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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면 미안한 이에게

사과의 번지수와 타이밍

by autumn dew

오래 전의 어느 여름.

당시 맡고 있던 업무의 연수가 제주에서 예정돼 있었고, 나는 친한 선배와 함께 교육 일정보다 조금 더 일찍 만나 제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깨끗하고 세련돼 보이는 숙소를 선배로부터 소개받아 예약하였고 우리는 함께 일정을 보낸 뒤 각자 그곳의 1인실에 묵었다.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 아침. 근처에 있는 해녀의 집으로 가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고, 나오는 김에 큰 짐은 미리 렌터카에 실어 두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 양치도 하고 재정비를 한 뒤 출발하고 싶어 방 키는 반납하지 않은 채, 식사를 하러 갔다. 그렇게 즐겁게 아침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방의 문을 연 순간, 당황스럽게도 숙소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방 안에 있었다. 양치도구와 자잘한 짐을 놔뒀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 듯했고, 큰 짐도 없고 다소 정리된 방을 보고서는 체크아웃을 한 줄 알고 청소를 하려던 모양새였다.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당황하며 하던 일을 멈추고 방을 나갔는데, 그거야 짐을 빼버린 내 잘못도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다녀간 후 화장실에 가득했던 담배연기와 담배냄새. 체크아웃을 하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서는 직원은 한국인이 아닌 듯했고, 아마도 그녀는 체크아웃한 방에 들어가 화장실 환풍기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방정리를 시작하려던 모양이었다. 냄새도 우리나라 담배 냄새 같지 않았는데 고약하고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겨우 양치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와 키를 반납했다. 무인 반납시스템에 이른 아침이라 컴플레인을 바로 제기할 순 없었고 옷에 배어버린 담배 냄새 때문에 상당히 불쾌했지만, 언젠가는 바람에 옷의 냄새도 날아가겠거니. 가급적 빨리 잊고 남은 일정에 집중하려 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온 어느 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일을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고 곧바로 숙소의 홈페이지에 그날의 일에 대해 비공개 글을 올렸다. 몇 월 며칠 어디에서 묵은 아무개이며 체크아웃 아침일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래도 어찌어찌 묵고 나왔으나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내용으로.


며칠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자신은 그 숙소의 지배인이며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그에게 통화가 가능하다는 답장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왔고,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당시 일하던 사람은 중국인이었으며, 투숙객에게도 엄격히 금연을 요구하는 곳에서 종사자가 흡연을 했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며 해당 직원을 해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마 그녀가런 일을 저지른 것이 처음이 아닐 것이라는 나의 말에 그도 동감하는 듯했다. 이어서 그는 다음에 혹시나 이 숙소를 방문할 때, 내 이름을 말하면 할인해 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나저나 혜택은 둘째 치고, 세상에 내가 사람 하나를 잘랐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숙소 측으로부터 사과와 더불어 후속조치까지 전달받고 나서 그제야 알았다. 잘못된 일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좋은 것과 옳은 것은 구분해야 하고 당시 나의 불쾌감에 대해선 사과를 받아야 했던 것이 맞았음을. 그와 통화를 끝내고 나서 깨달았다. 그가 언급한 혜택은 받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불쾌한 일을 겪지 않을 것으로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 자초하여 얻어낸 사과였지만, 어쩌면 덕분에 그 숙소를 나쁘게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고 나머지 여정을 포함해 오히려 그때를 더 보람되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달까.




가끔 주변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는데, 미안하다 생각하며 이해해 주었겠거니 넘어간 관계에 뒤늦게 빨간불이 켜져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왜 이제야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느끼게 된다. 그가 말하는 상대방이 그의 미안한 마음을 진작에 전달받기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꼬이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그럼 그 일이 있던 당시에, 바로 상대방에게 미안하다 말했냐고 물어보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까운 사이니 양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고 이후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이해해 준 것으로 여겼다며. 왜 미안함을 상대방이 모르게 홀로 느끼고 홀로 뉘우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미안함을 당사자가 아니라 왜 지금, 여기서, 나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더욱 모르겠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감사실 직원들은 매일 같이 갱신되는 온갖 제보들로 인해 전국을 떠돈다. 사안의 경중으로 우선순위를 따지고 행선지를 정한다. 사실 관계를 파악하러 떠나갔지만, 종종 어떤 일은 누가 더 잘못했나를 따지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진작에 끝날 수 있는 일들이었음을 확인한다. 와중에 미안해야 하는 이들은 당사자가 아닌, 그들과 마주한 우리에게 송구하다는 말을 자주 건넨다. 이렇게 먼 길을 오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로는 아니라며 웃고 있지만 잦은 외지생활로 인해 피곤에 절은 나는 속으로 외친다. 그래, 미안해할 만하다고. 그리고 또다시 생각한다. 지금 이럴 게 아니라, 미안함을 제때 그리고 제대로 배송했어야지, 하고.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이 진정한 수신인에게 제대로 가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미안함이 제대로 된 주소지에서 제대로 된 타이밍에 발화됐더라면 여기까지 왔을까. 그러나 그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미안함이 뒤늦게나마 본적을 찾게 되고, 그로 인해 얻게 될 미미한 평화조차 기대하지 않는다. 아니, 평화는커녕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다. 먼저 미안하다 말하면 지는 싸움. 가끔 보면,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타이밍을 놓쳐버린 어느 관계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차마 그 여정을 보고서에 담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사랑'만 타이밍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러 관계에서 오고 가는 모든 형태의 인사에도 타이밍이 있다.


이번에도 면전에서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을 몇이나 만났던가. 정말로 미안하면, 미안함의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보시기를. 나는 이제 그런 헛사과는 그만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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