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이 고통의 순환이 끊어질 것 같아서.
앞으로도 종종 이야기할 일이 있겠지만, 나는 현재 8개월째 시댁에 얹혀사는 중이다. 아이를 낳으면 어떤 것도 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을지니, 어떤 종류의 강박이든 강제로 치료받게 될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는데, 그러게. 나도 마흔이 넘어 쌍둥이를 낳게 될지도, 그 때문에 시댁에 합가 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임신 중에 시댁에 들어갈까 하며 남편과 의논해 본 적은 있으나,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의 합가는 서로 불편해서 힘들 거다라는 어머님의 거절과 남편의 ‘너는 우리 부모님 하고 안 살아봤잖아. 난 살아봤잖아. 힘들걸?’이라는 말에 무산되었었다. 운이 좋게도 정부 지원으로 오신 산후 도우미 이모님께서 손도 빠르시고 아이들도 몹시 예뻐하시고 요리마저 잘하셔서 주중에는 그분과, 주말에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번갈아 받아가며 어찌어찌 육아해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본 시어머니께서는 눈에서 사랑이 넘쳐흐르시며 아유 어찌 이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기냐며, 적극 도와주시겠다 하여 이런저런 안이 오가다가 결국 합가로 이어졌다. 임신 기간에 합가 결정이 났다면 했다면 출산 전 휴가 중에 가구/가전 정리라도 미리 했을 텐데, 이미 태어난 애들을 데리고 30평형 아파트의 짐을 3칸의 방으로 옮겨야 하는 큰 일을 앞에 두니 너무나 심란했다. 그 심란함과 찝찝함을 마음 한편에 밀어 두고 남편과 나는 막연히 좋은 점만 생각하려 노력했다. 주변의 걱정 어린 말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실패사례들에 대해 ‘우리는 다를 거야. 노력하면 되겠지’하며 애써 외면했다. 월세살이 하던 돈을 부모님께 드리고, 청약을 노려볼 수도 있고 관리비 등의 생활비도 절약될 거고, 아이들도 정서적으로 안정될 거고 기타 등등.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유경험자가 계시다면 내가 늘어놓은 장점에 피식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아직은 추운 3월 초에 우리는 급한 애들 짐만 차에 꽉꽉 실어 담고 도시 간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댁 살이, 처음엔 아유 너무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쌍둥이 키우는 엄마인데도 밥도 먹고 지냅니다를 달고 살던 나는 언젠가부터 ’ 시댁 불화 해결방법‘ 등으로 유튜브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체력적으로는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쌍둥이 모유수유를 미련하게 고집했고, 동시에 합가 이사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신혼가전/가구를 당근에 올리거나 기존의 살던 집을 부동산에 내놓는 등의 일을 하면서도 매일밤 아이를 데리고 자야 했기 때문이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깨야하는 밤은 너무나 피곤했고 잠은 항상 부족했다. 결국 최종 마무리 이사까지 하고 애들 보면서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입에 혓바늘이 돋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매일매일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태어나서 숨을 쉬고 모든 것이 undo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이었다. 내 집이 아니고, 내 생활 패턴과 다른 곳에서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이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없다 해도 이렇게나 없다고?!! 이삿짐조차도 시부모님의 성화(두 분의 입장에서는 도와주시려고 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빨리빨리의 압박으로 다가왔다.)에 일주일도 안돼서 모두 다 제자리 찾아서 들어갔으니 말이다. 마치 한국사람이 프랑스에 온 것만큼이나 다른 가족의 문화라는 것은 이질적이고 생경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이 누적되자 나는 남편을 미워하고, 시부모님을 미워하고, 종국에는 나를 미워하는 패턴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8월의 한여름을 지나며 첫째 아이의 수술간병을 하면서 남아있던 마지막 에너지마저 탈탈 털어진 나는 고장 난 것 같았다.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부글부글 끓어댔고, 매일밤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뇌가 과열된 cpu처럼 계속해서 팬이 윙윙 도는 것만 같았다. 애들을 재우고 이불에 누우면 내가 세상 비참하고 가엽다가,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가 결국엔 내가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사고방식이 문제야,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야, 내가 미련해서 그래, 이게 노예근성이지 다른 게 있겠어? 아 내가 없어져야 되겠다. 내가 결국 문젠 것 같아. 그래야 이 고리가 끝날 것 같아. 이게 9월의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이었다. 서로 얼마나 환장할 노릇이겠는가. 돕겠다고 최선을 다해 돕고 있는 시부모님도, 양쪽사이에 낀 남편도, 그런데 정신이 바닥나버린 나도. 나는 결심을 하게 된다. 병원갈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