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ZY, 배현이, 헤이즈, detahjae, Jae Stephens 외
iforyoursanity : 타이틀 곡 ‘TUNNEL VISION’은 음악이 세련되고 감각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와닿는 게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Ya ah ya'를 읊조리는 코러스는 미니멀하게 비워냄으로 인해 트렌디하고 감각적이었지만, 이것이 곡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을뿐더러, 단어의 어감이나 멜로디가 귀에 남지 못한다는 점이 대중성의 부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걸크러시' 브랜딩 하에서 경쟁 구도에 있는 에스파 ‘Armageddon’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타이틀 곡이었다. ‘Armageddon’의 코러스는 같은 걸크러시, 미니멀함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성을 잡아냈다. "I'ma get it done" 같이 곡 명을 활용한 가사, 절제된 사운드 속에서도 귀에 남는 멜로디로 중독성 있는 코러스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에스파의 곡이 세련되고 감각적이면서도 대중성까지 잡아내며 흥행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번 있지 타이틀의 아쉬운 원인인 대중성의 부족이 더욱 도드라지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수록곡 기획은 좋았다. 앨범 전반적인 어두운 기조를 표현하는 첫 번째 트랙은 인더스트리얼 음악 장르를 통해 그 표현을 명확히 하며 시작했다. 타이틀 곡인 ‘TUNNEL VISION’ 까지는 이러한 기조가 이어지나,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DYT’의 신스팝, ‘Flicker’의 UK 개러지, ‘Nocturne’의 알앤비, ‘8-BIT HEART’에서는 하이퍼팝 등을 차용하며 가볍고, 밝은 분위기 또한 가미시킨다. 이러한 기획은 마냥 걸크러쉬하고 어두운 면만의 ITZY를 보이는 것이 아닌, 데뷔 초 ‘달라달라’, ‘WANNABE’, ‘Not Shy’ 등 발랄한 소녀의 모습을 담아 흥행을 끌었던 시기의 모습들을 통해 기존 대중에게 익숙한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획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수록곡 기획을 바탕으로 앞선 아쉬움을 토로했던 타이틀 곡에 대해 재고해 보면, ‘DYT’ 트랙이 거친 전자음을 통해 ITZY가 포지셔닝하고 있는 걸크러쉬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에 더해, 힘 있는 보컬 창법으로 데뷔 초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귀에 남는 훅으로 대중성까지 모두 담아냈다는 점에서 ‘TUNNER VISION’이 아닌 ‘DYT’가 타이틀이 되었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앨범이었다.
엉얼 :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곳에 배현이의 손길이 닿은 신보 [I am a horse]는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듯한 느낌이 아닌, 직접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어낸 핸드메이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트랙에 깔려 있는 노이즈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전에 발매했던 [히비스커스!], [FONK], [자유주제] 등 여러 작품에서도 느껴지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다른 포인트는 타이틀곡 ‘농’에서 느껴지는데, 곡 후반부에 음정과 피치를 맞추지 않고 흘러가는 점은 핸드메이드란 느낌을 더욱 떠오르게 만든다.
프로듀싱 또한 눈여겨볼 점이 여럿 존재한다. 첫 곡 ‘몸통’은 초반에 TTS 나레이션으로 시작해 드럼과 스트링 사운드로 초반을 구성하고, 이후에는 전자음과 노이즈 사운드가 빈틈없이 채워지며 흘러간다. 단단한 랩과는 다르게 대비되는 작법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유는 따로 박자를 세어주는 스네어가 없는 점과 마지막에 갑자기 뚝 하고 끝나는 점이 그 이유이다. 이어진 ‘국도’는 드럼과 브라스, 신스를 사용해 올드스쿨 느낌으로 진행하며 후킹한 느낌을 주었고, ‘농’에서는 전자음악 요소를 가져와서 점점 왜곡된 사운드로 흘러가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밝아지는 느낌을 담았으며 ‘정원’은 바이올린과 일렉 기타를 쪼개서 만든 독특한 루프가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와 좋은 합을 이루었다. 이어지는 마지막 트랙인 OUT-IN-TRO는 보코더를 활용해 인터뷰 형식으로 마무리하는데, 이는 다양한 사운드로 프로듀싱한 배현이의 개성과 창의적인 시도가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Tyler, the Creator, 2hollis처럼 여러 장르의 사운드와 감성을 섞은 음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또한 음악 장르를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현재 음악 시장에서, 배현이의 프로듀싱은 여러 요소를 트렌드에 맞는 흐름을 가져가 앨범에 성공적으로 녹아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배현이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배현이와 옥빛마을 - [덕지]에서도 같은 결을 띄고 있다. 이번 신작에서 랩과 보컬을 적재적소로 활용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모습이 마치 들판에 풀어놓은 말처럼 자유로워 보인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구경거리가 천천히 눈에 들어오듯이 [I am a hose]도 여유롭고 느긋한 흐름 속에서 천천히 음미하면 더 좋게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Noey : 쉽게 말해 '익숙한 헤이즈'의 연장선이다. ‘젠가’, ‘비도 오고 그래서’, ‘헤픈 우연’으로 굳힌 미니멀 R&B 편곡, 곳곳에 스치듯 등장하는 재즈 보이싱, 담담하고도 시린 보컬 톤, 멜랑콜리한 분위기까지. [LOVE VIRUS Pt.1]은 이 같은 공식을 그대로 가져온다. 문제는 이 익숙함이 안정이라기보단 정체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타이틀곡 ‘Love Virus’는 헤이즈가 잘하는 결 안에서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곡 자체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임팩트가 약하다. 이어지는 ‘새벽 택시’, ‘너 때문에 난’, ‘어때 보여’ 같은 트랙들 역시 비슷하게 흘러간다. 다이나믹이나 질감의 확장보다는 반복적인 진행 위에 안정적인 멜로디 라인이 얹히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집중할 뿐이다. 결국 모든 트랙들이 지금까지 헤이즈가 보여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듣기 편하다는 이상의 힘을 갖지는 않는다.
헤이즈에게 '감성'은 한때 완벽한 히트 공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공식이 오히려 족쇄처럼 느껴진다. 꾸준한 수요 너머 새로운 결과물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대중에게 남는 건 기시감이다. 이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아티스트라면 한 번쯤 겪는 자기 복제와 변화 사이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헤이즈가 택한 방향은 새로운 시도나 확장이 아닌 '예전으로 되돌아가기'였다. 그래서 이번 선택은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헤이즈에게 필요한 건 예전에 통했던 감성이 다시 반복되는 모습이 아니라, 그 감성을 가지고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였기 때문이다. 전성기만큼의 차트 파워가 유지되지 않는 지금, 익숙함에 머무르는 전략은 버티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앞으로를 설득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다음에 이어질 Pt.2가 있다면, 그때는 이번에 되짚은 감성이 어디로 향하려는 것인지가 조금은 드러나야 한다.
Noey : 최근 힙합 씬에서는 젊은 세대의 아티스트들이 두드러지게 등장하고 있다. Tyler, The Creator(이하 타일러)가 Pharrell Williams를 보고 자라 그 스타일을 자기식으로 만들었듯, 이제는 2010년대 초 타일러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이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에선 RM, 해외에선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Rimera, Garret Sparrow 같은 이름들이 그 흐름을 보여준다. Detahjae(이하 디타제)도 마찬가지다. 데뷔 앨범이었던 전작 [Lone, Borealis] 속 네오 소울 기반의 프로덕션부터 두꺼운 신스, 시시각각 변화하는 드럼 패턴, 일부러 어수선하게 보이는 사운드 레이어링과 세계관을 전제로 한 콘셉트 구성, 그리고 그 조합이 만드는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이 같은 여러 요소들이 타일러가 구축해 온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이번 앨범은 그런 전작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넘어 하드코어 힙합과 신스 펑크로 틀을 확장하며 변화를 시도한 듯하다. 특히 ‘YOU READY?!’, ‘TEST?!’ 같은 트랙에서는 DnB나 전자음 요소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이 돋보인다. 거의 모든 트랙의 전개가 단순하지 않은데, 악기 구성, 템포, 보컬 톤까지 계속 변화하며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톤으로 흘러간다. 반복 대신 변화에 힘이 실린 실험적인 구성이다. 다만 이러한 접근에도 여전히 타일러의 향은 짙게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코드진행, ‘BLOW?!’에서 들리는 거칠게 디스토션된 리드 신스나 뒤에서 받쳐주는 패드, 중저역이 두툼하고 약간 뭉개진 듯한 킥·스네어 톤, ‘FACE’의 랩과 멜로디의 경계를 흐리는 보컬 처리 방식, ‘SHADES’ 속 코러스와 브릿지에 채워지는 네오 소울식 구성, 그리고 오프닝 ‘FLARE’의 챈트 방식 등 여러 지점에서 익숙함이 먼저 들린다.
이처럼 지금 단계의 시도들은 이전과 다른 방향일지 몰라도, 완전히 디타제만의 사운드로 분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자음, DnB, 하드코어 힙합까지 영역을 넓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은 타일러가 이미 각 시기별로 활용해 온 문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 하드코어 힙합 기반의 공격적인 전개, [Cherry Bomb]의 거친 록 질감, [Flower Boy]에서 이어진 네오 소울 기반 편곡 등 디테일을 뜯어보면 그 레퍼런스가 너무 또렷하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지점은 있다. 2001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와 아직 두 장뿐인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곡마다 다른 접근방식을 가져온 점까지 고려하면 이러한 변화 속도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결국 지금 중요한 건 그 영향이 계속 남느냐, 아니면 이후 작업에서 방향을 다듬고 덜어내며 자기식으로 정리해 나가느냐다. 그 지점에서 디타제가 어떤 이름으로 자리 잡을지가 드러날 것이다.
iforyoursanity : SELLOUT 시리즈에 추가 곡을 더해 디럭스 형식으로 구성된 앨범. Disc 3(SELLOUT)에서는 ‘Body Favors’의 프로덕션이나, ‘PDA’의 인트로 주법 등에서 넵튠즈 느낌을 차용하여 팝적으로 표현했다면, Disc 2(SELLOUT II)에서는 당시 발매 시기에 맞게 여름 느낌의 밝고 청량한 화성, 사운드 등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디럭스 추가 트랙들은, 그 사이쯤이다. ‘Boyfriend Forever’는 알앤비를 통해 여름밤이 떠오르게 했다면, 이어지는 ‘Him&Him&Him’과 ‘Freakie’, ‘Precious’에서는 댄스 팝 형식을 통해 팝적인 성향을 잘 드러냈다. 이렇듯 댄스팝 적인 성향과 알앤비가 균형 있게 어우러지며 기존에 잘해오던 것을 다시 한번 잘 만들어냈다.
이러한 대중성이 Jae Stephens의 특성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주된 장점인 R&B 보컬로 쉽고 와닿는 보컬 멜로디를 만들어 냄은 물론, 힙합이나 댄스 팝 같은 비트도 R&B와 잘 엮어내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 즉 팝적인 음악을 잘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아티스트라는 정체성 하에서 자신의 색이 요구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같은 R&B 씬 내에서 과거 니요, 크리스 브라운, 어셔 등은 당시 시대 감각을 반영하며 유행하는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흡수해 그 시대의 '팝'을 만들어 왔었다. 이러한 점을 떠올려보면, Jae Stephens 또한 같은 포지션에서 자신의 강점인 팝적인 감각을 기반으로 그들처럼 팝 아티스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느껴진다. 즉, 이번 앨범은 Jae Stephens가 큰 틀에서 R&B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대중성을 담은 방향으로 확장이 가능한 여지를 보여준 앨범이었다.
엉얼 : 24KGoldn의 신작 [Icarus II]는 슬픈 감정과 후회를 담은 앨범이며 이번 앨범에선 무드에 맞는 소울 보컬을 통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이러한 감정선은 첫 트랙 ‘Mess’에서부터 그런 점이 잘 드러나는데, 사실 이런 보컬의 운용은 이전에 발매한 [El Dorado], [Bite], [Clarity], [Growing Pains] 등 점차 보컬의 비중을 두는 트랙들로 빌드업을 했었기에 듣는 데 있어 어색함이 없으면서도, 전보다 깊어진 감정선을 담고 있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앨범의 전체적인 틀은 이모셔널한 색깔을 가졌으며, 팝적인 요소를 가미한 얼터너티브 록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Mess’는 시작부터 강하게 퍼지는 디스토션이 걸린 일렉 기타와 함께 진행되는 보컬이 인상적이라 좋았고, ‘Bullet Holes'도 그런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좋았다. 또한 James Brown - ‘It's A Man's Man's Man's World’를 오마주한 ‘A girl's Dream’에서는 보다 짙은 감정선을 가지며 앨범을 이어 나가고, 마지막 트랙인 ‘Saving Grace’에서는 마무리하는 느낌을 살려 숨소리와 잡음이 섞여 있는 홈 레코딩한 것 같은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로 트랙이 끝나며 내면적으로 단단해지고 감수성이 더욱 깊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멜로디컬 팝랩을 기반으로 24KGoldn만의 감성을 구축했던 ‘GAMES ON YOUR PHONE’을 지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깊은 사랑을 풀어내는 [Icarus II]는 전보다 더 깊은 무드를 만들어내었고 이는 24KGoldn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개인적인 아쉬운 점은 음악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것이 아닌, 시기적인 아쉬움이 느껴진다. 만약 대중들에게 지금과 같은 음악적 변화를 조금 더 빨리 보여주었거나, 아니면 [El Dorado] 이후 기존 히트했던 ‘Mood’, ‘Valentino'와 같은 팝 랩 감성으로 흐름을 이어가다가 한 번에 변화를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컨트리 음악을 고수하다가 [1989]처럼 한 번에 팝 음악으로 넘어간 흐름처럼 말이다. 그랬다면 아마 대중들에게 지금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외에는 호소력 짙은 보컬과 그에 맞는 프로덕션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다른 것도 잘하는 아티스트라는 걸 보여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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