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익숙함을 바라는 11월
이른 주말 아침,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돌아왔다. 주변의 나무들은 가을로 물들어가는데 한껏 추레한 복장으로 동네 병원을 다녀온 나는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오늘은 샤워하지 마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당부를 잊을 순 없으니, 괜히 조금 더 걸어볼까 하는 욕심을 접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답게 누워 쉬려고 다시 잠옷을 입었다. 지난밤 빨래를 하고 새로 꺼내 입은 잠옷은 일주일 전 주말, 본가에 갔을 때 엄마가 빨아준 잠옷이었다. 항상 내가 쓰던 섬유유연제 냄새가 아니었다. 엄마 냄새 같았다. 그렇게 엄마 냄새를 안고 누워서 영화를 보다 다시 낮잠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꽤나 힘든 한 달이었다. 한 해의 달력이 두 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지만, 버거운 한 달도 이렇게나 마무리된 것 같아 시간이 빠른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경미한 접촉사고로 정비공장을 다녀온 차가 마침내 나에게 돌아왔고, 깔끔한 뒤꽁무니로 돌아온 차와 마주하며 나는 이것을 그간의 사건, 사고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여겼다. 그렇게 믿고 나니, 정말로 시끄러운 일들이 하나둘씩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인 만큼 단지 안의 수목들이 높고 울창하다. 베란다에 앉아 나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지난 주말,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여유 있게 돌아오려 했으나 마무리되지 않는 일들로 일찍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에서 인천까지, 매번 기차와 광역버스를 병행하던 여정이었는데 기차가 매진이었던 탓에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집에서 집까지 총 5시간. 긴 시간을 버스 안에서 멍하니 있었다. 핸드폰을 볼 법도, 음악을 들을 법도 한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 외로 시간은 너무나 빨리 갔다.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고속도로를 가득 매운 수많은 차들로 인해 길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너무 밝아서였는지, 쉽사리 잠에도 들지 못했다. 모르지, 뭐. 바깥이 각성 상태였는지, 내 마음이 각성 상태였는지.
매일 저녁, 머리맡에 놓여있는 책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것들은 거의 다른 이들로부터 선물 받거나 빌려 온 책이었다. 굳이 본가에서 읽은 책들을 무겁게 갖고 올 필요는 없으니, 이곳의 책들은 다른 이들의 손을 거쳐 온 것이었다. 일부 책에는 선물한 이들이 남긴 글들이 있었다. 나를 잘 아는 이들이 써주었으니, 짧지만 편지이자 당부에 가까웠다.
아끼는 후배가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녀에게 선물로 줄 책을 샀다. 최진영 작가의 < 단 한 사람 >. 아무런 생각 없이 두 번이나 한 자리에서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른 세계로의 몰입, 나는 오로지 그것만을 염두에 두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이들을 만나면, 나는 그 세계를 빨리 빠져나오라 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갈 것이라고만 말한다. 다만, 가능하다면 괴로운 집중으로부터 시선을 잠시 거두어주고 싶을 뿐이다.
사고의 흔적 없이 새로 거듭난 차는, 낙엽이 쌓이지 않게 나무가 없는 볕이 쨍쨍한 자리에 세워두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주차장이 없다.) 한 여름이 아니니, 뭐 어떤가. 그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지나갈 것들을 굳이 일부러 맞지 않았으면 해서. 이미 엉덩이를 두드려 맞은 것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차주인 나도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모두 안팎으로 혼란한 것들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익숙함이 되고자 선물을 준비하고 편지를 쓴 주말. 긴 연휴로 시작했던 10월 한 달은 쉰 시간들에 대한 보상인지 복수인지 꽤나 힘든 시간을 남기고 떠났다. 그럼에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인지 달의 마무리에도, 그 달이 익숙하지 않았다. 낯설게 시작해, 낯설게 떠났다.
이제는 일찍 어둑해지는 저녁, 이른 산책을 다녀왔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묻어 있는 잠옷을 다시 꺼내 입는다. 그리고 다시금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들을 펼친다.
달이 바뀌었다. 또 어떤 변화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안녕, 11월. 하나에 하나가 더 붙었으니 이번에는 조금 덜 낯설기를 바라본다.
나는 20대 때 35살 이후의 인생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35살까지 일하고 그다음엔 '그 후에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인 줄로만 알았다. 웬걸, 그 후에도 길고 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가 변해간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일에 대한 좋은 태도들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싶다.
'변화'라는 개념은 전혀 새롭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 임경선, < 태도에 관하여 >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