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
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불행이 익숙해질수록 조금씩 사라져간다. 살아가야 할 이유보다 살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는 게 편하다면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더 처절하거나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스스로조차 전혀 긍정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은 삶을 이어가야할지는 정말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사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고 그건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한 카뮈는 죽음이 답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던 니체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내었다. 비록 그들의 삶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보단 훨씬 똑똑하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게 분명하니 아마도 삶은 그만두지는 않을 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너무 난해하다고 생각했던 니체를, 살아가며 조금씩은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니체가 쓴 유명한 문장은 여럿 있지만 그중 많이 와닿았던 것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훌륭한 글귀이다보니 대중적으로도 많이 이용되지만, 그것이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맥락과는 다소 떨어진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이 문장만은 니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지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니체는 분명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것은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나 일상적인 우울감 같은 고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니체는 정말로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삶의 존속이 불가능해질지 모르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니체의 삶도 그런 고통의 연속이었던 만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라는 말은 정말 삶과 죽음 사이의 고뇌를 상정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에게 죽는 것과 사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의 함축적인 언어에서 산다는 것이 그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생존의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니체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라고, 또 낙타가 되지 말고, 춤추는 어린 아이가 되라고 말했다. 니체의 철학은 기존의 질서에 굴복하지 말고 새로운 철학과 관점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그러니 니체에게 산다는 것은 목숨의 보존을 넘어 자신의 의지가 살아있는 상태를 뜻한다. 자신의 의지로서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를 포기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삶은 죽음의 유예와 다름없다. 그러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괴로운 고통 속에서도 나의 의지만은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하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니체는 살기로 했다. 수많은 고통과 모욕 속에서도 살겠다는 의지만은 잃지 않았다. 약해질 때도 있었고, 무너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끝내 자신을 지켜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아무런 변화 없이 끝없이 반복된다고 해도 긍정하겠다고까지 말한다. 고통을 통해서 니체는 삶을 살았고, 사랑했다. 그렇게 니체는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니체가 위대했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도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었기 때문에 니체는 위대해진 것이다. 그는 위대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도 질문한다. 살아가는 삶을 살 것인가 죽어가는 삶을 살 것인가 하고 말이다. 니체의 삶만 고통의 연속인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통이고 고통의 연속이다. 죽어가는 삶을 산다면 그 고통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죽어가는 이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많은 고통을 감내하여야 한다. 여기서 니체는 말한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받아들이겠다면, 그럼에도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저 한 발만 앞으로 내딛기로 한다면, 당신은 위대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선택에 달린 몫이다.
고통은 지식의 온상이며 살아있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라고, 고통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나아가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런 경지에는 조금도 이르지 못했다. 나는 그저 고통에 괴로워하고, 행복을 궁리하면서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만 있다. 어쩌면 나는 아직 선택을 내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무너뜨렸던 일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것도 같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니체는 한 발을 내딛었기에 위대해졌다. 그 한 발은 끝없는 고통을 이겨내야만 내딛을 수 있는 걸음이다. 그러니 나는 고통 속에서 포기하고 죽어가거나, 고통 속에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가면 된다. 보잘 것 없고 작은 것들이겠지만, 그것은 결국 위대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이 고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가기로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다면, 그렇게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딛는다면, 언젠가는 나도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이 나를 더 위대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