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다른 입사 기억
#사진
찰칵, 찰칵.
"아니 선배, 좀 더 옆으로 가봐요"
찰칵, 찰칵.
"아~ 고만 찍어~"
17년간 다녔던 삼성전자를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수원사업장 단지 내 공원을 돌면서,
잘 따르는 후배 녀석이 기념사진을 찍어 준다고 이리저리 자세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 엊그제 입사한 거 같은데 벌써 17년이나 다녔구나.
하늘의 구름을 보니 지난 바쁘게 살아온 시간들이, 말로만 듣던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염라대왕 앞에서나 그럴 줄 알았는데...
#입사 사건
1998년. 여름.
출판사인 시공사의 월간 게임전문지 'PCPLAYER' 외신 기자이자 팀장이었던 나는, 주로 해외를 담당했지만, 국내 업체를 담당할 기자들이 부족해서 일부 게임사를 몇 개 배당받아서 취재/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스타크래프트'를 국내에 들여온 한빛소프트와, 게임 사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삼성전자가 주요 담당업체였다.
주로 매달 취재를 나가고, 새로운 게임을 미리 받아 소개 기사를 쓰고, 친목을 도모하며 업체에 따라 아주 친한 곳도, 또 몇 번을 가도 어색한 곳도 있었다.
성격이 iNFJ라 외부인과 말 섞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 나에게, 업체방문이란 정말 고역과도 같은 일이었다.
사실 게임전문지는 계속 앉아서 게임하고 글을 쓰는 게 전부인 줄 알고 호기롭게 문을 두드렸었다.
왜냐하면 어릴 때 5살 때부터 집에서 사라지면 동네오락실에서 발견되던 나였기 때문이다. 직업도 게임으로 밥 먹고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어렵사리 기자가 되었던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에 있던 삼성전자 미디어 콘텐츠 센터 (MCC)에 소속된 게임부서에 방문해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나의 담당자는 게임의 불모지였던 삼성전자에서 꾸준히 게임 관련 사업을 이끌어온 K대리였다.
같이 이런저런 게임 관련 얘기를 하다가 K대리는 느닷없이,
"여기 들어 일해볼래요? 소싱할 수 있어요?"
"..... 네? 머요? 소싱?" 사실 소싱이 뭔지도 몰랐다.
"네, 저희가 하는 업무예요. 해외 게임 수입하는 건데, 마침 TO가 났는데, 글 쓰는 거 말고 게임의 본 바닥에 와서 같이 일 해보지 않을래요?"
순간 많은 생각 아니, 아무 생각도 없었다. 사실 '삼성'이라는 '간판'을 얻는다는 것은 집안의 경사였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간판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게임'으로 돈 벌 수 있으면 충분했었기에, 삼성전자로의 입사는 정말 0.1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음.. 좀 생각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미쳤다. 호기롭게 튕겼다. 당장 두 손 부여잡고 감사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사실 망설였던 이유 중에 하나가 하루 전에 게임사 중에서 가장 잘 나가던 '한빛소프트'의 담당자가 나를 스카우트하겠다며 무조건 와달라 해서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한 터였다.
'세상에, 동시에 두 군데서 오라고 하다니.'
지금 다니는 월간지는 출판사답게 가난하고 영세한 소규모 회사였다. 한 달의 절반은 마감하느라 집에도 못 가는 패턴을 몇 년째하고 있을 때였다.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게임을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다는 맛에 충분히 동기부여도 되던 직장이었다. 물론 연봉은 진짜 자원봉사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한빛소프트냐,
업계에선 미미하지만 쏠쏠히 게임을 하는 삼성전자냐.
운명의 갈림길이 눈앞에 있었다.
그 당시 삼성전자는 어린이용 교육컴퓨터 'PICO', 일본 세가새턴의 라이선스로 만든 게임기 '알라딘보이', 일본 스퀘어에닉스의 게임 '파이널 판타지', 국내 '짱구는 못 말려' PC게임을 비롯해서 워드프로세서인 '훈민정음'과 온라인 쇼핑몰 삼성소프트닷컴, MP3 플레이어 Yepp 콘텐츠를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으로 미디어 콘텐츠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중소기업이지만 확실한 먹거리가 있던 한빛소프트와 인연이 되었던 것은, 프랑스 밀리야에서 열린 게임쇼를 취재 갔을 때 방을 못 구한 채로 출장 온 한빛의 담당자에게 우리가 받은 2개의 호텔방 중 하나를 주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 계속 내게 잘해주고 계셨던 분이었다. 은혜를 갚는다고, 와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중 일이지만 바로 밑에 있던 부사수와 프랑스 출장을 같이 갔었는데, 이 친구한테도 한빛으로 와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내가 이직하기도 전에 이 놈이 먼저 한빛으로 이직을 해버리는 불상사가 생겼다. 하하하하하하하ㅠㅠ. 뒤통수 제대로 세게 맞은 것이다.... 아팠다... 기껏 키워놓고 떠나려 했는데...
사실 나는 그때 윗선에 이미 이직을 얘기해 놓고 계속 실랑이를 하던 때였다.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사직서 놓고 튄 부사수 놈 때문에 내가 이직을 못하게 생긴 것이다. 그래서 2달을 더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회사가 손을 들고, 후임만 뽑히면 가도 된다고 해서 이직이 서너 달 늦어지기도 했던 일이 있었다. 어휴...
아무튼 이 사건은 좀 더 뒤에 일어난 것이고, 두 회사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같이 일 해보겠습니다."
by TiNG
V.1.1
#2편 예고
면접, 그리고 인사과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