고 싶은 사람이 혹시 누구였나요?

- 비지 (Bizzy) 오빠가 마인드 자체가 쿨하시고 좋은 말도 많이 해 주셔서, 긍정적인 영향을 갖고 다니시는 분 같아요. 그래서 너무 리스펙하고 기표도, 같은 팀이었던 기표가 되게 어렸어요. 근데 성숙하고 잘 따라주어서 그 두 사람을 뽑겠습니다.

Q. 랩:퍼블릭 출연을 통해서 혹시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시나요?

- 관심과 기대.

Q. 제일 중요한 거를 얻으셨네요. 혹시 이번에 쇼미더머니 12는 안 나가시나요?

- 나가요. 제가 일본에서 공연을 해가지고 예선 일정이랑 맞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도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 실력은 이제 논할 필요 없는 사람이나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 일단은 쇼미더머니 12이고요. 근데 말은 이렇게 해도 가서 1차 탈락하고 올 수도 있지만 (웃음), 내년에 쇼미 끝나는 시즌이나 떨어지는 시점에는 Drain K랑 싱글 하나를 내고, 제가 쇼미를 하는 동안 Drain K는 개인 정규 앨범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 후에는 Drain K 작업물이 나오고, 그 다음에 아마 앨범이 나올 것 같아요. 5곡이 든 EP로 낼 생각인데, 이미 만들고 있어요.

Q. 엄청 허슬하시네요. 정규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됐는데요.

- 팀 앨범을 할 때도 그 다음 스텝을 미리 생각하고 하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좋아해 주시는 마음이 더 자랑스러워질 수 있게 멋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랑해요. 많이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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