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c, 선미, 자우림, Danny Brown, Hatchie 외
Noey : 설명 없이 놓인 음악은 때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아침놀] 역시 그런 부류다. SNS에서는 크레딧 외의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고, 앨범의 소개글조차 없지만, khc는 이 비어 있는 자리를 사운드만으로 가득 채우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듯하다. 이전 앨범들이 전자음을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어쿠스틱한 질감을 더해 제목처럼 은근한 온기를 만들어냈다.
오프닝 트랙 ‘산’은 글리치 계열의 전자음이 리듬을 이끌고, 중고역이 과하게 번지지 않아 볼륨을 올려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 같은 사운드 덕분에 '산'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포근함이나 안정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우희준이 참여한 ‘우리는 항상 거추장스러운 꿈을 꾸고’는 드보르자크의 ‘Humoresque’ 멜로디를 활용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다가도, 곡 중반부에 잘게 쪼개진 글리치가 터지며 극적인 변화를 만든다. 앨범 전체를 놓고 봐도 손꼽을 만한 부분이다. 마지막 트랙 ‘아침놀’에서는 노이즈와 어쿠스틱 기타, 현악기, 목관악기가 자연스럽게 섞이며 매듭을 짓는다. 보컬은 속삭이는 톤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악기와 전자음은 언제 나섰다가 언제 빠져야 하는지 정확하게 움직인다. 전체적인 밀도와 여백이 잘 맞물리는 흐름은 ‘오후’, ‘틈’, ‘캄캄한 곳에서’ 같은 중간부에서도 똑같이 엿볼 수 있다. 잠시 느슨해졌다가도 필요한 순간 노이즈가 터지며 흐름을 다시 조여주는 식으로, 앨범의 러닝타임을 피로하지 않게 끌고 간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공중도둑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만큼 공중도둑이 만들어놓은 문법이 너무 뚜렷하다 보니, 같은 계열의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비교는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억지로 새로운 방향을 크게 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자리 잡은 문법 안에서 무엇을 덜고 더할지, 그 균형을 자기 방식으로 만드는 쪽이 더 중요하다. 이번 앨범에서 khc는 글리치 노이즈와 잘린 샘플들 같은 전자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리듬을 만들고, 그 위에 기타, 현악기, 목관악기 등의 다양한 악기들을 레이어링 해 가장 디지털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아날로그스러운 느낌을 완성해 냈다. 특히 목관악기나 현악기처럼 비슷한 장르에서 흔히 듣기 어려운 악기를 전면에 올린 점은 앨범의 질감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렇게 보면 [아침놀]은 큰 혁신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필요한 만큼의 변화를 얹어 자기식으로 다듬어낸 앨범이다. 그리고 이 작은 변화가 차곡차곡 쌓인다면 결국 씬은 지금보다 훨씬 넓고 다양함을 갖게 되지 않을까.
제트 :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의 높은 유기성은 일명 '선미팝'의 핵심이다. 시계 소리 위 날 선 호흡과 맨발의 ‘24시간이 모자라’, 시티팝 신스와 보라색 키 컬러의 ‘보랏빛 밤’, 앙칼진 멜로디와 꼬리를 형상화한 군무의 ‘꼬리’까지, 선미는 음악과 이미지를 촘촘한 공감각적 경험으로 제시해 왔다. ‘CYNICAL’ 역시 냉소적인 톤과 짧게 찍어 내리는 비트, 뒤를 계속 맴도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귀신'이라는 콘셉트를 더해 "Why So Cynical?"이라는 주제를 충실히 표현했다. 앨범 단위에서도 ‘CYNICAL’ 뮤직비디오의 감정선은 확대되어 이어졌다. 전반부는 허망한 죽음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튠을 잔뜩 건 일렉트로닉 곡 ‘MAID’를 앞세워 강렬하게 드러냈으며, 중반부에서는 재치 있는 리듬의 ‘미니스커트’, 산뜻한 질감의 ‘Happy af’ 등으로 이승을 떠돌며 쌓는 즐거움을 그려냈다.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는 깨끗하고 잔잔한 악기 사운드의 사운드의 ‘새벽산책’, ‘긴긴밤’을 통해 서정적으로 마무리하며, "삶은 시니컬함보다 웃음으로 길게 남는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저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게 도왔다. 이처럼 세 개의 굵직한 흐름은 앨범의 이야기를 시청각적으로 형상화하며, 감정적 입체감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번뜩이는 개성과 드라마틱한 서사에 비해 사운드의 작법은 지나치게 안전했다. 타이틀의 경우 레트로 하우스의 전형적인 비트와 반복되는 신스 구조, 단조로운 음과 단어의 반복으로 채워버린 코러스로, '선미'라는 캐릭터를 제외한다면 어떤 차별점과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을 남겼다. 변형 없는 피치와 멜로디도 아이코닉한 장점인 중저음 톤을 밋밋하게 깔아버리며, 보컬의 개성과 곡의 밀도 모두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뚜뚜’ 역시 레트로 사운드가 가볍게만 스쳐 가고, ‘Bath’ 또한 무난한 구성에 특별한 포인트 없이 고요히 흘러가 버리며 옅은 깊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HEART MAID]는 선미가 그동안 구축해 온 감각적인 콘셉추얼함과 높은 제작 참여도 등 잘해온 방식을 유지한 앨범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 자체는 퍼포먼스에 크게 기대며, 그 이상의 확장성과 자립성을 만들지 못하고 평면적인 무대 장치에 머물 뿐이다. 어느덧 13년 차 솔로 아티스트이자 12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정규 1집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과감한 음악적 변주나 독창성의 부재는 너무나 큰 아쉬움이 아닌가.
TEN : 자우림의 앨범 [LIFE!]는 듣자마자 "이번엔 감정을 정면으로 밀어붙이는구나" 싶은 작품이다. 전작 [영원한 사랑]이 삶과 죽음, 희망과 불안 같은 복잡한 상황들을 부드럽게 엮어냈다면, [LIFE!]는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생기는 분노와 답답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김윤아는 이번 앨범이 "내면의 전쟁"을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했는데, 스스로를 옥죄는 상황에 대한 저항과 분노 그리고 간절함, 허망, 사랑과 같은 감정들이 트랙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며 앨범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격렬한 감정들은 앨범 곳곳의 록 사운드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날카로운 기타가 몰아치는 얼터너티브 록 ‘뱀파이어 VAMPIRE’는 김윤아의 강한 보컬이 더해져 거친 분위기와 판타지적인 이미지가 동시에 살아난다. 중간 트랙 ‘스타스 STARS’는 부드러운 멜로디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해 주며 다음 곡의 강렬함을 부담 없이 받아들이도록 흐름을 잡는다. 숨을 고르자마자 "화끈하게 죽자!"라고 외치는 ‘렛잇다이 LET IT DIE’와 ‘유겐트 JUGEND’의 날카로운 언어가 만들어내는 불편한 정서와 단단한 드럼 리듬이 겹치며 앨범에서 가장 무거운 바이브가 형성된다. 이 무거운 흐름을 ‘아테나 ATHENA’가 크게 바꿔 놓는다. 관악기로 시작하는 힘찬 인트로와 익숙한 자우림식 멜로디가 무거운 기운을 한 순간에 반전시키며 "암울한 분위기와 세상에 지지 않고 결국 우리는 이길 것"이라는 희망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격렬했던 록 사운드 뒤, 마지막 트랙 ‘콜타르 하트 COALTAR HEART’는 앞선 곡들에서 폭발했던 열기를 천천히 식히며 앨범을 닫는다. 약 6분에 달하는 긴 호흡은 감정을 급하게 끊어내지 않고 차분하게 정돈해 주는 역할을 한다.
리스너의 마음을 차분하게 어루만지는 28년 차 밴드 자우림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동안 자우림은 냉소와 유머, 절제된 표현, 따뜻한 연대 등 여러 방식으로 앨범을 표현해 왔지만, 이번 앨범 [LIFE!]에서만큼은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거야"라며 삶의 고단함을 있는 그대로 토해낸다. 김윤아가 번아웃 상태에서 "인생아, 나한테 왜 이래?"라고 되묻는 심정으로 ‘라이프! LIFE!’를 썼다고 언급했듯, 록 밴드 특유의 저항 정신은 세월과 만나 이제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매일을 버텨내는 우리 모두의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투쟁'으로 변환된다. 그래서 [LIFE!]는 격정적인 감정의 파동을 노련하게 갈무리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함을 껴안는 앨범으로 남는다. 이는 28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우리 삶의 가장 치열한 순간들을 함께 호흡하고 노래해 온 밴드, 자우림 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다. 그래서 자우림은 옛날 밴드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랑 같이 부딪히고 버티고 다시 일어서는, '현재진행형'의 밴드가 아닐까.
TEN : 대니 브라운의 [Stardust]는 리스너가 단조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다양한 전자 사운드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앨범이다. 얼핏 들으면 자극이 과하게 느껴질 만큼 변화가 많지만, 그 속에는 그가 지난 십여 년간 구축해 온 '익스페리멘탈 힙합'의 뼈대가 여전히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실험이 향하는 방향성이다. 비정형적인 리듬, 갑작스러운 전환, 날카롭게 쪼개지는 보컬 톤 같은 기존의 실험적 요소들이 하이퍼팝, 글리치 노이즈, 칩튠 기반의 사운드와 EDM, 버블검 베이스 같은 현대적 전자 음악과 맞물리며 새로운 형태로 확장된다. 처음 들을 때는 낯설어서 당황스럽다가도, 곧 이러한 충돌이 만들어내는 힘 때문에 오히려 앨범의 매력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자극이 지나치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짧은 호흡으로 이어지며 "이런 조합도 가능하구나" 하는 놀라움이 계속된다.
트랙 단위로 파고들면 이런 실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Copycats’는 촘촘한 리듬 구조 위로 대니 브라운 특유의 랩 톤이 파고들며 곡의 리듬감을 또렷하게 만든다. Quadeca가 프로듀싱한 ‘What You See’는 넓은 공간감을 확보한 사운드 덕분에 보컬이 안정적으로 자리하고, 그의 거친 목소리가 사운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앨범에서 가장 정리된 인상을 남긴다. 앨범의 가장 공격적인 트랙인 ‘1999’는 이와 대조적이다. 초입부터 날카로운 전자음과 왜곡된 보컬이 몰아치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지만, 지나치게 전면으로 돌출된 비트가 랩을 뒤로 밀어내며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랩이 비트에 압도되는 이 순간이야말로 지금의 그가 어떤 사운드를 실험하고 싶은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1999’는 그 방향성이 가장 끝까지 밀어붙여진 트랙으로, 도입부의 오래된 게임 BGM 같은 칩튠 멜로디가 짧게 등장한 뒤, 곧바로 드럼과 베이스 위로 깨지는 글리치 노이즈가 겹겹이 쌓이며 귀를 확 잡아챈다. 뒤로 갈수록 비트는 점점 두꺼워지고, 후반부에서는 노이즈와 효과음이 랩 사이를 잘라먹듯 튀어나와 보컬을 잠식하는 순간까지 나온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비트에 랩이 잡아먹혀 완전히 균형 잡혔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런 과감한 전자음 사용 덕분에 '지금 대니 브라운이 어떤 현대적 전자 사운드를 실험하고 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은 아티스트가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아직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실험적 욕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특히 반갑다.
Noey :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던 건 '이 앨범이 과거 드림 팝 밴드들을 얼마나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가'였다. 사운드는 Cocteau Twins의 [Heaven or Las Vegas]나 Lush, The Sundays가 그려냈던 기타 중심의 사운드를 토대 삼아 전형적인 90년대식 드림 팝의 질감을 따라가는데, 특히 '드림 팝'이라는 말에서 '팝'보다는 '드림'에 더 치우친 선택이 눈에 띄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선 보컬, 리버브에 잠긴 기타 레이어와 흐릿한 코드 진행이 전면에 놓인 덕분에 앨범 전체의 사운드스케이프는 몽환적으로 완성됐지만, 전작에서 느껴졌던 임팩트는 확실히 줄었다.
그렇다고 전작이 드림 팝의 틀에서 벗어나 있었던 건 아니다. [Giving The World Away] 역시 드림 팝, 슈게이즈의 계열 안에 있었다만, 그 속에 배기하고 댄서블한 요소를 끌어오면서 몽환적인 결을 얼터너티브 댄스식의 캐치함으로 확장했다. 보컬도 선명했고, 비트와 신스 라인이 훨씬 또렷해 Hatchie(이하 해치)가 어떤 식으로 팝적인 지점을 넓혀가고 싶은지가 드러났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은 더욱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드림 팝과 슈게이즈가 90년대 이후로 큰 변화가 없던 장르이기 때문에 결국 아티스트가 그 안에서 어떤 방향을 잡는지가 더 중요해지는데, [Liquorice] 속 대부분의 트랙들은 그저 과거의 정서를 성실하게 복원할 뿐이다. 사운드는 깔끔하게 완성됐지만 그 너머를 밀고 나갈 힘은 비어 있고, 결국 앨범을 다 듣고 나도 해치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제트 : 마치 아름답고 경건한 한 편의 교향곡 같다. '세속'과 '초월' 사이 여성적 서사를 중심으로 한 '상실-정체성-사랑-자유'라는 메시지는 역사 속에서 주목받지 못한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육체를 넘어 '해방'이라는 정신적 고양의 과정을 안내한다. 그 위에 얹히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생동적인 연주와 오페라 발성과 읊조림을 넘나드는 보컬은, 대성당 어딘가 은밀하고도 숭고한 순간을 그려내는 듯하다. 무려 15개의 트랙은 앨범 내내 클래식 기조를 유지하는데, 시대와 장르, 문화의 경계를 입체적으로 관통하며 하나의 방향성을 유기적으로 풀어낸다. 14개 언어의 가사에서 들리는 다양한 발음, 오케스트라 특유의 섬세한 악기 배치와 웅장한 스케일은 사운드적 충만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고음역으로 빠르게 몰아치고 마이크 타이슨의 폭언이 반복되는 아웃트로의 ‘Berghain’ 뒤 통통 튀는 왈츠로 소강하는 ‘La Perla’처럼 극적인 전개는, 한 곡 안에서도 이어진다. ‘Divinize’에서는 성스러운 멜로디에서 시작하여 천둥처럼 파고드는 비트가 등장하고, 라틴 리듬이 융화되며 다층적인 흐름을 끌어낸다. ‘La Yugular‘ 역시 옅게 깔린 스트링과 코러스가 서서히 분위기를 형성하고, 극대화된 악기 사운드가 짧게 치고 빠지며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이후 합창단의 하모니로 고조된 정점은 나레이션으로 마무리되며 의미심장하고도 깊은 여운을 만들어낸다.
사운드, 주제, 비주얼, 퍼포먼스가 모두 빛과 신, 즉 'LUX'라는 명확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점에서 오는 쾌감은 앨범의 완성도를 더욱 빛낸다. 성악과 관현악단, 가사 전반에 녹아든 수많은 여성 성인과 고전에 더해지는 수녀복 안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커버 이미지는 직관적으로 '신앙'과 '영성'에 관한 이야기임을 인지시키는 동시에, 상징적인 기반을 정립한다. 이에 두 시간 동안 핀 조명이 떨어지는 흰 천 위에 가만히 누워있던 퍼포먼스와 십자가 형태의 바이닐 속지 디자인까지 맞물리며, '빛'과 '신'을 시각적으로도 구현해 낸 정교한 완성체가 만들어졌다. 사실 러닝타임 전체를 하나의 장르로 일관화하고, 종교적 그림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모험이다. 자칫하면 과해지거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내용물보다는 껍데기에 잡아먹힐 수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리스너를 납득시키고 몰입의 주도권을 가져간 것은 진지하고 일관된 태도를 바탕으로 한 집요한 완결성과 미학적 균형이었다. 결국 [LUX]는 음악적으로도, 표현적으로도 로살리아의 날카로운 설계력과 자기 확신을 증명한 작품이다.
※ 'Noey', '제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