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텔이 크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넉넉지 않은 출장비로 전국을 돌아다니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요즘엔 신축에 리모델링까지 한 괜찮은 숙소들이 많아졌다. 방문이력이 있는 지역에 가게 될 때엔 이미 다녀가 본 숙소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지만, 처음 가는 지역일 때면 이번에도 잘 차려진 곳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꼼꼼하게 리뷰를 확인하고 숙소를 예약한다. 출장비가 부족해 내 돈을 조금 보탤지라도 괜찮은 곳에서 자고 싶다. 담배 냄새가 나거나 볕이 들지 않는 으슥한 곳은 싫다. 어쩌다 운이 좋지 않아 그런 곳에 갈 때면 여태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마지막에 머무른 사람은 누구였는지 등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때문이다.
한 주 동안 인천에서 출발해 중부지방을 돌다가 주말엔 잠시 본가에 들러 멀리 지인의 결혼식까지 다녀왔다. 역시나 여러 군데에서 잠을 청했고, 열심히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막내인 탓에 숙소 결제는 내가 주로 담당하는데 어떤 사장님은 아가씨가 매일 이런 데서 잠을 자서 어쩌냐고 걱정해 주시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장님은 다음에 또 방문해 내 이름을 대면 더 저렴하게 해주겠다고도 한다. 모텔 사장님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또 언제가 될지 모를 출장을 예상해 이름을 기억해 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야유(野遊)가 아니라, 엄연한 출장이니까.
한 번은 부서에 새로 부임하신 분께서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여성으로서 이렇게나 자주, 모텔 같은 숙소를 전전하며 돌아다니는 일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고. 밖에서 자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누군가를 지적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한 때는 누군가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하는 선생님이 꿈이었고, 집순이면서도 한 번씩은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을 좋아했기에. 이런 나를 고려해 취지와 방법이 유사(?)한 감사실에 오기로 한 것인데. 그의 말처럼 이렇게 생활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 오기로 한 것은 순전히 나의 지난 바람과 성향을 믿었기 때문일까.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름이면 주말마다 계곡을 찾아 캠핑을 하고,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물놀이를 하고 나오면 엄마가 만든 근사한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 등에 돌부리가 느껴지고 바닥에선 습기가 올라오곤 했지만 물소리를 들으며 잠에 드는 그 시간이 좋았다. 겨울엔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어시장에서 회를 샀고, 아빠는 우리를 차에서 기다리게 한 뒤 주변의 여관을 돌아다니며 1박에 얼마인지를 물었다. 몇 군데를 전전하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방을 찾게 되면 그 여관방에 들어가 사온 회를 먹고 그곳에서 잠을 청했다. 가끔 바닷가의 매서운 바람이 창을 뚫고 들어오는 때도 있었지만, 뜨뜻한 온돌방에 누워 뒹굴던 그 시간이 좋았다.
어쩌면 험한 잠자리가 크게 서글프지 않았던 건, 어린 시절 경험한 소중한 외박의 추억들 때문일지도. 아마도 그때의 어린 나는 아빠가 설치한 텐트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조금 낡아 보여도 따뜻한 여관방에 들어갔던 순간, 집 밖에서 찾은 또 다른 안전지대에 아늑함과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의 엄마와 아빠는 참으로 낙관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무모하거나 용감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러고 보니 그들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것 같다.
밖에서 자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던 그의 질문에, 계획에 없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감사실에 온 뒤, 많은 이들로부터 걱정 섞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내 입으로 내가 괜찮을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준비된 대답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내가 지금의 생활을 용케 해내고 있는 이유 하나를 찾았다.
숙박 어플에선 내 등급이 올라가고, 이제 나름 전국의 숙소리스트를 머릿속에 구축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어디 가서 '전 사실 외박이, 모텔이 그렇게 낯설지 않아요.'라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기엔 좀 뭣하다. 그래서 낯설지 않은 이유를, 그리고 점점 더 낯설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이곳에도 설명해 두었으니 괜한 오해는 받고 싶지 않다.
출장의 마지막. 예정에 없던 장염을 얻어 하루 종일 혼이 나갔다. 다사다난했던 이번 주 외지생활의 마무리를 장염으로 끝냈지만, 스스로를 서글프게 바라볼 생각은 없다. 난 화려하진 않아도 꽤나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소려한 싱글이고, 덕분에 혈혈단신 자유로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아직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지금을 값지게 되돌아볼 수 있는 어딘가로 전진하고 있는 중이라 믿는다. 가끔 이렇게 속병을 얻어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강제로 쉬게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한 소중한 외박의 경험이 지금의 생활을 익숙케 할지언정 그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던 순간도 우리 모두에게 한 때였고 그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이 또한 한 때였고, 지금이라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