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혹되지 않는 삶
외부의 환경에 쉽게 지배받을수록, 우리의 내면에 빈틈이 많다는 증거다.
빈틈정도가 아니라, 텅텅 비어있으니 외부의 것들이 자리잡고 몸집을 키워나간다. 사회적 현상, 사회적 분위기가 내면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겠다고 기꺼이 마음을 먹은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본인의 건전한 생각과 신념으로 가득차있을 때 비로소, 고요함과 평온함이 찾아오며 고요함과 평온함은 그동안 우리가 시달렸던 공허, 걱정, 불안을 내쫒고 그 자리를 꽉 채운다. 우리는 허덕이는 사회적 분위기속 항상 걱정과 불안, 공허를 안고 살아왔다. 의지로써 무언가를 이겨내보려해도, 무엇인가가 채워지지 않은 상황을 자주 마주했을 것이다. 만족하며 평안한 마음 상태였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을까?
외부의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내면이 요동치듯 흔들리고, 큰 불안에 사로잡히며 긴장하는 상태에 놓여있다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한탄하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을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내면이 고요함과 평온함으로 가득찬 사람은 외부의 부정적 자극에 대해 크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또한 현혹과 유혹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유혹이 내면에 들어오려는 시도를 단단하게 막아서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내면을 불안과 공허, 걱정으로 가득채운 것은 바로 본인이다.
상처를 주는 것은 타인 또는 사회가 되지만, 상처를 받겠다고 선택하는 건 본인이다. 갓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걷지 못한다. 또 갓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또박또박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본능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시도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두 발로 걷고, 말을 하게된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며, 행복은 불행 요소를 걷어냄으로 인해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다.
보편적인 걱정과, 불안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식단조절만 잘 하더라도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공허는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 공허는 내가 만족할만한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한다. 내면에서 불쾌하다고 느끼는 것을 반복하면 공허해진다. 불쾌와 쾌를 잘 구분해야하며, 이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정의할 수 없다. 불쾌와 쾌를 잘 구분하려면, 많은 시도와 경험을 '충만'하게하여 쾌와 불쾌를 잘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
쾌를 가득채워 만족감이 큰 삶은, 풍요로운 삶이며 자연스럽게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우리는 세상을 향한 목적과 목표, 세상의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닌 내면을 채우는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내면이 올바르게 채워지면 우리는 더 이상 외부의 것에 영향받지 않으며, 단단하지만 유연하게 세상을 지혜롭게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강해지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한다.
MZ세대, 나약한 이유를 시작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로 이어졌습니다. 이 글을 보면, 그래서 내면을 어떻게 채우는건데? 라는 질문이 떠오를 것 같아, 다음 글은 나의 내면을 채우는 방법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첫 시리즈 에세이가 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