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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 나이 40, 불혹은 흔들려야하는 나이다.

by 걷는사람

한번은 새해를 맞아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경계에 위치한 레이크 타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신년을 좀 조용하게 보내려고 조용한 콘도에 가서 쉬는데 문득 남편이 이제 나이 40이 되었는데 정말 자기가 볼혹의 나이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불혹'이면 흔들리지도 말고 굳건히 자기 분야에서 입지를 굳힐 줄 알았는데 막상 불혹의 나이 40이 되어도 여전히 흔들리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인 거 같지도 않고, 뭔가 마땅히 이뤄낸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불혹', 공자는 군자 나이 40이 되면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자리매김한다고 했다. 그래서 40대가 되는 사람들은 불혹을 화두로 삼으며 내가 정말 유혹에 흔들리지도 않고 스스로 굳건히 자리잡아있는지 뒤돌아보나보다.

* 불혹의 뜻, 자기 확신과 성숙의 시작 :: 브레인해커스

* 불혹 뜻 및 나이 몇 살을 의미하는 걸까요? : 네이버 블로그


먼저, 불혹을 40으로 보는게 과연 타당할까. 우리에게 지금 40이란 나이는 불혹의 대명사로 굳혀져 있지만 그 말은 공자가 살던 2000여년 전에 나온 말이다. 2000여년전,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배우고 춘추전국 시대때 입지하고 제군에게 발탁되기 위해 일찍부터 재능을 개발시켰다. 제자백가, 백개의 학문과 철학이 뒤엉켜 발달했던 것도 사실은 이렇게 어지러운 정세 때문이었다. 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벌써 장가를 들어 일찍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했고, 또한 평균수명은 기껐해야 50이 넘지 않았을 것이다. 18-19세기의 평균수명도 50을 간신히 넘겼다고 하니 2000여년전의 평균수명이야 40 전후였을 것이다. 그러면 공자가 말한 40의 나이는 인생의 황혼 즈음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 뿐인가. 2000년전에는 사회도 거의 분화되어있지 않고, 국가라는 형태의 소규모 군주국의 정권을 쟁취하느냐 마느냐의 투쟁만이 존재하던 때였으니 사회적 유혹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즉 훨씬 자기분야에의 집중도는 높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 또는 자기 전문분야에 뜻을 세운 나이를 15-20세로 보고 그때부터 자기분야의 일에 정진해나갈때 나이 40이란 전문분야를 가진 뒤 20-25년 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게다가 평균수명이 짧으니까 거의 은퇴직전, 혹은 은퇴후를 일컫는 말일 수도 있다. 개중에는 80, 90세까지 산 사람도 있지만 이미 불혹의 나이를 지난 다음엔 지천명하는 나이가 아니던가.


단순한 계산법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면, 공자 시대의 40세, 불혹의 나이란 현대 시대의 50대 후반 내지는 60대 초반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단 현대사회에서는 전문분야로 출발하는 것이 그만큼 늦고, 결혼하여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30세정도부터 출발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20-25년 후면 50세 후반이 된다.

즉 현대사회에서 은퇴 직전, 자기 커리어의 정점인 상태인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이치를 좀 알것 같고, 자기 분야에서 흔들림 없이 자리매김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남편은 물리적 나이로 40이 되었다고 불혹인데도 자기는 여전히 흔들린다며 고뇌한다. 물론 그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불혹이라는 표현이나 옛 성인의 말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순 없다. 사실, 항상 불혹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간인 이상 항상 미약하며 흔들리고, 불완전하고, 때로 경쟁하고, 질투하고, 포기하지 않는가. 20대 후반에야 자기분야를 정하고, 30대에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시작한 다음 이제 겨우 나이 40이 되었는데, 2000년 전에 어느 철학자가 세운 '불혹'의 기준에 자기를 대어본다면 그것은 너무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은가.


독일의 최고급 총기 제조학교에서는 학교로 들어온 수련생들에게 6개월 동안 특별한 과정 하나를 기본으로 하게 시킨다고 한다. 그것은 철의 선택, 최고급 화약 고르기, 연장 고르기, 디자인 같은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총을 만들기 위한 첫번째 과정은 바로 길이를 재는 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가늠자에서부터 시작해, 총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 연장 부터 학생들에게 스스로 만들게 한다.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지고 물려온 자가 아니라 스스로 가늠자의 원리를 되새기며 자와 연장을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자와 연장들에 물려내려져 오던 약간의 오차와 오류를 다잡는다고 한다. 학생들은 연장을 바로 만든 다음 비로소 스스로 총을 만들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면서 우리의 인생과 성공을 평가하는 것도 다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평가의 기준인 연장 자체를 새로 만들 필요도 있다. 남이 만들어놓은, 혹은 현대 사회에는 잘 안맞는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꿰어 맞추고서는 의기소침해 할 필요는 없다.


그런 기준에 맞춰 자신이 벌써 뭔가를 이룩해 냈다고 이제는 불혹이라고 마침표를 찍는 것도 어리석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시계가 다르고 속도가 다르며 방향이 다르다. 오직 정진할 것은 자신이 가야할 길의 방향을 알고, 자신의 시계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공자는 왜 쓸데없이 나이대별로 무슨 기준을 만들어가지고 묻 사람들이 자기비하를 하게 만드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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