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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제웅 May 30. 2022

수능 문제를 10년 만에 펼쳐보았다.

내 이야기를 찾아서

 강화도에는 화문석, 무문석이라고 하는 돗자리를 판다. 꽃 화자(花)의 화문석은 자신만의 문양을 짜넣은 돗자리다. 아이러니하게도 화문석보다 아무런 문양이 없는 무문석이 더 비싸다고 했다. 무문석은 짜넣는 재미가 없어 순전히 노동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화문석은 무늬를 짜넣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예술의 영역이 된 것이다. 나의 문양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무늬를 내 삶에 짜넣을것인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네 번째 읽었다. 가방 속에 넣어 다니며 업무 중 쉬는 때나 야간 근무 중에 간간히 펼쳐서 읽는다. 화문석, 무문석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큰 감동을 불러왔다. 간절하게 내 무늬를 짜 넣고 싶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이러한 생각으로 <픽사 스토리텔링> 책을 집어 읽었다. 나만의 이야기를 넣으려면 스토리텔링 기술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스토리텔링에는 영웅이 등장한다. 그 영웅은 작은 위기를 겪고, 더 큰 위기를 겪고, 더더 큰 위기를 겪고 극복한다. 처음의 모습과 변화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혹은 자신의 가치를 지킨 모습을 보며 이야기가 줌 아웃된다. 이러한 전개 구조를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본다면 어떠할까?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는 어떤 위기를 겪고 있을까? 없다. 위기가 안 느껴진다. 어떡하면 좋은가. 무문석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런 색채가 없다.


 어제 야간근무 중에는 또다시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래, 오래전 내 꿈을 찾아가자라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야겠다. 이젠 되어야겠다. 물론 이 생각은 10년째 이어지는 생각이다. 인터넷에서 2022학년도 수능 기출문제를 다운로드하였다. 의대 정원이 늘어났다니 어쩌면 나도? 하는 생각이었다. 30살에 의대에 입학하여 공부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보자! 공부를 막 잘하진 않았지만, 막 못하지도 않았다. 수학 기출문제 PDF를 켜놓고 1번부터 풀어나갔다.


 1번 2번 풀어나갔다 한 10번쯤 되었을까. 왜 답이 안 나오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니 나도 공대 졸업해서 미적분학, 공학 수학도 공부하고,, 고등학생 땐 곧잘 풀고 했는데! 당황스럽다. 분명 수학을 제일 좋아했는데 말이다. 평생 안 까먹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뒷 문제도 쉽지 않으리라,, 어쩔 수 없이 전공인 물리 문제를 펼쳤다. 이건 내 전공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쉬운 역학 문제부터 풀었다. 전기공학문제는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다시 문제를 덮어놨다.


 군생활중에는 변리사 자격시험을 공부했었다. 변리사 자연과학 기출문제를 다운로드하였다. 당연하게도 기억이 안 난다. 아무것도 풀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 정체성에 위기가 왔다.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역학 문제도 제대로 풀 수 없는, 자잔한 수학공식도 머릿속에서 잊혔다. 무늬가 더 사라진 것 같다.


 큰일이다. 기어이 짜 놓은 작은 자수 같은 무늬가 흩어졌다. 한 구석에 짜 놓아서 가끔 들추어 보던 무늬들이었다. 가끔은 자부심이기도 했다. 기억을 헤집다가 무려 신춘문예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신문사에 투고한 시들을 찾았다. 약 6년 전의 일이다. 그땐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시를 잘 쓰는 사람일 줄 알았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가당치도 않다. 다행히 이전보다 글은 조금 더 잘 쓰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위안 삼았다. 가끔 글 쓰는 가끔 수학 문제도 풀어보는, 자주 책 읽는 그런 사람이 내 무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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