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의 잠재력과 책임감
대학을 휴학하고 떠난 유럽여행의 시작은 파리였다. 한 번의 경유를 거쳐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 처음 가본 유럽인 데다 더군다나 캄캄한 밤. 예약해 둔 숙소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야 했고, 미리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생각만큼 표를 끊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낯선 땅, 긴장되는 마음을 추스르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표를 끊었다. 지하철 역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다양한 인종, 강렬한 사람들의 향수냄새와 파리 지하철 특유의 불쾌한 냄새들이 뒤섞여 있었고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엔 어리숙한 20대의 동양인 관광객으로 보였을 것이 뻔했다. 그렇게 겨우 지하철에 올라타 숙소가 있는 역에 내렸으나,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표를 잘못 끊은 탓에 개찰구에 표를 넣어도 출구가 열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공항에서 출발해 꽤나 멀리까지 가는 여정이었는데, 기본요금만 내는 표를 끊었기에 그랬던 듯.
아무튼 불어는커녕 영어도 잘 못하는데 사람들도 별로 없는 늦은 시각. 역무원도 찾지 못해 쩔쩔 매고 있을 때, 곱슬머리의 긴 백발에 하늘색 청바지와 라이더 재킷을 입은 어느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밤늦은 시간, 낯선 사람, 게다가 다정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양. 혹시나 술에 취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이상한 소리를 하면 어쩌나 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교통카드를 개찰구에 태그 하더니 문이 열렸으니 어서 지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 순간에는 정말 눈썹을 포함한 온갖 얼굴 근육을 동원해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해 처음으로, 열심히 외워간 불어를 가장 큰 소리로 외쳤다. "Merci beaucoup!"
환하게 웃으며 개찰구를 통과하는 이방인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잘 가라고 손짓을 했다.
파리의 첫인상이 그래서였을까. 사실 파리에 있는 동안 길에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을 크게 괘념치 않게 되었던 건 그 할아버지가 준 도시의 첫인상 덕분이었던 것 같기도.
반대로 그다음 여행지였던 벨기에의 브뤼셀은 도착하자마자 지하철 안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소매치기의 손이 내 가방 안에 들어와 있었고 그의 손을 발견하자마자, 가방을 손으로 꾹 눌렀다. 그는 재빨리 손을 빼더니, 내 시선을 피해 한숨을 푹 한번 쉬고는 다음 역에서 내려버렸다. 그로 인해 브뤼셀에서의 첫날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을 설쳤고 여행 내내 가방을 품에 꽁꽁 안고 다녀야만 했다. 첫날 마주한 도시의 첫인상은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쉽사리 가시지가 않았다. 벨기에를 여행하는 동안 그때 느낀 두려움으로 인해 남은 일정에 소극적으로 임할까 싶어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제쳐두려 끊임없이 애를 써야 했다. 꽁꽁 싸매고 다닌 가방처럼 마음도 꽁꽁 잠긴 느낌. 첫인상은 그렇게나 중요했다. 그를 포함한, 그가 속해있는 것들까지도 품어줄 수 있는 아량을 만들어주다가도, 어떨 땐 그 어떤 좋은 것들 앞에서도 좀처럼 무너뜨리기 힘든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어느 주말 오후. 혼자서 볼 일을 보고 선선한 저녁 바람을 느끼며 길을 걷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길래 누군가 하고 쳐다보니 20대로 보이는 어느 여성분이었다. 이 동네에 날 아는 사람은 없는데 왜 그러나 싶어서 봤더니, 그녀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가방 문 열렸어요."
세상에나 가방은 조금도 아니고 아주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폴폴 돌아다니고 있었던 모양. 이 정도면 가방 안의 물건을 흘렸을 수도 있는 수준인데, 다행히 잃어버린 것은 없었다. 언제부터 이러고 다녔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렇게 용기를 내서 말해준 그녀에게 고마웠다.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며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찰나, 그녀가 데리고 나온 강아지가 내 다리 근처로 왔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평소였다면 반사적으로 강아지를 피할 텐데 희한하게도 그녀의 강아지가 내 다리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호의란 이토록 대단한 것이다. 늘 갖고 있던 두려움마저 잊게 한다. 아니, 잊게 하는 걸 넘어서 귀엽게 보이게까지.
호의는 그를 포함해 그가 갖고 있는 것들의 이미지까지 만들어낸다. 마치 요즘의 생성형 AI처럼 그의 첫인상을 입력하면 그가 갖고 있는 것들까지 그와 비슷한 이미지로 형상화시켜 주는 것만 같다. 그러니, 내가 속해있는 것들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밉보이지 않으려면 부단히 거울을 보고 나를 다듬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내 호의가 드러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첫인상이 다가 아니란 말이 있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첫인상이 마지막 인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그녀의 강아지가 내 다리 사이를 오가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던 그 순간이 놀랍다. 왠지 그 아이는 날 물지 않을 것만 같았거든. 주인을 닮아서. 나는 그간 나와 만난 사람들에게, 나의 어떤 것들까지 나와 동일시하게 만들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호의를 베풀겠다는 것은 아니다. 행동하지 않음으로 모른 척해주는 것이 호의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누군가를 배려할 때마다 흔쾌히 행하되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저 언제 발휘될지 모를 호의를 대비해 스스로를 가다듬을 뿐.
사소한 호의가 어디에까지, 얼마만큼의 사소하지 않은 호감으로 변모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저나 이 얄궂은 사람의 마음이란. 호의에도 책임감을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