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ellions are built on hope.
<스타 워즈> 시리즈 전반을 통틀어 최고로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묻는다면, 나는 에피소드 3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비완과 아나킨이 나누는 대화를 골랐을 것이다. 아나킨은 오비완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오비완에게 이렇게 외친다.
"I hate you."
그런 아나킨에게 오비완은 대답한다.
"You were my brother, Anakin. I loved you."
<스타 워즈> 시리즈가 남긴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들을 뒤로하고 이 장면을 고른 이유가 있다면, 이 하나의 장면에 <스타 워즈> 시리즈의 전체적인 주제가 잘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힘이자 악(惡)의 모습을 보이는 다크사이드 포스의 아나킨은 증오로 자신을 대변하고, 밝은 힘이자 선(善)을 지키려고 하는 라이트사이드 포스의 오비완은 사랑으로 자신을 대변한다. 그러한 두 힘의 대립을 이 장면은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우던 이 둘은 사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아나킨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오비완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임무 도중 자신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비완을 두고 가지 않는다. 오비완은 아나킨을 가족처럼 여겼고, 마지막까지 아나킨을 믿었던 사람도 오비완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대립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아나킨이 다크사이드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크사이드에 빠진 아나킨은 자신이 증오하고 원망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고 했고, 오비완은 그를 막아야했다. 아나킨을 제압하면서도 직접 죽이지는 못하는 모습에서 오비완의 비극적인 마음은 보는 이들에게도 잘 전달된다.
<스타 워즈>를 처음으로 접한 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당시 외국에서 살고 있던 내가 에피소드 1부터 6까지의 CD를 사서 수도 없이 돌려봤던 기억이 있다. <스타 워즈>는 어린 나에게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누구나 나이를 먹고 커가는 과정을 겪듯, 나도 <스타 워즈> 시리즈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내 광선검을 들어본 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7이 나온다는 소식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들었지만, 실제로 시퀄 시리즈를 본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조금은 어른이 되고 삶을 살아가며 <스타 워즈>는 그저 예전에 좋아했던 한 영화가 되버린 것이다.
그동안의 내 삶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때론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있었다. 그 일들이 몰아치고 난 이후에도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과연 그것을 이겨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아직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일들에 대한 생각은 주로 내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회의로 이어진다. 화가 나거나 절망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부정한다. 인생은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넘어진 다음에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말처럼 이제는 일어날 때라고, 내 자신을 이겨내고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보자고 다짐을 한다. 그런 다짐은 하루도 가지 못한다. <스타 워즈>를 지금에 와서 다시 보게 된 것도, 아무런 힘도 희망도 없는 내 상황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다가였다.
좋은 작품은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듯, 다시 보는 <스타 워즈>는 전과는 많이 달랐다. 이전에는 그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아나킨과 루크, 레아가 나와 또래가 되어있었다. 이제는 왜 아나킨이 다크사이드에 빠지게 되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아나킨이 특히 악하거나 나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영화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신을 지배하게 둔다면 다크사이드에 빠질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대한 두려움이나 그걸 지켜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관습에 대한 원망과 증오, 그리고 그런 대상들에 대한 복수심같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쉽게 만들어지고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린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끝내 추구하던 이상까지 바꾸어놓는다. 그런 면에서 <스타 워즈>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우리는 그런 감정들에 빠져 살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이런 다크사이드 포스를 기반으로 우주를 장악하려는 제국에 맞서, 루크와 레아를 비롯한 반란군은 불리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수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열세인 상황에서도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오직 이길 것이라는 희망뿐이다. 그리고 한 대사가 끊임없이 제시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Rebellions are built on hope."
조금씩은 형태가 달라도 같은 뜻을 전하는 대사들이 <스타 워즈> 클래식 시리즈에, 그리고 시퀄 시리즈나 <로그 원> 전반에 걸쳐 나온다. 어쩌면 막강한 제국과 싸워야 했던 그들에게 별로 희망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무모해보이고, 영화라서 가능해보이는 장면들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우주의 평화를 지켜낸다.
다크사이드는 강력하다. 은하 제국의 방식처럼 그들은 힘으로 쉽게 세력을 확장하고 라이트사이드 포스가 설 곳을 빼앗으려고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혐오나 원망과 같은 감정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젠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에 빠져서 살아가는 쉬운 방식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확실하지도 않은 희망을 믿으며 끝까지 싸워나갈 것인지 말이다.
<스타 워즈>를 보았다고 단숨에 희망을 갖게 될 수는 없다. 희망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그 희망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면 좋을지조차도 사실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제 <스타 워즈>는 내게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되었다. 루크와 레아는 넘어지고 나서도 항상 다시 일어나 걸어갔다.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이겨낼 수 없어 보이는 일들도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다크사이드에 빠져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자신을 망가뜨리게 두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볼 것이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희망을 가지는 길일 것이니 말이다. <스타 워즈> 시리즈 최고의 명대사도 희망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The Force will be with you. Alw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