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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에 대한 XLOV의 답

XLOV – [UXLXVE]

by 고멘트

우리를 나누는 데엔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 성별, 지역, 나이 등 수많은 기준들은 쪼개고 쪼개져 ‘나’라는 인간을 규정한다. 특히 K-POP에서 이러한 구분은 더욱 명확하다. 남자 아이돌은 남성이라 규정된 정체성을 강조해야 하며, 여자 아이돌 또한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함으로써 소비된다. 이러한 성별의 스테레오타입을 극대화하며 K-POP의 팬덤 문화는 형성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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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OV 엑스러브 1st MINI ALBUM [UXLXVE] Rizz / Biii:-P CONCEPT PHOTO

이러한 관점에서 XLOV가 가고 있는 길을 바라보면 분명한 의문이 든다. 그들은 남자 아이돌에게 기대되는 특정한 제스처나 스타일링, 즉 ‘남성적’이라는 규범적인 태도를 의도적으로 비틀고 어긋나게 만든다. 바로 그 빈틈에서 이들의 정체성은 시작되며 이를 ‘젠더리스’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다만 단순히 반대되는 성별의 옷을 입는 것이 젠더리스가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XLOV가 정의하는 젠더리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구분하는 이 모든 기준들은 정말 유효한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온 고정관념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진짜로 원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려는 XLOV의 의도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1. What is Gender?


XLOV가 내린 ‘나’에 대한 정의는 성별을 규정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떠한 기준도 없이 지금 당장 거울을 봤을 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오늘은 넥타이를 매고, 내일은 드레스를 입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젠더리스의 본질은 ‘아름다움’에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아답다(我답다)로 ‘나다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의 나에게 솔직함으로써 아름다움(나답다)를 보여주며 여기서 성별은 더 이상 본질적인 구분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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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ggy Stardust / Thin White Duke

XLOV의 이러한 태도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마치 데이비드 보위가 ‘지기 스타더스트’나 ‘씬 화이트 듀크’와 같은 페르소나를 통해 자신을 해체하고 조립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보위가 시대마다 다른 인격을 입고 새로운 자아를 보여줬듯이 XLOV 또한 자신들을 고정된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정체성을 페르소나를 통해 보여주려 한다.


XLOV 엑스러브 1st MINI [UXLXVE] HIGHLIGHT MEDLEY

이러한 실험의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13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메들리다. 각 트랙의 일부를 들려주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멤버들의 인터뷰 안에서 음악이 부분적으로 가미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순수하고 유약한 사람의 내면을 뜻하는 O와 이러한 내면을 지키기 위한 차갑고 공격적인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N의 인물을 대조시켜 ‘나’라는 존재를 두 명의 페르소나로 분리해 나타낸다. 이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드러내며 N과 O 사이 어딘가에는 멤버들 본연의 모습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XLOV는 이를 통해 N과 O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다양한 나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각 멤버들의 캐릭터는 이를 더욱 구체화시킨다. 방어기제로 인해 까칠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N과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순수한 내면을 가진 O는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N이 보여주는 차가운 방어기제 또한 여린 O를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사랑의 방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둘 중 하나로 구분해 정체성을 정립했던 기존의 형식을 넘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이 모든 얼굴이 결국 ‘나’라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2. NO is N AND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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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OV 엑스러브 1st MINI [UXLXVE] ALBUM LOGO

가시 달린 하트 형태의 N 버전 앨범 로고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감정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시를 공존시켜 겉으로 드러나는 강인함(혹은 방어기제)와 솔직한 속마음을 함께 나타낸다. 반대로 O 버전의 로고는 X-RAY의 형태로 하트를 표현한다. 몸 안을 깊숙이 볼 수 있는 X-RAY를 통해 외부의 장식을 제거했을 때 보이는 진짜 나를 나타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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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jpg [XLOV] / [UNLOVE] LOGO

여기서 XLOV의 워드플레이 또한 더욱 선명해진다. ‘XLOV’라는 이름은 LOVE에서 E가 빠진 미완성의 상태이자 X라는 변수와 결합해 언제든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감정의 여지를 남긴다. 그들이 젠더리스로 성별을 규정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 또한 미리 규정하지 않고 언제나 미완성인 현재진행형의 감정으로 남겨둔다. 앨범명 [UXLXVE] 또한 ‘UNLOVE’의 N과 O를 X로 치환해 그들의 메시지를 확장한다. 부정을 의미하는 ‘NO’를 X라는 기호로 대체한 결과는 음수와 음수가 곱해지면 양수가 되는 것처럼 부정과 부정이 곱해져 새로운 긍정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내포한다.


따라서 XLOV가 말하는 NO는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공격적인 N도, 순수한 O도 모두 ‘나’의 일부라는 의미에 가깝다. 따라서 부정의 감정은 억눌리고 숨겨야 할 감정이 아니라 표현될 수 있는 감정임을 말한다. XLOV는 이러한 감정의 스펙트럼 전체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행위가 나라는 존재를 완성하는데 중요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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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OV 엑스러브 1st MINI ALBUM [UXLXVE] Rizz / Biii:-P CONCEPT PHOTO

비주얼 역시 충돌하는 자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다양한 ‘나’를 보여준다. 메인 콘셉트 N과 서브 콘셉트 O는 각각 올블랙과 올화이트, 그리고 인더스트리얼, 메탈 VS 갸루, 고딕 펑크의 바이브로 대비된다. 이러한 상반된 무드와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스타일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누구인가?’ XLOV는 그 답을 이분법의 어느 한 쪽이 아니라 나란히 존재하는 ‘공존’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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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OV 엑스러브 1st MINI ALBUM [UXLXVE] Rizz CONCEPT PHOTO

N 버전의 콘셉트 포토는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또렷하게 전달한다. 극장의 커튼을 배경으로 한 ‘LIVE IN CINEMASCOPE / ARGENTO PRESENT – PROFONDO ROSSO’라고 적혀 있는 영화 포스터 문구는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PROFONDO ROSSO는 DEEP RED라는 뜻으로, 동명의 영화는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만드는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지 않았던 진실을 찾아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영화의 스토리처럼 그들의 여정 또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과 닮아 있다. 엘리베이터를 배경으로 한 사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차가운 메탈릭한 무드 안에서 닫히는 문을 억지로 열려고 시도하는 행동은 정해진 길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관습과 규범을 깨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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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OV 엑스러브 1st MINI ALBUM [UXLXVE] Biii:-P CONCEPT PHOTO

O 버전은 감춰둔 내면을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CCTV와 거울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의미하는 오브제이며 그래피티와 갸루 스타일링의 다양한 색채는 N 버전의 어둡고 차가운 톤과 대비되어 자신을 자유롭게 색칠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은유한다. 마지막으로 블랙 기반의 고딕 펑크 스타일링은 사회의 규범을 의도적으로 비트는 그들의 반항적인 무드를 표현한다.


두 버전은 모두 다른 톤과 무드를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모인다. 닫히는 문을 열어 젖히는 행위도, 내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태도도 모두 ‘나’라는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젠더리스라는 스타일링 또한 단순히 패션을 보여주는 것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다양함들이 공존하는 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자아가 충돌하는 XLOV의 세계는 그렇게 여러 얼굴이 함께 존재하는 공존의 형태로 구성되며,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3. I want to be myself


그룹의 리더이자 프로듀서인 우무티는 최근 해외 공연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자유의 순간을 만끽함과 동시에 따라오는 사회적 시선과 압박감을 함께 경험해온 것이다. 이런 감정은 그들의 음악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앞서 설명한 N 버전과 맞닿아 있는 메인 타이틀 ‘Rizz’는 808 트랩 베이스 위에 R&B 요소를 얹은 트랙으로 긴장감 있는 사랑의 관계에서 상대를 유혹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혹의 근원이 단순한 욕망이나 기술적인 접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비롯되는 매혹이라는 점이다. ‘Rizz’라는 슬랭이 제목으로 쓰인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Rizz’는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분위기나 매력을 뜻하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뜻하는 단어인 만큼 ‘매혹적인 나’의 모습은 외부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알고 받아들일 때 드러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표면적인 사랑의 서사 이면에 XLOV가 계속 이야기해 온 ‘나다움’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반면 O 버전과 연결되는 ‘BiiI:-P’는 8비트와 하이퍼 팝 요소가 결합된 곡으로 솔직한 나를 싫어하는 헤이터들에게 던지는 디스에 가깝다. 이와 더불어 메롱 이모티콘을 활용한 제목과 가사는 갸루 콘셉트와 합쳐져 자신들의 메시지와 기성 세대의 기준을 거부하는 서브 컬쳐의 특성을 적절하게 결합한다. 결국 두 곡이 서로 다른 감정을 다루고 있음에도 모두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자신감’인 진짜 ‘리즈(Rizz)’의 뜻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MV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문구인 'Don’t cross the line'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엔 단순히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이지만, 이는 무엇도 영원히 규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선에 비유해 나타내는 것이다.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선은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다. 멤버들은 선 위에 있다가도 다시 넘어가며 결국 선의 경계 자체를 흐리게 한다. 따라서 이 문구는 단순한 경고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의식적으로 들춰내는 장치처럼 작동된다. 선(규범)을 보여준 뒤 그 선을 스스로 해체하고 벗어나는 장면들을 통해 어디에도 갇히지 않겠다 라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XLOV 엑스러브 1st MINI ALBUM [UXLXVE] 'Rizz' MV

이러한 의미를 비추어 볼 때 XLOV의 메이크업, 스타일링, 퍼포먼스의 모든 선택은 ‘나다움’에서 출발하며 지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반대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도 비교도 하지 않으며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트월킹도, 제스처도 사회가 정의한 여성성을 연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MV는 규정을 은유하는 선을 넘나 드는 행동들을 통해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번 드러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 짓고 자신의 반대를 인정하지 않는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구획에 지친 해외의 Z세대를 중심으로 ‘성별’이 아닌 ‘정체성’ 자체로 자신을 나타내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She, He 대신 They, Them으로 불리길 원하는 그들에게 XLOV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공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았던 XLOV가 유일하게 정의한 것은 N과 O로 나뉜 페르소나 속 끊임없이 변화하는 스펙트럼이 ‘나’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XLOV의 답은 어느 편에도 선명히 속하지 못하고 ‘Who am I’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간절한 응원이 될 것이다.


by. 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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