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포장지 속에 숨겨진 사랑
배우자에게 사랑을 원할 때 우리는 어김없이 화를 낸다. 그 속마음은 '나를 좀 조건 없이 사랑해 달라', '나를 위해 달라', '나를 배려해 달라', '나는 관심이 받고 싶다' 이런 마음들일 것이다. 그러나 화를 내는 순간에는 상대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 좀 조건 없이 이해해 주고 사랑해 달라' 이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결혼은 인생에 있어 큰 충격과도 같다. 각자의 원가족에서 30년 내외를 살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어느 한순간부터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다. 배우자에게는 내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 경멸했던 시부모님의 모습, 심지어 보기도 싫은 내 모습이 모두 들어있다. 한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배우자에게 꼭 나쁜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 부모님의 장점들, 나의 단점들을 보완해 주는 모습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배우자에게 우리는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의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이런 말 대신,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는가?', '정말 나아지는 게 없구나', '이 물건은 제발 여기에 두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쏘아붙인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들킬까 두려워 험한 말로 포장하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학생을 괴롭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나도 남편의 행동에 화가 날 때를 생각해 본다. 부인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이 남편에게 보였을 때, 나는 당황해하며 남편을 몰아세웠다. 내가 부인하고 싶었던 내 모습이 보이니 화가 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다. '나의 모든 면을 받아들일 때, 배우자에 대한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타인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웠다. 실천도 잘 이루어졌다. 역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가족이다. 가족이 문제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무의식이 가족에게 깊게, 아주 깊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난 그들에게 나의 깊은 무의식이 투사되는 경우도 종종 있겠지만 그것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투사되기 쉽다. 자신의 모습을 깊게 투사하고, 투사된 내 모습을 배우자에게서 보는 것이 무서워 화로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금 나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본다. 자신에게 느슨한 잣대가 배우자를 보는 마음에도 적용이 된다. 자신에게 엄격하다면 배우자의 사소한 행동에도 화가 나고 고치려 하며 '저 사람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라는 말이다. 결혼 전에는 이 말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좋은 사람이 되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어떤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다.
나를 인정하자 비로소 남편이 보였다. 서로 일 하느라 힘들지만 그는 집안일을 한다. 아이와 함께 병원 갈 때도 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캠핑하기 위해 혼자 분주하게 텐트를 챙기는 모습도 보인다. 예전에는 그런 모습들을 당연하게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저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따뜻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고 싶을 것이다.
이제 나와 남편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한다. 괜찮아. 다 괜찮아. 다 고맙다. 다 애썼다. 우린 모두 사랑받고 싶었구나. 나와 남편에게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