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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게 해 주세요

보름달에 비는 소원

by autumn dew

겨우 찾아야지만 하나씩 보이던 흰머리가 이제는 머리카락을 들출 때마다 눈에 자주 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틈틈이 잘 숨겨져 있다는 것.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나.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날의 나는 이런 부작용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젊고 당당한 모습만을 어른의 모습이라 여기며 살아왔겠지. 아침에 고데기로 머리를 다듬을 때마다 혹시나 흰머리가 보이면 바로 뽑기 위해서 족집게를 가까이에 놔둔다. 흰머리도 소중한 머리카락이기에 뽑아선 안 된다고들 하지만, 막상 눈에 띄는 순간 그 거슬림을 거스를 수가 없다. 다행히 머리숱이 많으니 이 정도는 뽑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거울을 보다 몇 가닥을 뽑았다.


어린 날 떠올렸던 멋진 어른의 모습에는 이런 흰머리도 자글자글한 주름도 없었을 텐데, 미숙하게도 단편적인 모습을 전부라 여기며 어른이 되기를 꿈꿨다. 어른의 삶에서 응당 드러나야 한다 여겼던 자신감과 능력. 그러나 그 뒤에는 이처럼 숨기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 그저 나이를 먹어 자연스레 생긴 현상인데 희한하게도 이런 현상은 또 감추고 싶어진다. 멋지고 그럴싸한 모습만을 어른의 것이라 드러내고 싶다.



어릴 적부터 시나 글을 쓰는 일을 좋아했다는 것을 굳이 증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 썼던 시가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던 일이 아닐까. 그때 나는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아빠의 주름과 흰머리에 대한 시를 썼다. 당시 어린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흰머리를 뽑을 때마다 10원씩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의 흰머리를 뽑고 그렇게 가까워진 그 얼굴의 주름을 보며 썼던 시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고 예술제에서 전시할 목적으로 학교에서는 액자까지 만들어 줬다. 예술제 이후엔 교실 밖 복도에 걸리기도 했고. 시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약하자면 아빠의 얼굴에 주름이 있고 머리엔 흰머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초연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존경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날의 머릿속에 들어가 볼 수 없으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시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나는 것은 그 액자를 집으로 가지고 왔을 때 찬찬히 읽어보고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던 아빠의 표정이었다. 내가 이렇게 우리 딸에게 늙어 보이는 사람이었나, 하던 그의 표정. 시의 주인공은 감동보다는 당황해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아빠의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이 더 기억에 남는다.


소소한 용돈벌이였던 흰머리 뽑기를 지금 적용해보려 하니, 이제 아빠는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으며 결정적으로 이제는 뽑을 머리카락조차 그에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 생각해 보니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아빠의 나이가 서른여덟 정도였으니 지금의 내 나이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래, 지금 내 머리에 난 흰머리를 보아하니 그만한 아이가 흰머리를 발견해 용돈을 줄 수 있는 정도는 될 성싶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 역시 만약 내 아이가 나의 흰머리와 주름을 보고 그런 시를 썼다면, 충분히 충격을 받았을 것도 같다. 아빠는 자신을 향한 딸의 존경의 메시지도 좋지만, 겉보기에도 멋진 어른으로 보이고 싶었을 테니.




연휴 기간 중에 드디어 미루고 미뤘던 미용실로 향했다. 자랑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넘치는 머리숱으로 인해 매일 머리를 말리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에, 나는 늘 머리숱을 쳐야 할 때쯤 미용실을 가서 머리를 자르고 숱을 정리하며 머리를 했다. 사실 미용실에 가야 할 주기는 한참 지났고, 바쁜 업무 일정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미용실은 다니던 곳에 가야 심신이 편하니 이는 본가로 내려올 때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매번 원장님이 물어볼 때마다 사실 답변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젊고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게 해 주세요. 젊은 어른이라. 추상적이고 모순적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아마도 그 때의 시가 상을 받은 이유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자글자글한 주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존경한다는 내용 때문이 아니었을까. 멋진 어른처럼 보이지 않는 겉모습의 것들을 나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존경의 대상으로 표현했기에. 하지만 열 살의 그 아이는 자신도 그런 겉모습을 가지는 나이가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머리를 자르면서 함께 쳐 내린 머리숱으로 인해 이제 조금만 들추어도 흰머리가 더 잘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때의 아빠처럼 그런 모습조차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줄 아이는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화자가 바로 나였으니 그때의 그 시선으로 스스로를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긴 연휴를 보내며, 엄마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듯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둘이 나눈 이야기의 대부분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서글픔이었다. 연휴 하나를 지날 뿐일 텐데 연휴가 끝나고 나면 10월 한 달의 1/3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책 없이 시간을 써버려도 되는 것일까. 일하는 날이든, 그저 놀 수 있는 날이든 그만큼의 시간만큼 또 나이는 들어가고 있겠지. 그러나 늘어난 흰머리와 주름을 차치하고 그 시간만큼 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미용실의 원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젊고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게 해 주세요. 겉모습이 그러기를 바라는 만큼, 내면도 그렇게 가꿔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추석 당일엔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얗고 둥근 보름달을 보며, 숨겨야 할 것들에 집중한 나머지 진짜 괜찮은 어른이 되었는지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 참이다. 흰머리와 주름은 막을 수 없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마음이 젊고 괜찮은 어른으로 거듭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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