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가 되는 연습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현대 심리치료에서 널리 사용되는 접근법 중 하나이다. 핵심은 '우리의 생각(인지)이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감정과 행동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친구와 눈이 마주쳐도 친구가 인사하지 않는다면 '나를 싫어하나 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혼자 단정 지은 주관적인 생각을 사실로 믿는 경우다. 사실 그 친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미처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상담 현장에서도 인지가 왜곡되어 있는 친구들은 친구나,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 한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만 불친절하고 관심이 없으세요."라고 상담에서 털어놨을 때 상담자인 내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선생님이 바빠서 그렇지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신 건 아닐 거예요."라고 말한다면 내담자는 "선생님도 제 말을 믿지 못하는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공감으로 유연하게 대처한다. 이처럼 인지 왜곡은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거짓을 사실로 믿게 만든다.
인지 왜곡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매일 몇 번씩 흔하게 일어난다. 타인, 또는 동료와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리는 '오늘은 화장이 잘 받았지!', '역시, 어제 산 옷이 예쁜가 보다', '오늘 내가 아파 보이긴 하지', '나에게 불만 있나?' 그저 타인은 당신을 쳐다본 일이 다지만, 우리의 인지는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해석한다.
심리학자 아론 벡(Aaron Beck)은 이런 인지 왜곡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대표적인 인지 왜곡을 살펴보자.
1. 흑백논리(이분법적 사고): '전부 아니면 전무'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가 오늘 숙제를 안 했어. 이 아이는 공부에 관심이 전혀 없어." 하나의 실수나 실패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단정 지는다. 선택지가 두 가지밖에 없는 경우로 이것을 흑백논리라고 설명한다.
2. 과잉일반화: 한두 번의 경험을 '항상', '절대'라는 단어로 확대한다. "남편이 또 설거지를 안 했어. 이 사람은 항상 나만 일하게 내버려 둬." 한 번의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처럼 믿는다. 분명 함께 집안일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은 보지 않는다. 버스가 제시간에 9번 잘 왔어도 1번 늦으면 "이 버스는 항상 늦게 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번을 모두처럼 만드는 것, 이것이 과잉일반화다.
3. 파국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한다. "아이가 이번 시험을 못 봤어. 이러다 중학교 가서도 뒤처지는 거 아냐? 나중에 대학도 못 가면 어쩌지?" 작은 문제를 현실성 없이 큰 재앙으로 키워서 생각한다.
4. 개인화: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대. 내가 애를 잘못 키운 거야." 자신과 무관한 일에도 책임을 느낀다. 아이가 싸운 건 친구와의 갈등 때문일 수도 있고,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마치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연결한다.
5. 독심술: 상대방의 생각을 추측해서 사실로 믿는다. "상사가 회의에서 나만 안 쳐다봤어. 내 기획안이 마음에 안 드나 봐." 확인하지 않고 혼자 결론을 내린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에 임의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6. 감정적 추론: 감정이 곧 사실이라고 믿는다. "나는 불안해. 그러니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 감정을 근거로 현실을 판단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나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을 기준으로 상황을 해석한다는 뜻이다. 불안하다고 위험한 게 아니고, 두렵다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감정적 추론에 빠지면 느낌이 곧 진실이 된다.
7. 당위적 사고: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 기준을 세운다. '일처리는 빨라야 한다.' '엄마 라면 아이교육에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인스타에 꼭 올려야 해', '상사 보다 늦게 퇴근하면 안 돼', '남자는 강해야 해', '주말에는 생산적인 일을 해야 돼'우리가 흔하게 하는 당위적 사고는 많다. 그런 생각 중에는 의무과 관련된 당위적 사고도 있을 것이다. '가족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해', '부모님 말씀은 무조건 따라야 해', '전화는 즉시 받아야 해' , '선배 부탁은 거절하면 안 돼' 당위적 사고는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경직 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인지 왜곡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관찰자가 되어 항상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진다. 물론 그 생각이 별 볼 일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야지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인지가 일어날 때 생각이 멈추면서 객관적으로 대처할 틈이 생기는 것이다. 이 틈은 0.1초도 안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지 않고 살아가면 이 0.1초의 틈이 생기기 쉽지 않다. 그 틈으로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인지해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아이가 숙제를 계속 미루어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평소 같은면 "빨리 숙제 좀! 해!"라고 소리치지만 생각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고 있고, 오늘은 내가 좀 피곤해서 감정 조절이 어렵구나. 아이는 지금 새로 산 물건에 관심이 생겨서 그걸 보느라 숙제가 늦어지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글로 써서 길어 보이지만 순간의 찰나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집중할 때 자신의 몸상태도 함께 관찰하면 더욱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화가 나면 화를 낸다. 하지만 몸상태에 집중하다 보면 화나기 전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긴장을 할 때 무심결에 어깨나 목, 치아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격한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그 감정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인지치료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유는 극단을 내려놓게 하기 때문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항상 아니면 절대', '완벽 아니면 실패' 같은 양극단 사이를 오가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원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사랑하면서도 화가 날 수 있고, 부족해도 괜찮을 수 있다. 왜곡이 걷히면 있는 그대로가 보인다. 그게 전부가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뜻도 아니고, 나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일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현재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오늘은 관찰자가 되어 자신의 생각을 관찰해 보라. 그 작은 시도가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