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O, JINBO the SuperFreak, 미란이 외
광글 : 7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의 러닝 타임은 16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짧은 시간과 더해진 미니멀한 프로덕션을 통해 마치 16분의 시간을 하나의 음악처럼 느끼게 하려는 듯하다. 트랩 비트가 밑바탕이 되어 미니멀한 신스와 속삭이는 보컬로 레이어를 메운 이번 앨범은 통일감은 형성했을지 언정, 기존 CAMO의 강점이었던 직관적으로 후킹한 사운드는 사라지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Life is Wet’, ‘Only You (feat. Leellamarz)에서 보여준 통통 튀는 신스와 함께 하는 뱅어도, 적절하게 들어왔던 피처링도 보이지 않는다. 피처링 없이 오직 자신의 목소리로만 내면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홀로서기의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음악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대표적으로 타이틀 ‘Secret’은 느긋한 기타와 몽롱한 플로우 위로 '근데 너만 보여줄게, 들키지 마 제발'이라는 은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려 한다. CAMO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마주하고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진정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메시지의 깊이가 사운드의 단조로움에 휩싸여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적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운드를 최소화한 구성은 내러티브의 집중력을 높이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낮은 전달력이 겹쳐지면서 메시지와 사운드 모두 평면적으로 심심하게 다가온다. 차라리 리드미컬한 플로우의 변화나 더 선명한 가사가 명확하게 전달됐다면 고백이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기 위한 이번 실험은 마치 분명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에세이를 본 것만 같다.
엉얼 : JINBO the SuperFreak이 다섯 번째 정규 [JBFM]을 발매했다. [JBFM]은 라디오 컨셉으로 진행된다. 국내에선 다소 낯설지만 해외에선 Vince Staples – [FM!], Mac DeMarco – [Rock and Roll Night Club] 등 앨범의 유기성을 높이기 위해 라디오 형식을 사용한 앨범들이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발매된 유사한 컨셉과 장르의 앨범 The Weeknd - [Dawn FM]과 비교하여 어떤 방식으로 풀어냈는지 살펴보았다. 개인적인 의견은 컨셉을 활용한 방식에서 차이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The Weeknd - [Dawn FM]에서의 라디오 컨셉은 앨범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흘러나오는 가상의 라디오 방송이란 세계관에서 큰 틀을 잡아주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 반대로 [JBFM]은 컨셉 자체를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라디오를 포맷으로 잡고 한국식 라디오 쇼 '매체' 형식을 포인트로 설정했다. 이는 대중들이 자신의 음악을 보다 익숙하고 쉽게 접근하기 위한 역할을 맡는다.
또한 JINBO the SuperFreak은 [JBFM]에서 DJ로 등장하며 컨셉에 힘을 더한다. 그는 1번 트랙에서부터 자신이 꾸려놓은 음악들을 소개하며 앨범 컨셉을 이어 나간다. 앨범의 전체적인 트랙은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미니멀한 드럼 비트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르 또한 R&B, 힙합, 소울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되어 있다. 힙합 트랙 ‘종살이’를 비롯해 브라스 사운드와 화려한 베이스 라인이 돋보이는 ‘눈을 떠’가 있으며 특히 쓰인 소스가 비슷하지만, 악기의 활용과 리듬의 차이로 또 다른 느낌을 만든 ‘느낌이 와’, ‘Ease Your Mind’도 인상적이다. 트랙 구성이 마치, JINBO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영향을 받은 음악들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더불어 앨범 중간중간 삽입된 10개의 Skit은 라디오 광고처럼 곡과 곡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며, 실제 라디오를 듣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그래서 [JBFM]은 집중해서 감상해도, 백색소음처럼 틀어놔도 좋은 웰메이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음악이 일종의 배경음, 플레이리스트로 소비되는 시대에 맞춰 JINBO는 라디오 쇼 형식을 통해 장르의 다양성과 유기성을 확보하면서도, 특정 상황이나 집중도를 요구하지 않아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어냈다. 이는 JINBO the SuperFreak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리하게 기획했음을 알 수 있다.
iforyoursanity : 쇼미더머니 9을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미란이는 ‘ACHOO’, ‘Daisy’ 등 싱잉 랩 중심의 음악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초기에는 싱잉 랩으로 포지셔닝을 잡는 듯 보였으나, 정규 1집에서는 프로듀서 과카(KWACA)와의 협업을 통해 보다 세련되고 밀도 있는 사운드를 선보이며 새로운 결을 확립했다. 이 과정에서 저지클럽, 퐁크, 멤피스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차용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수민과 함께한 트랙에서는 R&B 기반의 사운드로 기존 싱잉적 무드 또한 이어갔다. 이러한 음악적 확장은 이번 EP에서도 이어졌다. 전곡을 kimmy gone이 프로듀싱하며 전체적으로 전자음악적 방향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하이퍼팝, 테크노, 아프로비츠, 저지클럽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버무려내며, 일렉트로닉 베이스의 트렌디한 사운드라인을 완성했다. 다만 전반부가 팝스럽게 풀어나가며 대중성을 유지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마이너한 색채가 짙어지며 kimmy gone 특유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Cash flow’의 저지클럽 리듬 위에 리버브를 건 보컬 사운드는 kimmy gone의 ‘Bad b**ch’를 연상시키고, 이어지는 ‘Cry?’에서도 비슷한 작법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동시대 사운드의 트렌드를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는 인상적이다.
비주얼 또한 이러한 사운드적 방향성과 궤를 같이한다. ‘CLUTCH’ 뮤직비디오에서는 낮은 채도와 미니멀한 구도를 통해 덜어냄으로써 세련됨을 드러냈고, ‘Yellin’에서는 따뜻한 색감과 탈색된 펌 등을 활용하며 레트로를 트렌디하게 구현했다. 결국 이번 EP는 사운드와 비주얼 모두에서 트렌디함을 기반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트렌디함에만 집중했다는 것이 아쉽다. ‘Right place, Right time, Right sound’라는 앨범 소개 문구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고 반영한 만큼 미란이만의 고유한 결은 옅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데뷔 초반에는 쇼미더머니의 강렬한 서사로 눈길을 끌고, 정규 1집에서는 KWACA와의 협업으로 밀도 있는 사운드를 통해 소구점을 마련해 줬다면, 이번 EP는 트렌디함 외에는 소구점이 명확하지 않았다. 결국 팬덤 기반이 아직 견고하지 않은 여성 힙합 솔로 아티스트로서, 단기적 트렌드에 머무르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신만의 사운드 철학과 미학을 명확히 구축해 나가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 느껴진 앨범이다.
엉얼 : 틱톡에서 바이럴 되며 단숨에 인기를 얻고, 연이은 싱글 발매가 히트하며 성공을 맛봤던 Armani White. 이번 정규 앨범의 수록곡 중 절반을 선공개했으나, 예전에 비해 큰 주목은 받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인 추측은, 대중들이 Armani White가 이전에 발매했던 싱글 'BILLIE EILISH.', 'GOATED.'처럼, 이번 앨범도 '후킹'과 '챌린지'에 중점을 둔 앨범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실제로 신보에 그런 점이 짙게 보였고, 무엇을 노리고 만들었는지 의도가 보였다. 따라서, 비슷한 걸 반복해 신선함, 인기 모두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이번 앨범 [THERE'S A GHOST IN MY HOUSE.]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선 트랙 배치가 매끄럽지 못하다. 예를 들어 ‘HOME.’ 후렴 부분에 백그라운드 코러스가 나오는데, 2번 트랙 ‘GHOST.’가 아닌 비슷한 질감의 vox로 사운드로 시작하는 5번 트랙 ‘TTSO. FREESTYLE’을 2번 트랙으로 배치했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은 곡 내에서 비슷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전 히트곡 ‘BILLIE EILISH.’, ‘GOATED.’의 구조는 비트가 잠시 break 되었다가 시작하고,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는 패턴으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후킹'과 '챌린지'에 초점이 맞춰진 음악적 장치들이 ‘GHOST.’를 비롯해 ‘TTSO. FREESTYLE’, ‘‘FlashMOB. l’ 등 앨범 내 다른 트랙에서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쓰인 점이다. 단일 트랙으로 들을 때는 그런 장치들이 기억에 남지만, 앨범 전체를 감상할 때는 피로도를 높이고 다양성을 줄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앨범을 통해 느낀 건 과거에 히트했던 곡들의 구조를 반복하며 다시 한번 바이럴을 노린 듯한 인상이 깊게 남았다. 이런 전략은 단기적인 화제성은 유지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음악적 성장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서사와 새로운 방향성을 구축할 시점이었음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 같다. 명확한 콘셉트와 서사적 일관성이 없는 채 반복된 구조만 남은 이번 앨범은 인상적인 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광글 : 가스펠, 재즈, 네오 소울의 전통 위에 현대적인 R&B를 입힌 사운드는 여전히 강렬하다. 여기에 어린 시절 종교적인 이유로 다퉜던 아버지와의 화해라는 개인적인 서사를 신과의 관계에 대입시킨 이야기는 몽환적인 피처링을 통해 더욱 깊게 다가온다. 대표적으로 ‘Rain Down (Feat. Sampha)’와 ‘Moon (Feat. Bon Iver)’에서는 가스펠 코러스와 사이키델릭한 질감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영적인 바이브를 완성하는데 이는 마치 신에게 건네는 고해성사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보컬 레이어링으로 만들어내는 깊은 공간감과 함께 하는 미니멀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는 Daniel Caesar만의 고요하면서도 포근한 감각을 온전히 느끼게 만든다.
The Weeknd의 [Hurry Up Tomorrow]처럼 종교적 메시지를 매개로 인간의 불안과 구원을 그려내는 흐름 속에서, Daniel Caesar의 이번 작업은 Frank Ocean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다만 Frank Ocean이 ‘Godspeed’에서 올라갈 수 없는 산을 역설적으로 비유하며 영속적인 신의 사랑을 현실적인 언어로 표현해 초월적인 메시지를 완성했다면, Daniel Caesar의 ‘Have a Baby (With Me)’는 신앙적인 메세지를 적극적으로 내세운 콘셉트와 다르게 조금 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른 이야기가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신앙과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확장적인 시도 자체는 분명 유의미하다. 이러한 확장적인 시도와 함께 특유의 따뜻한 사운드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폭넓은 마음을 전하려 했던 Daniel Caesar만의 진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iforyoursanity : 플로렌스 웰치(보컬, 이하 웰치)는 트라우마를 예술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오곤 했다. 우선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트라우마는 2집의 ‘What The Water Gave Me’나 3집의 ‘Ship To Wreck’ 등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임신으로 인한 트라우마다. 3년 전 ‘King’이라는 곡을 통해 '가정이 아닌 예술을 택하겠다'고 선언했던 그녀에게, 이번 임신은 정체성을 뒤흔드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작심의 도전은 자궁 외 임신이라는 깊은 트라우마로 돌아왔고, 그녀는 또 한 번 트라우마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우선 타이틀 ‘Everybody Scream’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위로 울려 퍼지는 성가풍의 보컬, 혼란이 담긴 부르짖음은 트라우마의 혼돈을 표출한다. ‘Kraken’에서는 곡 내에서의 극적인 사운드 전환을 통해 수술 이후 몸이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The Old Religion’에서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급박한 드럼 사운드를 통해 육체의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을 노래한다. 이렇듯 웰치는 트라우마라는 가장 깊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솔직하다. 그리고 솔직함은 아티스트의 고유함을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용뿐 아니라 표현에서 있어서도 웰치는 고유의 색을 드러낸다. 핵심은 오컬트다. 앨범 커버의 고딕한 분위기, 뮤직비디오 속 촛불만 켜진 방에서의 기괴한 연출 등은 오컬트를 구현하고 있다. 웰치가 이러한 상징을 주요 표현 방식으로 삼은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내향적인 성격 탓에 현실보다는 환상에 더 큰 친밀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궁 외 임신이라는 위기 속에서 비과학적 치유 방식에 의지하면서 오컬트는 그녀에게 더욱 깊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렇듯 웰치는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서사가 탄탄한 근거를 지닌다. 결국 웰치의 예술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고유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술가가 고유성을 지닌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유성을 어떻게 표현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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